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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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 책이 좋았다. 읽는 동안 행복했다. 뭐 그리 큰 인생의 깨달음이 있는 책이었던가. 아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의 그 뭐랄까, 이야기는 낯설지만 작가가 말하려는 게 자꾸 짚여져서 깊고, 힘들었던 그 기억,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나 이 소설이 좋았다. 박기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쓰리고 가장 아름다운 뒷태를 보였던 오마담은 당시 마흔이었다. 사실 헤픈 여자 아닌가. 기생치고도 헤픈 그녀, 사랑할 만하지 않은 남자가 없더라는 그 사람의 말은 읽다가 가끔, 사람에 대한 나의 생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연애를 하든, 그냥 친구를 만나든, 무슨 조건이 통하여야 그리 하는가? 얼굴이 잘 생겨서 그 남자를 사랑했던가? 돈이 많아서였던가, 지적이어서였던가?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너무나 통하는 정서를 지녀서 그녀와 친해졌던가? 그 반대이던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가 말라서였건 돈이 많아서였건 시를 알아서였건, 섹시해서였건... 혹은 그 반대였건 조건이 없는 것이다.

때론 나의 사람에 대한 취향이 매우 헤프다는 생각을 하고 한다. 그래도 어른이 되고는 좀 덜하지만 청소년기의 나는 사람들 대부분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모든 친구들 모든 선생님들이 다 마음에 배겨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은 싫은 사람들 더 많은 꼬장한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지금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게, 이유없이 조건없이 마음에 배긴다.

나는 집 꿈을 많이 꾼다. 마당이 깊고 구석이 깊고, 나무가 깊은 집. 언젠가 가보았던 큰집이나 외가이거나 어린 날의 친구 집이거나 할 집. 그늘이 서늘하고 한련화가 한 구석에 피었을 집. 오래된 툇마루가 있고 구부정한 솔기둥이 그냥 서 있는 집. 삐그덕 하고 사선으로 살짝 열어줄 창문이 있는 집. 노란 가로등 불빛이 비스듬한 길가를 비출...

타박네와 오마담의 부용각은 어쩐지, 화려찬란한 기방이라기보다 지붕이 낮고 노란 불빛이 비출 것 같은 집이다. 거기 어떤 방에서는 밤 늦도록 술을 마실 것이고, 노래를 부를 것이고, 어쩌면 책을 읽는 기생도 있을 것 같고 또 어떤 방에서는 누군가가 사랑을 나눌 것이다. 그 사랑이 과연, 치욕스럽지 않게 당당하고 영적인 것인지에 대해 이 책은 그냥 낭만적으로 덮어버렸기에 천박하다 할 손가락질조차 한가락 소릿자락처럼 구슬프고 우아하게 흘려버렸기에 고연히 슬퍼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마담 팔자가 어떤지 몰라도, 단 한 남자이든 숱한 여자이든, 사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기만 했다면 누구든, 행복하다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끝까지 다 타들어간 초는, 비록 촛농으로 남을지라도 행복한 게 아닐까.

나는, 사랑은 무슨 사랑이든, 소진은 무슨 소진이든, 끝까지 타고, 남김없이, 미련도 없이 그렇게 살다 가고 싶다. 어느 날 마당의 한 이파리 깊이 드리운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 스미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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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09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 스미듯이 그렇게 미련없이 가버리는 이파리가 저도 되고 싶어요. 늘 미진하고 서성대며 모자라는 사람이지만 말이에요..
 
소풍
성석제 지음, 김경호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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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중간고사 직전, 교실에서 함께 공부를 했다. 방과 후 고작 2~3시간 공부를 하는 것이지만 오후 5시쯤 아이들과 나누는 간식이 행복하다. 매일 뭔가 다른 메뉴를 생각하느라 내 머리가 아프다. 하루는 토스트, 하루는 삶은 달걀, 하루는 라면...

남는 아이는 서른 일곱 명 중 고작 5~7명.  정작 남았으면 하는 아이들은 다 가고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남기도 하고 남아서 공부하는 효율이 과연 학원이나 독서실 가서 하는 것보다 높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3학년을 맡을 때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던 추억, 선생님과 함께 간식을 나누며 해가 질락말락할 때 집에 돌아가는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이들을 위해 싸구려이긴 하지만 아주아주 큰 덕용 토스트 한 묶음과 마가린을 사고 프라이팬과 가스버너를 챙겼다. 달걀 한 판, 라면 한 박스, 그리고 집에서 젤 큰 냄비도.

