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법정 지음 / 샘터사 / 199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 뒤에 붙어있는 딱지를 보니 10년 전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마음이 마냥 허망할 때 유일하게 마음붙였던 서점에서 샀다는 걸 알겠다. 경전이란 절실할 때 찾게 되고 마음이 허망할 때마다 일게 되지만 읽을 때마다 느낌은 다 다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경전은 곧 시이기도 하구나.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또는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거나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앞으로 태어날 것'들에까지 미치는 그 넓은 품이라니! 아마도 이 우주의 필연적 질서를 헤아리는 까닭이겠지. 허나 나는 이 귀절을 멀리 있으며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존재들에 대한 비원으로 읽었더랬다.

가장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귀절은 다음 것이었다.

온갖 삿된 소견에 팔리지 말고,
계행을 지키고 지견을 갖추어
모든 욕망에 대한 탐착을 버린 사람음
결코 다시는 모태에 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로구나. 그러나 '계행을 지키고 지견을 갖추기'는커녕 사람에 대한,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들끓는 나는 다음 세상도 기약하긴 틀렸구나. 다시 한 번 태어나 뜨겁게 사랑하다 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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