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루팡'을 '호움즈'보다 먼저 만났던 것 같다. 비록 만화였지만 초등학교 1학년 쯤 클로버 문고의 <기암성>(윤동원 글 그림. 윤동원은 <기암성> 이외에도 <수정마개>와 <813의 비밀> 등의 작품을 남긴 루팡 전문 작가였다.)을 보았으니 1, 2년 후에 소설로 처음 만난 '셔얼록 호움즈'보다는 '괴도 루팡'의 존재가 먼저 나에게 다가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홈즈를 처음 접하자 마자 나는 열렬하게 홈즈에게 매혹되고 말았다. 뤼팽은 당시 소개된 작품도 많지 않았거니와 나의 우상 홈즈를 무단으로 도용하여 물먹이는 등의 만행으로 어느정도 눈밖에 나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지나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이 완역본으로 돌아왔다. 홈즈의 완역본은 나오는 족족 사서 다 읽었지만, 뤼팽은 여전히 내게 찬밥 신세였다. 새로 나온 완역본 중 세 권만 사서 읽었으며 더 이상 읽어야 할 필요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나마 <괴도신사>와 <813>은 재독인 셈이었고 <고백>만이 새롭게 읽은 책이었다. 어릴적 읽은 <뤼팽대 홈즈>, <기암성>, <수정마개>는 따로 완역본을 구해 읽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추리소설의 특별 할인 기간에 30%의 할인율에 혹해 몇몇 고수분들의 추천을 참고하여 뤼팽 전집 중 여섯 권을 지르게 되었다.

사두긴 했지만 다른 신간들에 밀려 차일피일 미루던 중 <서른개의 관>을 올 봄에 읽었고, 며칠전 <호랑이 이빨>을 읽었다. 아직 네 권이 남아 있는 셈인데, <호랑이 이빨>을 읽고 난 후 남은 네 권에 대한 기대치는 바닥을 치고 말았다.

거의 쓰지도 않지만 난 리뷰를 쓸 때 가급적 혹평을 쓰지 않는다. 소양이 부족하여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품의 미덕이 있을까봐 저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에 별로 차지 않는 작품들은 아예 리뷰를 쓰지 않는다. (사실 이런 행동은 오랫동안 소수파에 머물렀던 미스터리 팬들의 '저자세'이기도 하다. 얼마 되지 않는 추리 소설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많이 팔려야 그 후속편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미스터리 스릴러 특히 일본의 그것이 장르 문학 시장의 최고 주류로 떠올라 많은 독자층을 보유하게 된 최근에도 나의 이런 습성은 별로 바뀌지 않는 것 같다.)

한 번 잡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좀처럼 다른 책에 눈 돌리지 않고 완독하는 나의 독서 습관마저도 이번 <호랑이 이빨>을 읽으면서 여러번 시험대에 올랐다. 몇 번이고 책을 집어 던지고 싶을 만큼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른 개의 관>만 해도 그닥 좋지는 않았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왜 이다지도 나는 뤼팽과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하는 결말을 언급하진 않지만 <호랑이 이빨>의 내용을 상당부분 드러내고 있기에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읽지 마시길 바랍니다.



일단, 뤼팽의 성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남자들의 성격 중에 참 싫어하는 성격이다. 포와로의 자화자찬은 귀여운데, 어째서 뤼팽의 잘난체는 이다지도 역겨울까. 게다가 작가의 지나친 주인공에 대한 예찬은 도를 넘어섰다는 느낌이다. 소설 속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작가의 직접적인 주인공에 대한 신격화와 찬사라면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5년만에 북부 아프리카를 평정하여 모리타니 제국을 건설한 황제 아르센 1세 부분에선 실소를 금치 못할 뿐이었다.

뤼팽에 대한 다른 등장인물들의 반응 또한 늘 이런 식이다. 일국의 총리 마저도 경박한 천재인 그에게 넋이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기 위한 필연적인 서술과 상황이 필요한 시점에서도 작가는 모든 것을 뤼팽의 개인적인 능력과 매력때문이라고 설명할 뿐이다. 나처럼 삐딱한 독자가 어찌 동조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거부를 하려고 해도, 모두들 그의 존재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가 순간순간 내뿜는 영향력에 경도될 수 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정말로 예외적인 한 인간을 앞에 두고 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을 위해 존재하고, 초자연적인 숙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어떤 괴인과 상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이런식이다. 낯간지럽지 않은가? 나만 그런건가?