모든 메뉴가 인기 있었지만 넷째날 끓여 먹은 라면이 최고였다. 우리 반 아이들은 10명 정도, 하지만 다른 반에서 방과 후 수업을 하던 아이들과 냄새 맡고 몰려온 교생들, 다른 선생님들까지, 라면 서른 개가 순식간일 것 같았다. 한 번에 10인분도 채 끓이지 못하는 냄비 때문에 라면이 끓으면 재빨리 종이컵에 건지고 냄비뚜껑에 건지고, 그 국물에 또 새 라면을 넣고, 어제 삶아 먹고 남은 달걀을 풀고...

세상에서 젤 맛있는 라면을 먹고 뒷처리까지 깔끔하게, 대걸레질까지 다 해낸 아이들, 다음 날, 오늘은 무슨 간식을 먹을까, 하자, 어제 남은 라면이요~ 한다. 질리지도 않냐? 어제 먹었는데... 그러자 아이들의 말..

"샘~ 인류 최대의 발명품이 뭔 줄 아세요?"

(나) '당근 모른다' "뭐냐?"

"라면입니다~"

그렇게 이틀 연속 끓여먹은 라면,(어머니들 아셨으면 싫어하셨을 거야), 다 먹고 난 후 아이들은 샘~ 저희는요, 한 시간 공부, 한 시간 간식, 한 시간 농구, 한 시간 휴식, 이렇게 시간표 짰어요~ 이러더니 칠판에 이렇게 적는다.

Best Seller(울반 학급문고 목록 참조)

1. 나의 라면 오렌지 나무 2,. 어린 라면 3 . 우리들의 일그러진 라면 4. 라면 언니 5. 나는 라면의 택시 운전사

best movie

1. 웰컴 투 라면골 2. 올드 라면 3. 왕의 라면 ...

best animation

1. 라면의 움직이는 성. 2. 철권 라면 3. 라면 중사 케로로 4. 라면은 못말려....

아참, 나는 성석제의 '소풍' 서평을 쓰던 중이었군.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장면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이들이 칠판 가득 써넣던 라면 이야기들. 음식 이야기 많고 많다. 개인적으로 음식에 관한 만화를 열심히 읽는 요즘이지만 신문에서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게 음식 이야기이다(대부분 맛있고 분위기 좋은 음식점 이야기이지만)  나는 먹는 것에 별로 집착하지도 않고 음식문화에 별 의의를 둘 만큼 정신적 여유도 없는 사람이지만 가끔 정말 좋은 음식에 얽힌 사람들의 추억이 떠오른다. 내 인생의 절반은 먼지 냄새 풀풀 나는 남자 아이들과 함께 했던 까닭에 대개는 참으로 허름하기 짝이 없는 음식의 추억들이 그 아이들과 함께 한다.

성석제의 재치 넘친다고 칭송받는 그 문체는 나처럼 한 없이 깊이깊이 더 깊이 진지진지 더 진지, 하다 못해 고리타분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별 매력이 없다. 그렇더라도 이 책은 다른 '음식문화체험'류의 책들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도, 이러구러한 해외여행의 체험과 또 어찌저찌한 유명인사들(이름을 밝혀 그들의 이름에 편승하는 어설픈 짓은 하지 않으나 어쩌구 이웃작가 어찌어찌 화가나 교수 하는 식이다)과 흔히 먹지 않는 음식을 (때로는 찾아가서) 먹기도 하는 약간의 사치와 아닌 척하는 잘난 척이 없다 할 순 없지만, 작가 특유의 그 '눙치는 기술'로 껍데기 홀딱 까놓은 메추라기 알 마냥 매끈덩  빠져나가진 않는다.

여기 쌩뚱맞은 만화가 끼어든다. 나쁘지 않다. 좋다고까진 못하겠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글과 만화는 참 어울리지 않는 듯한 게, 성석제에게서 어딘가 모르게 90년대 초반 아날로그 냄새가 나고 만화는(필치는 물론 아날로그인데) 컴으로 그린 게 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눙치는 기술이 비슷하여 그런지, 만화는 뭐야, 이게 하다가도 만화로 인하여 글을 읽고 싶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누글까, 이런 기획을 한 이는??

