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 다시 읽고 싶은 명작 1
A. J. 크로닌 지음, 이승우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어렸을 적에는 기독교를 다녔다. 거기서 가르쳐주는 재미난 것들과 간식, 친구들이 좋아서였다. 조금 나이가 들고 보니 나에게 강요하는 믿음이 싫었다. 철저히 이성적이고 싶었던 나에게 더이상 종교라는 것은 매력이 없었다. 모순덩어리일뿐... 그렇게 무신론자.. 이름하여 아신교의 신자로서 쭈욱 살다가.. 지금 나는 카톨릭 신자이다. 아직도 기도하는 것이 어색하고 뻘쭘하고, 무안하지만... 종교라는 것을 가진 것에 무한 만족중이다.    

천국의 열쇠는 나랑 같이 세례를 받았지만, 지금은 레벨이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친구녀석이 아무때나 네가 마음이 열릴 때 읽으라고 선뜻 건네주었던 책이다. 몇달을 가지고 있다 지금에서야 펼치게 된건 무엇때문이었을까?
끝머리의 시작, 기묘한 천직, 성공하지 못한 보좌신부, 중국에서 일어난 일, 귀국, 시작의 끝머리 6개의 제목으로 되어 있지만, 난 네개의 파티션으로 나누고 싶다.

외동아들을 평범하게 키우고 싶었던 어머니의 뜻과 다르게 기묘하게 성직자의 길을 가게 된 치점의 어린시절, 첫 보좌신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어 중국으로 선교활동을 떠나게 되기까지 겪었던 일, 그리고 중국에서의 엄청난 고행과 성공 후의 귀국, 고향으로 돌아와서 평온하게 되는 부분이다.

처음엔 이 이야기들을 모두 적었지만, 이야기를 적고 있노라니 치점 신부의 일대기에 대한 감동이 줄어서 그냥 이정도로 적는 게 좋을 것 같다.
책을 덮고 나서 꿈에서도 신부님이 나올 정도로 마음이 가는 책이다.
어릴 적부터 차근차근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교의 자리까지 안착한 안셀모 밀리 신부와 어쩌면 이렇게도 고난만을 주시나 싶어 짠하기까지 했던 치점신부의 비교로 힘들었었다. 안셀모 같은 삶이 좋은 것일까? 라고 생각했다가 고난만큼 성숙해지고 깊어지고, 고결해지는 너무나 인간적인 치점에 대한 경외에 가까운 마음을 쌓게 되는 것을 보노라면... 치점이 사랑받는 것 같기도 하고... 현세에서의 삶과 하늘에서 쌓을 복에 대해서 빼놓을 수 없는 고민이었다.
난민같은 생활을 하던 치점에게 왔던 기회들과 원하면 어떻게든 이뤄졌던 것들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네 삶도 그럴 것 같기도 하고... 

똑같은 하느님을 믿는다는 그리스도교들의 분열은 항상 종교에 대한 회의를 일으키게 한다. 그러나, 치점신부가 했던 그 방식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 가싶다. 너와 나는 달라가 아닌 너와 나는 어차피 한 형제라는... 생각으로 서로를 돌봐주면서 의지하고 도우면서 살아가는 그 모습이 바로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길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교회에 관한 교의현장]16항]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종교적으로 치우치지 않더라도, 참 따뜻한 책인 것 같다.  
돈으로 쌓아서 무너져버린 교회, 더욱 크게 하기 위하여 무너버렸던 교회, 두번의 시련 후에 굳건히 바로 선 성당의 모습 속에 담긴 뜻. 요셉과 치점만이 신자였던 중국땅에서 귀국하던 당시에 그를 환송하기 위해 서있던 500명의 신실한 신자들의 모습처럼... 감격스러운 장면도 많고,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연상하게 하던 러스티 맥 신부와 연어낚시하던 모습처럼 아름다운 순간의 장면도 있고, 노라와의 만남과 죽음의 장면, 너무나 가혹했던 어린시절, 중국에서의 처참했던 모습처럼 슬픈 대목도 있고...  

천국의 열쇠. 그게 뭘까? 라는 의문으로 시작했던 책읽기의 끝에선...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건 과연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덮는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하느님에게 일 것이고, 그 뜻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자체에 두고 본다면, 우리 자신에게 있을 것 같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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