뤼팽이 괴도신사이고, 가난한 자들의 편이란 미화도 사실 작품을 통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귀부인들과 미녀들을 위해 행동하고, 자신의 여성 편력과 개인적 야심(혹은 가족에 대한 이기적인 행동)을 최우선 순위로 놓을 뿐이지 않는가. 그가 진실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마음 아파하고 몸을 던지는 장면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신분 사회와 귀족 사회에 대한 동경과 안주의 모습은 자주 보여주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서도 만난지 얼마 되지 않는 여인 플로랑스에게 매혹당해 자신의 오랜 부하인 마즈루를 때려 눕히는 모습도 보여주는데, 이런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부하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다. 그가 과연 자신의 부하들을 위해 진심으로 희생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에게 부하들은 자신을 충실히 따르는 도구일 뿐인것 같다. 자신 때문에 횡사한 운전기사에게 애도의 태도 한번 보여주지 않는 이 신사가 약자들의 편이라니.

그의 자의적이고 이중적인 판단과 논거도 문제시 되는데, 이폴리트 포빌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내와 그의 애인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음모는 비뚤어진 비정상적 인간의 기이한 행각으로 치부하면서 정작 자신은 질투에 사로잡혀 가스통 소브랑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질투에 의한 살해 충동은 로맨스고 다른이의 질투에 의한 음모는 '인간의 머리 속에서는 움틀수 없을 것만 같은 악행(p.287)'이라니. 독자인 나야말로 어안이벙벙할 뿐이다.

그가 보호해 주려고 애썼던 인물인 가스통 소브랑만 해도 경찰을 죽인 현행 살인범이다. 그는 경찰을 살해했으면서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의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여인을 누가 감히 해코지하려 든단 말인가!...... 그 날은 어쩌다 사람 하나를 죽였지만, 마음 같아선 열 명이든 스무 명이든 해치울 수도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대체 앙스니 경감의 목숨 따위가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그따위 비천한 것들의 목숨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겁니다! 그들은 어차피 마리-안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선 장애물들일뿐....

아무리 로맨스가 좋다하지만, 이런 인물인 소브랑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작가와 주인공이 어찌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이폴리트 포빌에게는 그다지도 저주를 퍼붓는가. 사실 플로랑스에 대한 뤼팽의 마음가짐과 자세도 비슷하지 않은가.


여주인공격인 플로랑스 르바셰르 또한 가관이다. 주위의 등장인물들은 온통 그녀를 칭송하기 바쁘다.

플로랑스를 아는 사람한테는 그런 혐의사실 같은 건 하등의 중요성도 없답니다. 그녀는 제가 지금껏 만나본 그 어떤 사람보다도 고귀한 영혼과 존엄한 양심의 소유자입니다.

애석하게도 독자인 나는 소설 어느 부분을 읽어도 그녀가 이러한 성품의 소유자인줄 알지 못하겠다. 앙스니 경감과 뤼팽의 운전기사 두명을 살해한 소브랑을 비호하고, 진범에게 거의 마지막까지 협조한다. 사건을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사실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고 몰아세우면 울기만 할 뿐이다. 결국 그녀의 침묵으로 인해 몇명이 목숨을 잃게 되는가. 어리석고 무기력한 여성으로 소설속에 잘 묘사되고 있는데,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칭송하기 바쁠 뿐이니 내가 인물을 잘 못 독해한 것인가.