'소풍'을 읽으면 그 이야기에의 몰입 뒤로, 나에게 있었던 음식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인사동, 종로 뒤, 해남의 어느 한 정식 집, 베이징의 어느 불친절하던 중국집.... 아, 그래 당신 멋진 데를 갔군, 나도 언젠가 여길 가 보겠어, 가 아니라, 아, 그래, 나도 언젠가 이 비슷한 델 갔던 거 같아. 선풍기만 겨우 덜덜 돌아가던 유명하다는 칼국수집에서 무지 덥게 먹었던 칼국수 맛처럼, 거기, 비장한 인생의 의미를 심으려기엔 너무 덥거나 너무 맛있거나, 너무 배고프기만 했던 추억들, 그리고 잊혀진 사람들.... 다 이야기하기엔, 거기에 깊은 인생의 의미를 다 설파하기엔 좀 그래서, 아 거기, 한 번 간 적 있었어....(누구와 같이 갔던가는 말하지 않음. 그날 슬펐는지는 말하지 않음, 어떤 저녁이었나는 말하지 않음..)

말하지 않음의 여지를 남겨둘 줄 아는 걸 보면 분명 성석제는 매력있는 작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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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06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눙치는 기술, ^^ 님의 라면 리뷰가 더더 재미나네요. 오랜만이에요..^^ 추천~
 
백창우 시를 노래하다 세트 - 전2권 백창우 시를 노래하다
백창우 지음 / 우리교육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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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남자아이들. 3월 첫단원부터 시다.

변영로의 '논개'를 배우기 앞서, 500여년 전 짧게 살다간 한 여자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다.  매혹적이었을 그녀, 자기 힘의 몇 배나 되었을 몸부림치는 왜장을 끌어안고 자기 자신이 돌아오지 않을 추가 되어 가라앉았다는 그녀, 석류 속 같은 입술이 붉고 고왔을 그 사람....

우리는 가보지도 않은 진주의 남강에 꽃잎처럼 떨어져 죽었다는 그 여자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고 나서 시를 펼쳤지만, 읽지 않았다. 우선, 백창우가 곡을 붙이고 홍순관이 부른 시노래 '논개'를 먼저 들었다.

물론 나는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 이 노래를 혼자 들어보았다.  이 북시디의 책을 아껴아껴 다 읽을 때까지도 노래는 듣지 않았던 이유는 백창우의 글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지점토나 석고로 빚은 듯 희고 고운 책 표지(사진 속의 기타치고 있는 토우와 꼭 같은 질감의 책이다) 안에 페이지마다 백창우는 순진난만, 자기가 좋아하는 시 이야기를 펼쳐놓았는데 거기에는 그토록 내가 찾아헤매던 박정만도 있고 내 가슴을 에이던 기형도가 백창우의 가슴도 에였다 하고 내가 가장 슬플 때 곁에 있던 최승자도 안고 가고 있었다. 그가 다시 들려주는 고정희를 읽으며, '우리의 아기들은 살아있는 기도라네'를 다시 읽으면서 난 울기까지 했다.

우리 아기에게

해가 되라 하게, 해로 솟을 것이네

별이 되라 하게, 별로 빛날 것이네

나는 왜 이 빛나는 따뜻한 귀절을 읽으며 자꾸 눈물이 났을까 모르겠다.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 주문처럼 외기만 하면 정말 그렇게 자라준다면, 입이 닳도록 그렇게 외일 것이다. 내 손길 내눈길 무엇으로라도 내 아이들에게 폭군이 되라 인형이 되라, 절망이 되라, 절망이.... 그렇게 외인 적은 행여 없을까 슬프고 두려워서 울었다.

하여튼,  그렇게 그의 글 읽기에 빠져 노래 들을 염을 두지 못하던 내가 수업을 앞두고 급히 '논개'만 찾아 들었다. 그리고 수업에 들어가 노래를 들려주었다.

백창우의 노래보다도 그가 쓴 시를 더 좋아하던 나는 그가 지은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나 '벙어리 바이올린'이나 다 매력적인 노래들이라고 생각해왔고 그의 동요들도 많이 사랑해왔지만 어디까지나 그 노래의 매력은 소박함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소박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논개'는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연상시키는 분위기 위에 비장미 넘치는 홍순관의 목소리가 그야말로 강물처럼 흐른다. 간주로 나오는 가야금(거문고?) 소리는 기생이었던 논개와 촉석루 위 죽음의 연회를 연상하게 하는데 경쾌한 리듬에도 불구하고 음과 음 사이를 빗겨 가고 있는 음률 때문인지 묘하게 비장감을 더해준다.

