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이야기 세트 - 전3권 - 행복한 청소부 + 생각을 모으는 사람 + 바다로 간 화가
모니카 페트 지음,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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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옷이나 그릇 따위에는 별 욕심이 없다. 내 주변의 어떤 주부가 고가의 법랑 그릇을 사놓고 자랑하기 위해 나를 부른다 해도 그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돈 들여 구입하고 싶은 것은 약간의 책, 약간의 맥주, 그리고 꼭 보고 싶은 공연 티켓 정도이다. 그런 나에게 억대 연봉은 부러울 것이 없다. 다만, 뒹굴뒹굴 책 읽고 저녁 바람에 공연장에서 나와 한잔 맥주를 마실 시간이 좀더 있었으면, 부자가 될 것 같다.

행복한 청소부를 사게 된 과정은 내가 살아온 방식이랑 많이 비슷하다. 언젠가 서점에서 봐둔 일이 있었지만 내 아이들이 읽기에 어중간해서 만지작거리다가 놓아두고 돌아섰다. 그 다음 번에 갔을 땐 거기 나오는 음악가, 작가들의 이름을 우리 아이들이 낯설어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생각을 접었다. 그러나 세 번째, 이번엔 여섯 살 난 작은 아이가 그 책을 꼭 갖고 싶어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나 된 큰 아이한텐 너무 철지난 책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여섯 살짜리에겐 너무 어렵지 않겠나. 그러나 이제 글씨를 막 배운 딸아이는 한 시간 정도 앉아 혼자 더듬더듬 꽤 많은 페이지를 넘겨 읽고는 나머지를 나에게도 읽어달라고 한다. 이 아이가, 청소부인 주제에 바흐에 대해 말하게 된 사나이에 대해 얼마나 감동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청소부와 바흐 사이의 멀고 먼 거리를 알지 못하기에 감동이 적을지도 모른다. 다만 자기 천성대로 꾸준하고 다정하고, 겸손한 청소부에게 공감을 느꼈을 것 같긴 하다.

진정한 의미의 교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돈많은 사람들과, 가난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문화니 교양이니 하는 것으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운 사람들, 그리고 정신적 자유를 누리면서도 상류층에 대한 열등감으로부터는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가난한 지식인들에게 초탈한 듯 더 알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청소부의 뒷모습은 행복하다 못해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듯 싶다.

서양의 상류층은 이공계 전공자라 할지라도 시 수백편을 외운다는 둥, 택시 운전자도 주말엔 고급 연주회를 즐긴다는 둥, 말하자면 계층과 계급을 상관하지 않는 문화적 넓이를 가진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혹은 이미 지난 일이지만 어느 사회주의 국가에서,곳곳에 널린 서점들과 터무니없을 정도로 싼 값의 책들이 공장에서 퇴근하고 나온 노동자들을 서점으로 발길닿게 했다는 이야기가 근거없는 낭설이 아니었다면, 우리 사회의 문화부재 현상에 대해 어찌 말할까 모르겠다. ...하루종일 자동차 정비를 하고 기름묻은 손을 씻고 한 줄 시를 읽는 행복한 제자들을 키우는 게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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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이 뚱이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동무 2
박경선 지음, 정경심 그림 / 우리교육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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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말이 바로 이거였다. 선생님이 왕따라는 말. 아이들 마음 속을 무슨 수로 다 헤아리랴. 내가 옳다 하고 내가 이쁘다 한 아이들의 행동이 본인들이나 친구들에게는 별 것 아니거나 시시한 행동인 일이 어디 한둘이랴. 뚱이 같은 아이들을 교사나 엄마의 눈으로 보자면 어떻게든 행동을 바로잡아 주어야 하는 문제적 아이일 수 있지만 좀더 넓은 시각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라면 무척 창의적이고 자존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많은 어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를 가졌던, 어른들의 '폭거(?)에 굴하지 않는 자존심을 가졌던, 반항적이고 영악했던 '어린 어른'이었다고 회상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기르거나 가르치는 아이들을 한없이 어린아이로만 보는 모순(나 자신의 것일 수 있는 굴곡진 시각이다)에 빠져있다. 헷갈린다,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그 아이들을 이해하고 품어주어야 할 것인가, 가르쳐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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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누고 가는 새
임길택 지음 / 실천문학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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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구르는 돌들 주워 쌓아
울타리 된 곳을
이제껏 당신 마당이라 여겼건만
오늘에야 다시 보니
산언덕 한 모퉁이에 지나지 않았다.
- 똥 누고 가는 새 中

임길택의 시는 단순하다. 물 한 잔 맛. 그의 삶도 그랬으려나. 한없이 맑고 착하고 겸손했던 그. 시에 기교도 부릴 줄 모른다. 휙 마당에 똥 싸고 가는 새 보고도 울타리 치고 사는 좁고 작은 '사람의' 마당을 읽어내더니 니 마당 내 마당 가르지 않은 산언덕을 향해 그냥 휘적휘적, 그는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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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 시인선 97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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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몹시 견디지 못해
그대 근처를 거닐 때
내가 바람 속에 들어가
바람 속의 다음 세상을 엿들을 때,

바람 속에서 다음 세상을 엿들을 수도 있고 게 눈 속에서도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때론 너무 그리워 영정 같은 사진 속에서도. 여기 아닌 언제, 지금 아닌 어딘가. 내가 결코 가볼 수, 만나 볼 수 없는 세상이 어딘가 있고 가끔 그곳에서 신호가 온다. 시인은 그 신호를 감지한다. 문득문득, 전기 오르듯. 그래서 시의 구절들은 감전되어 신경이 튀어오르듯 그렇게 한두 구절씩 튀어오른다. 그 많은 구절 들 중 어떤 일부를 만나 나 또한 함께 감전이다. 그의 시 속에서, 다음 세상을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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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이호백 글, 이억배 그림 / 재미마주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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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림이 너무 좋다. 대개 한국화로 그리면 무거워지기 쉬운데 그렇지도 않으면서 색채도 좋고 표정도 좋다. 종이질감도 좋다. 이 그림책을 아이들과 읽는 내내 나는 시아버지 생각을 했다. 어느 집에서나 가장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수탉'이었다. 조금은 허풍이 섞이기도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이어야만 하는 모든 아버지들. 그 아버지들이 진정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어지는 순간은 올망졸망 잘 자라나는 자손들 앞에서 아닌가. 밖에서 하는 힘자랑이란 언제든지 더 잘난 놈 앞에서 술 앞에서 무너질 수 있는 것. 정말 힘센 게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공터에 책가방 내팽개치고 말타기 하는 중평아리들 그림이 너무 이쁘고 정겨워 보고 또 본다. 우리 어렸을 때나 맸던 책가방. 지금 애들은 내 또래 아줌마 아저씨들이 이 장면을 왜 좋아하는지 이해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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