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 이 책이 좋았다. 읽는 동안 행복했다. 뭐 그리 큰 인생의 깨달음이 있는 책이었던가. 아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의 그 뭐랄까, 이야기는 낯설지만 작가가 말하려는 게 자꾸 짚여져서 깊고, 힘들었던 그 기억,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나 이 소설이 좋았다. 박기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쓰리고 가장 아름다운 뒷태를 보였던 오마담은 당시 마흔이었다. 사실 헤픈 여자 아닌가. 기생치고도 헤픈 그녀, 사랑할 만하지 않은 남자가 없더라는 그 사람의 말은 읽다가 가끔, 사람에 대한 나의 생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연애를 하든, 그냥 친구를 만나든, 무슨 조건이 통하여야 그리 하는가? 얼굴이 잘 생겨서 그 남자를 사랑했던가? 돈이 많아서였던가, 지적이어서였던가?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너무나 통하는 정서를 지녀서 그녀와 친해졌던가? 그 반대이던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가 말라서였건 돈이 많아서였건 시를 알아서였건, 섹시해서였건... 혹은 그 반대였건 조건이 없는 것이다.

때론 나의 사람에 대한 취향이 매우 헤프다는 생각을 하고 한다. 그래도 어른이 되고는 좀 덜하지만 청소년기의 나는 사람들 대부분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모든 친구들 모든 선생님들이 다 마음에 배겨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은 싫은 사람들 더 많은 꼬장한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지금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게, 이유없이 조건없이 마음에 배긴다.

나는 집 꿈을 많이 꾼다. 마당이 깊고 구석이 깊고, 나무가 깊은 집. 언젠가 가보았던 큰집이나 외가이거나 어린 날의 친구 집이거나 할 집. 그늘이 서늘하고 한련화가 한 구석에 피었을 집. 오래된 툇마루가 있고 구부정한 솔기둥이 그냥 서 있는 집. 삐그덕 하고 사선으로 살짝 열어줄 창문이 있는 집. 노란 가로등 불빛이 비스듬한 길가를 비출...

타박네와 오마담의 부용각은 어쩐지, 화려찬란한 기방이라기보다 지붕이 낮고 노란 불빛이 비출 것 같은 집이다. 거기 어떤 방에서는 밤 늦도록 술을 마실 것이고, 노래를 부를 것이고, 어쩌면 책을 읽는 기생도 있을 것 같고 또 어떤 방에서는 누군가가 사랑을 나눌 것이다. 그 사랑이 과연, 치욕스럽지 않게 당당하고 영적인 것인지에 대해 이 책은 그냥 낭만적으로 덮어버렸기에 천박하다 할 손가락질조차 한가락 소릿자락처럼 구슬프고 우아하게 흘려버렸기에 고연히 슬퍼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마담 팔자가 어떤지 몰라도, 단 한 남자이든 숱한 여자이든, 사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기만 했다면 누구든, 행복하다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끝까지 다 타들어간 초는, 비록 촛농으로 남을지라도 행복한 게 아닐까.

나는, 사랑은 무슨 사랑이든, 소진은 무슨 소진이든, 끝까지 타고, 남김없이, 미련도 없이 그렇게 살다 가고 싶다. 어느 날 마당의 한 이파리 깊이 드리운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 스미듯이 그렇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6-06-09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 스미듯이 그렇게 미련없이 가버리는 이파리가 저도 되고 싶어요. 늘 미진하고 서성대며 모자라는 사람이지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