겸손하고 나즉한 그의 글들 때문이었을까, 그의 소박한 차림과 행적 때문이었을까, 백창우가 재주는  많으나 욕심은 없는 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음악을 들으며 그 깊이와 고급스러움에 새삼 소름이 끼친다.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며  이동원의 '향수'며 조하문의 '해야', 하덕규의 '가시나무 새' 심지어 송창식의 '푸르른 날'까지 자주 노래를 들려줘 왔지만 나는 그날 그저 '좋기만 한' 노래가 아니라 '아름답고 신비하고 고급스런'  시와 노래와 연주가 어우러진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 행복했다.

교사로서 욕심을 부려, 그가 교과서에 나온 시들을 노래로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았으면 어떠랴. 우린 도종환을 배울 때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도종환의 또 다른 시노래를 들을 것이고 김용택이나 정호승, 나희덕, 김기림도 그럴 것이다. 아니, 교과서에서 시를 배울 때가 아니더라도 나는 자주 백창우를 들려줄 것이다. 아니, 시에 노래에 그 뒤에 숨어 자기 모습은 비추어 보이지 않을 그이므로 '백창우를 들려줌'이라 말하면 안 될지도 모르겠다. 시는 노래와는 다른 것이지만 시가 노래를 만나 더 살아난다면 분명 기쁘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시가 화폭 속에 죽어 있는 그림이고 썩지 않고 관 속에 누워 있는 연인이었다면 노래는 그것을 되살아나 춤추게 하는 어떤 힘이다. 백창우가 선별한 시들은 물론 시 자체로 아름답지만 거기에 그는 호흡을 불어넣었고 색을 입히고 가락을 돋운다. 시를 더욱 아름답게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사랑 아닌가. 사랑하는 존재를 더욱 살아있게, 빛나게 해 주는 작업. 백창우는 노래하는 이이지만 진정으로 시를 불러일으키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能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가 만든 노래들을 들려주면서 나의 아이들, 나의 제자들, 나의 아기들에게 해가 되라, 별이 되라, 희망이 되고 길이 되라, 온 마음을 담아 간절히 외일 것이다. 이것은 내가 백창우를 가장 열렬히 읽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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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6-05-10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 친구중에 특수학교 선생님이면서 글쓰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백창우 선생님을 무척이나 존경하고 좋아하던데.. 전 관심이 없어서 그랬나 백창우가 누굴까 하고 말았었답니다..
 
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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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그의 칼럼을 읽고 이름을 다시 본 사람이 딱 세 명 있다. 박노자, 최재봉, 정혜신.

글이란 게 완전무결한 문장의 신뢰도도 중요하고 이슈를 잡아내는 능력도, 남들과 다르게 보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제의식도 중요하지만 문학적 매력을 풍기는 표현력 그게 또 중요하다.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 글쓰는 이의 건강한 의식일 것이다. 정혜신 글을 읽을 때마다 그 모든 것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때로는 너무나 과감한 소재를 언급하여 제목만 보고 아슬아슬할  때도 할 말 다하면서 (적들에게) 비판할 구석을 주지 않는 총명함에 감탄한다.

그래서 내가 관심둘 필요조차 없는 인물들이 언급되었음에도 신뢰를 가지고 이 책을 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얼마나 정확히 분석해내는  게 가능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좀 안다는 사람, 아주 좋아하거나 아주 싫어하는 사람 이야기들부터 읽어가기 시작했다. 정혜신은 예의 능력있고 바지런하고 체력 좋은(??)  성공한 사람들 특유의 2인분 어치의 능력을 가진 게 분명하다. 본업을 두고 글도 쓰고 또 내가 모르는 다른 활동을 할지도 모를 이 사람 언제 이렇게 시시콜콜한 자료들까지 다 수집해 두고 메모 정리 기억을 해둔 것인지.. 종종 '그의 소설 전부를 읽어 보았다'는 둥 '그의 노래 수천 곡 중에서' 등의 표현을 보면 아니, 문학과 근접한 전공과 직업을 가진 나도 다 안 (혹은 못)읽은 그 문학 작품들을 언제 다 섭렵하고 있었다는 것인지(그가 좋아하기는커녕 그 정 반대임이 분명한데도), 놀라게 된다.  문학 뿐이랴 영화는 노래는 공연은 방송은 또 어떤가 말이다.

