사자왕 형제의 모험 - 개정2판 창비아동문고 4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트 그림 / 창비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1983년 9월 어느 날,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나는 부모님이 주신 '생일 축하금'을 들고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일단 김형배의 <20세기 기사단> 신간을 한권 고르고 '만화책만 살 순 없으니 교양 서적도 하나 골라야지'라는 마음으로 서가를 훑어 보던 중 특이한 제목의 책과 조우한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

사자왕 리처드같은 기사들이 나오는 중세 모험물인가? 아더왕 전설에 푹 빠져서 비록 아동판들이었지만 이 판본 저 판본 구해 보았던 4~5학년 시절 생각도 나고 해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동용 동화치고는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늦도록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단숨에 읽어 버리고 말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권말 해설을 통해 이 책의 작가가 바로 그 유명한 '말괄량이 삐삐'(80년대 초반 TV에서 방영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지 않은가!)의 저자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여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아.. 고수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책의 여운으로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던 나는 당시 고등학생이던 누나에게까지 이 책을 추천해 주었고 누나 역시 재미있어 하며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20년이 넘었지만 이 책은 여전히 나의 책장에 소중하게 꽂혀 있다.

<긴양말을 신은 삐삐>, <개구쟁이 에밀>, <소년 탐정 칼레>,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등 린드그렌 여사의 책들은 하나같이 현대 아동 문학의 정수라 할수 있는 명작들이지만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여사의 작품목록에서도 약간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바로 '환타지 동화'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연쇄적으로 열려 있는 색다른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한.

형 '요나탄'과 주인공인 '나 - 스코르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는 이 책의 초반부는 아동 소설임을 감안할 때 상당히 충격적이다. 그들이 몸담았던 현실은 고루하고 쓸쓸했다.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지만 모범생이자 특출한 학생이었던 형 요나탄은 화재사고에서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대신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목숨처럼 믿고 의지하던 형이 죽은 후 항상 몸이 아파 학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스코르빤은 마침내 찾아온 지난했던 병고의 끝에서 의연하다.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오히려 기뻐하며 받아 들이는 스코르빤이 홀로 세상에 남게 된 어머니를 걱정하는 장면은 지금 다시 읽어도 가슴 뭉클하다.

슬프고 힘들었던 현세를 떠난 형제는 중세 시대와 흡사한 사후 세계 낭기열라에서 다시 만나고, 낭기열라를 배경으로 벌이는 두 형제들의 목숨을 건 모험과 활극이 펼쳐진다.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사후 세계도 현실과 마찬가지로 폭력과 악이 존재하며 배신과 음모, 우정과 신뢰가 뒤섞여 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과 이에 따르는 희생,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어떠한 사람이 진짜 영웅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등의 묵직한 주제는 이 소설을 성인 독자들이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책으로 만든다.

내 인생의 소중한 책을 꼽는 다면 그 중 한 자리를 나는 주저없이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할애 할 것이다.

아 참, 정갈하고도 아름다운 삽화는 이 책의 백미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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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29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축하금을 들고 서점에 간 어린이......
제 딸이 그렇게 자라주면 좋으련만......

oldhand 2004-10-29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자 새끼는 고양이가 되지 않는 법이랍니다. 로드무비님의 도러임에랴..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더더군다나 주하는 너무 너무 예뻐서.. 미모로 다 해결할듯. >_<

인터라겐 2007-04-09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조카 학급문고로 제출하라고 해서요... 주문하다가 반갑게 인사드립고 갑니다.

oldhand 2007-04-11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학급문고란게 아직도 있군요. 어릴적에 학급문고로 내버린 아까운 책들이 왜그리 많은지.. 지금 같으면 당연히 그냥 새책을 한권 사서 낼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