작가인 르블랑의 여성관도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에 비해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편향적인것 같다. 동 시대의 다른 추리 소설들(<호랑이 이빨>은 1923년 작품이다.)만 보아도 그의 여성 캐릭터들이 19세기 적인 시각의 수동적이고, 평면적인 모습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울기만 하고, 진실을 감추고, 기절하고, 도망치는것이 특기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책을 집어 던지고 싶었던 이유는 신체 장애에 대한 터무니 없는 작가의 폭력적 시각이었다. 진범의 비뚤어진 성품이 그의 장애에서 비롯되었다는 식의 표현과 신체적 결함을 괴물처럼 묘사하는 부분은 1920년대라는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치다. 눈살을 찌푸릴만한 서술이 작품의 말미를 수놓고 있다.

아직 읽지않고 내게 남아 있는 네편의 소설들은 최소한 <호랑이 이빨>보다는 덜 불쾌하길 바랄 뿐이다. 철들고 읽은 미스터리 소설중에 최악이라 할 만 하다. 물론 캐릭터로서의 뤼팽을 아끼고 사랑하는 다른 독자들에게는 나의 이 글이 불쾌하게 받아 들여질지도 모르겠지만, 궁합이 안 맞는다고 단순히 치부하기엔 너무나 많은 시비거리가 이 책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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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0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홈즈가 더 좋아요 :)
추천합니다 ^^ 어지간한 리뷰보다 훨 좋은 페이퍼네요~

oldhand 2007-10-02 17:05   좋아요 0 | URL
무플 방지에 칭찬까지! 감사합니다. 하핫.

하이드 2007-10-02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 책이 알록달록 너무 예뻐서 좋아하려고 애쓰고 있는 책이에요. ㅋㅋ 제게 있어 잘난체가 심히 거북했던 작가는 A.A.밀란이였어요. '뭐, 이런 재수없는-' 했다죠.

oldhand 2007-10-02 18:40   좋아요 0 | URL
밀란은 작가도 잘난체, 탐정도 잘난체인 반면 르블랑은 주인공은 잘난체하고 작가는 그런 주인공을 추켜 올리느라 별별 말을 다 하더군요. 전 후자가 더 민망했어요. ㅎㅎ

상복의랑데뷰 2007-10-02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귀수 씨의 바로크'적'인 번역과 뤼팽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번역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뤼팽은 읽을수록 장편보다는 단편이 좋더라구요. ^^

oldhand 2007-10-03 14:35   좋아요 0 | URL
원문에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지나친 말줄임표와 느낌표의 향연도 눈에 많이 거슬린다. 독자보다 작가가 호들갑을 떤다는 느낌이라고 할까나. 간결한 단편들이 아무래도 더 낫긴 한것 같다만.

로드무비 2007-10-0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귀수 씨는 90년대 초, 난해한 시를 썼던 시인으로 잠시 유명했죠.
겸손하고 차분한 번역은 아닌가 봐요.
(그게 잘난체하는 뤼팽과 잘 맞았는지는 혹 모르지만.)
많은 부분 공감하며 재밌게 읽었습니다.^^

oldhand 2007-10-07 19:18   좋아요 0 | URL
성귀수씨의 번역은 그래도 불어권 계열의 번역자 중 아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긴 한것 같습니다. 뤼팽의 번역도 아주 정성들여 했다는 흔적이 역력하구요. 번역가 보단 모리스 르블랑의 문제가 훨씬 더 크겠지요. 사실 뤼팽은 우리나라나 일본 이외에 구미에서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진 않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털짱 2008-01-10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손님. 님을 만나 행복했던 시간들에 늘 감사하며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님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소리없는 벗이 오늘은 털을 좀 남깁니다.^-^

oldhand 2008-01-10 14:31   좋아요 0 | URL
잊지 않고 찾아주시니 행복할 따름입니다. 요새 좀 바빠서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반가운 인사가 있어 기분이 아주 좋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들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아, 이거 서재 업데이트도 좀 하고 그래야 할텐데 말이죠.

가넷 2008-02-07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홈즈와 비교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뤼팽을 좋아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말이죠.ㅎㅎ;;

물론 단편들은 재미있었지만... 그리고 작가의 신체장애를 보는 시선에 대한 의견에는 동감이 갑니다. 정말 불쾌했었죠. 그냥 그저 평범한(?) 재미에 불쾌한 감정이 들다 보니 호랑이이빨 이후에는 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