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대화하는 아이 티피
티피 드그레 지음, 백선희 옮김, 실비 드그레, 알랭 드그레 사진 / 이레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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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티피가 세 살 때 코끼리와 걸어가는 사진. 어린 티피는 누드다. 그냥 아기의 벗은 몸이라 하기에 너무 노골적이라 할지... 여자 아기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린 여자 아이의 몸이 얼마나 예쁜지... 티피는 이렇게 말했다. 코끼리가 자기를 밟을까봐 조심조심 걸었다고. 난 그 말이 진짜, 진짜라고 믿는다. 그 코끼리는 정말 그랬을 것이다. 티피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건 확인할 수 없지만, 마치 우리가 작은 짐승에 대해 대책없고 이유없이 연민과 보호본능을 느끼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리라. 그 코끼리가 티피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어린 티피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건 아이의 감정으로서 존중해주고 싶다. 정말 그럴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의 오만일 수도 있지. 그 코끼리에게 티피는 그저 연약하고 작은 한 동물이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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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지음 / 해냄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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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126페이지에 '거룩한 사랑'이란 시가 있다. 그 시가 준 서늘한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사랑이란 감정은 숭고하고 아름답지만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으면, 심지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면 사랑을 줄 수도 실천할 수도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다정한 눈빛으로 달콤한 말을 주는 것만으로 다 되지 아니하는 사랑, 손에 빗자루를 들고 땀흘리고, 수고하여 밥 지어 먹이고, 때로는 무모한 침입자들과 맞서 싸워서라도 지켜주어야 하는 것, 내가 진정한 어미라면 갖추어야 할 사랑의 조건.

숱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모질게 살고 있느냐고 묻고 의문을 가질 때 보여주고 싶은 시, 진짜 아름다운 사랑의 능력을 보여주는 시다. 누구는 박노해가 달라졌다 하고 변절했다고도 한다. 나는 근간의 박노해가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이 책이 나오던 당시의 설왕설래도 잘 모른다. 말들이 많은 것만 보아도 그가 '스타'가 되었다는 뜻이구나 씁쓸했을 뿐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노동의 새벽'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가 더 좋다. 적당히 타협했다고?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가 깊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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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
김정란 지음 / 세계사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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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혼이 갈갈이 찢기는 느낌이 들 때, 내가 단 하나의 뭉쳐진 영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느낄 때, 내가 여러 겹의 삶의 단면임을 볼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느낌들을 누구와 말나눌 수 있을까. 그, 여자들만이 느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정서는 실상 입밖으로 내어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었다. 그와 비슷한 공감을 나는 최승자와 김혜순 등에서 발견하곤 했다.

그들의 것과는 또 다름, 그 안쪽, 찢겨진 안쪽에 대한 들여다 봄을 김정란 시에서 본다. 서럽고 아프고 선듯하고 아름답다. 부디 김정란이란 사람이 글과 다른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 서늘한 사람이길, 사람들 발길 잘 아니 닿는 곳의 한적한 밤바닷가 같은 사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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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법정 지음 / 샘터사 / 199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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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뒤에 붙어있는 딱지를 보니 10년 전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마음이 마냥 허망할 때 유일하게 마음붙였던 서점에서 샀다는 걸 알겠다. 경전이란 절실할 때 찾게 되고 마음이 허망할 때마다 일게 되지만 읽을 때마다 느낌은 다 다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경전은 곧 시이기도 하구나.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또는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거나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앞으로 태어날 것'들에까지 미치는 그 넓은 품이라니! 아마도 이 우주의 필연적 질서를 헤아리는 까닭이겠지. 허나 나는 이 귀절을 멀리 있으며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존재들에 대한 비원으로 읽었더랬다.

가장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귀절은 다음 것이었다.

온갖 삿된 소견에 팔리지 말고,
계행을 지키고 지견을 갖추어
모든 욕망에 대한 탐착을 버린 사람음
결코 다시는 모태에 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로구나. 그러나 '계행을 지키고 지견을 갖추기'는커녕 사람에 대한,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들끓는 나는 다음 세상도 기약하긴 틀렸구나. 다시 한 번 태어나 뜨겁게 사랑하다 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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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 칸딘스키의 예술론 열화당 미술책방 10
바실리 칸딘스키 지음, 권영필 옮김 / 열화당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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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미술은 문학과 매우 닮은 예술이라 생각해 왔다. 음악이 감각적인 것이라면, 문학과 미술은 읽어내는 것이라는 생각. 그것이 나의 편협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면 아마 칸딘스키의 추상화가 잘 다가오지 않았던 것도 당연하리라. 칸딘스키 화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오히려 그의 초기 구상화들이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음악을 듣고 형상화했다는 추상화들이 유독 많은데 그 그림들의 비논리성에 대해 의아했던 것 같다. 음악은 소설과 달리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감각으로 다가갈 것인데... 칸딘스키는 어떻게 자신의 그림이 바로 그 음악에 대한 적확한 느낌을 나타냈다고 감상객들을 설득시킬 자신이 있었을까? 그 비논리를.

그런데 그런 칸딘스키가 이토록 아름다우면서도 논리적이고 음악적인 '글'을 쓰다니! 그것도 색채에 대해! 아직도 나는 칸딘스키의 구상화를 더 좋아하지만, 그의 글을 읽고 나서는 그를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붓을 휘둘러대는 오만한 예술가라는 오해는 절대로 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의 아름다운 글솜씨에 반해 더더욱 총체적으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탁월한 색깔과 심리와 감각의 분석! 노란색의 광조(狂躁), 푸른색의 심화능력, 가능성으로 차 있는 침묵이라 비유된 흰색, 그리고 슬픔의 배음으로서의 검은색. 색깔분석을 통한 싸구려 심리분석이 아니다. 도처에서 색깔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이러저러한 감각과 해석들을 만날 수 있다. 뭐, 그래도 아직 칸딘스키의 추상화는 복잡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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