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되게 아끼는 척 하지만, 분실도 자주 한다.
분실의 99%는 빌려 주었다가 소실되는 경우지만 이는 다시 몇가지의 소분류로 나눌수 있겠다.

(1) 누구에게, 언제 빌려주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 
(전혀 남이 빌려갈 법하지 않은 책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불가사의할 뿐이다. 10권짜리 책에서 4권, 6권만 없어지는 경우는 대체 뭔가.)

(2) 빌려준 사람과 연락이 끊겨버린 경우
(친구의 여자친구가 빌려갔는데 둘의 사이가 잘 안된다든지.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까지 책을 빌려주는 나의 오지랖을 원망할 밖에)

(3) 빌려준 사람이 책을 잃어 버린 경우
(빌려준 사람이 그 책을 또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 형의 친구의 형수님에게까지 흘러간 적도 있다. 책을 빌려가 놓고 그런적 없다고 잡아 떼는 놈들도 있다.)


이런 저런 이유든지 잃어버린 책들로 인해 나는 간혹 딜레마에 빠진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이거나 시리즈나 전집에서 이가 빠져 버린 경우 그 시름 시름은 깊어만 간다. 확 다시 사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주머니 사정도 문제일 뿐더러 간혹 절판되어 버린 책들은 정말 속수무책인 것이다.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책꽂이를 새로 장만하였다. 그동안 여기 저기 쌓여 있던 책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고 나니 집나간 자식들 생각에 더욱 마음이 아파진다. 그들의 빈자리가 나를 공허하게 한다. 94년에 샀던 완역 <서유기>(전 6권)는 1, 2, 3권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절판된 책이라서 구할수도 없는 희귀본이 되어 버렸다. (1)의 경우이다. <B급 좌파>와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3)의 사유로 내 곁을 떠나갔다.
(2)의 이유로 인해 잃어버린 셈 치고 있었던, 오랜기간 절판 상태여서 더더욱 마음이 아팠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재발간 되었다. 눈 딱감고 다시 사야겠다. 그나마 다시 나와주어서 다행이다. 으흑흑.

모질어 질지언정 책 대여는 삼가해야 할 일이다. 인생 어디로 갈지 누가 아는가.
내 품을 떠나는 순간 이미 인연은 끝날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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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0-29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 남에게 안 빌려줍니다. 그냥 주면 모를까요. 그런데 제 책을 만순이가 친구 빌려줬다가 수없이 잃어버렸죠. 지금도 아쉬운 것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거기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빨간책들... 동생이니 뭐라할 수도 없고 참...

하얀마녀 2004-10-29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슬램덩크 사 모으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사촌 형이 놀러와서는 그 책을 들고 나가더군요. 그러더니 친구 빌려줬다고.... 물론 단 한 권도 못 돌려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슬램덩크 사는 일을 그만 뒀지요. 또 작은 아버지는 집에 오면 꼭 화장실에 만화책을 들고 들어가서 상태 안 좋게 만들어버리고... '몬스터' 지키기 프로젝트에 돌입입니다. ㅜㅜ

oldhand 2004-10-2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저도 이제 웬만하면 안 빌려줄라구요. 저도 애거서 크리스티 빨간책은 한 10여권 소실 된것 같아요. 흑흑. 헌책방에 들를 때 마다 잃어 버린 책들을 헌책으로라도 보충할라고 한답니다.

하얀마녀님/ 저는 <몬스터> 누나에게 빌려 줬다가 책이 우글 우글 해져서 왔어요. T_T
제가 재밌다고 보라고 안겨준거라 뭐라 말도 못하고. T_T

미완성 2004-10-29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권짜리 책이 없어진 건 속상하지만 그래도 선물로 준 거라, 아님 그 책 하나로 가져간 사람 인간만드는 데 일조한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집에 이가 빠지게 생겼다뇨. 이런 통탄할 일이..! 우어, 근데도 oldhand님 글을 보고 '음, 서유기를 읽어볼까?'라고 생각하는 저는 뭔가요 ;;
험험, 지금 슈테판 츠바이크랑 하루키랑 중학교 때부터 모아온 헌책들이 친구집 옷장에서 잠자고 있을텐데..우어우어 담번에 만날 땐 꼭 찾아와야겄습니다.

oldhand 2004-10-29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유기는 올 초에 두군데 출판사에서 10권짜리 완역본이 새로 나왔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하고 번역을 비교해 보니 원본의 소제목이나 총 100화로 이루어 진것 등 거의 흡사한데 조금 늘려서 번역 되었나 봐요. 요즘 나오는 책들의 "글씨 커짐"과 "자간 넓어짐"도 한 몫 했겠지요. 어쨌든.. 새로 몽땅 사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이러고 있습니다.
<서유기> 아주 유머러스하고 재밌어요! *_*

파란여우 2004-10-29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시리즈물 같은거 한 권중간에 이빠지면 열받죠. 더우기 그게 재출간하지 않는 책이라면 두고두고 인간을 미워하는 불상사까지 발생합니다. 아, 정말 책 때문에 인간관계를 흐트려 놓아야 하나...왜 세상엔 나만큼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건지...그러니 빌려 주면 안된다니까요...그냥 주세요..그 기념으로 저에게는 어캐 안될까요? 흐흐(아얏, 그렇다고 꿀밤까지...)^^;;;

oldhand 2004-10-30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꿀밤이라뇨??? 알라디너 여러분들이야 말로 다같이 책을 아끼는 동지들 아닌가요....
책이라는게 어찌 보면 별거 아니고 집착하는것도 부질없는 짓일수도 있는것 같아요...
이래 저래 그런데로 한세상 사는거지요 뭐.. 무소유의 삶을 추구해야 되는데 말이죠. 그게 말만큼 쉽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