대개는 극찬이요 그 안에 비판을 숨기는 것도 다수이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일단 작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든 싫어하든, 찬탄의 념으로 먼저 다가가기, 다시 말하면 칭찬 먼저 하기 방법이다. 폭이 넓고 비틀어지지 않은 칭찬은 그 다음 어떤 비판도 공정하고 진심어리게 느껴지게 한다.

또 하나 이 글에서 언급되는 이 대단한 사람들의 삶은 사실 내가 그다지 좋아하거나 따르거나 부러워하는 형태의 삶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배웠다. 여기 언급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참으로 치열하고 열심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신분석학적으로 측은지심을 일으키는 불쌍한 영혼들, 게다가 사회적으로 매우 치명적 영향력을 지닌 영혼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뒤에 이해해 줄 수밖에 없는 영역들이 있으리란 것을 정신과 의사다운 시선으로 잡아낸다는 것이다. 나는 심은하에 별 관심은 없지만 그토록 대중적 사랑을 받고도 지켜낼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와 영역의 고집이 매우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른 김민기의 내면에 대해 생각하며 사람에 대한 '실례'란 가끔 지나친 칭찬 혹은 믿은 혹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찬탄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아무리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도 '내가 칭찬받고 싶은 영역'에 대한 것이 아니면 무의미하고 내가 진정 빛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어떤 구석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세상 모든 평가를 물리치고 그 사람을 신뢰하고 사랑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영혼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 믿고 사랑하고 한 생을 사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정혜신이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본 김민기의 뒷모습은 그런 생각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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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6-03-07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꽃선생님 안녕하셨지요? 전 이책을 다른 각도에서 읽었었나봐요...
날씨가 많이 풀려서 좋네요.. 바람은 살짝 불어주지만 따뜻한 봄볕이 마냥 좋던걸요.. 개학해서 이제 바쁘시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구요.. 전 요즘 책을 통 볼 수가 없답니다..
 
달걀과 밀가루 그리고 마들렌 우리문고 12
이시이 무쓰미 지음, 고향옥 옮김 / 우리교육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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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에 대해 자꾸 친숙함이 느껴지는 것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일본 영화, 애니메이션, 일본 소설 들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솔직히 이쁘고 가벼운 그 무엇이 느껴진다. 일본 대중 문화를 접할 때에도 엽기적이고 독특한 무엇을 주로 접하는 사람도 있겠으니 이것은 순전히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이 소설은 화자가 중학생 '딸'이지만 어쩐지 엄마 냄새가 많이 난다. 글쓴이는 그 딸 또래의 자녀를 둔 사람이고 소설 속 '엄마'한테 자신을 투영했을 거라고 상상해 본다. 사춘기 소녀들의 시니컬함을 서술어체로 선택할 때, 작가는 자신의 중학교 시절을 회상했을 것이고 자신의 딸 또는 그 또래 소녀들의 요즘의 말투나 정서를 유추했을 것이다. 그것이 몰입의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달걀냄새가 좀 남아있는 마들렌처럼.

그리고, 일본 대중문화에서 많이 보이는 '프랑스 선망'도 좀 보인다. 엄마가 프랑스 요리를 배우러 간대서가 아니라 나호에 집 분위기도 그렇다. 그런 컴플렉스는 우리도 가지고 있겠지.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도 엄마 냄새가 난다. 나호의 사춘기적 고민을 이야기하기보다. 나호 엄마의 자아찾기가 많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몇편의 동화를 쓰면서, 과연 누구를 위해 이 동화를 쓰는가 생각해 보았다. 동화는 아이들이 읽는 것이지만 나는 일기처럼 엄마로서 나,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나의 정서를 어딘가 드러내고 싶었다는 것을 솔직히 스스로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의 글쓰기의 목적이 사실은 자기 위안, 자기 발견, 독백 들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청소년 문고이지만 바로 내 또래의 한, 사춘기 딸을 둔 중년 초기의 서늘한 한 여자의 초상으로 읽는 편이 차라리 편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이 청소년 문고로 성공했는지는 그 또래 아이들에게 다시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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