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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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동생과 올케가 엄마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선물했다. 난 아직 읽기 전이었지만 대략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었기에 좀 탐탁하지 않았다. 치매 걸린 엄마를 잃어버린 이야기가 70을 향해 달려가는, 그러나 아직 늙고 싶지 않은 엄마에게 어떻게 읽힐까. 우울한 인생, 아직도 우울할 일이 남아있는 인생(엄마는 뇌경색으로 거동을 못하는 아버지를 7년째 수발 중이다.)에게 이 우울한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동생에게, 재미난 이야기도 많은데 왜 하필 이 이야기를 드렸냐니까 엄마의 엄마를 생각하라고 그랬단다,참. 

엄마의 엄마는, 우리 엄마가 한 살 때 돌아가셨다. 우리 집에 늘 오셨던 외할머니는 엄마의 계모였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어렸을 때 잠결에 엄마와 아버지가 다툴 때 '당신도 내가 배다른 자신이라고 나를 무시하느냐'는 말을 얼핏 들었다. 또 외가 종중 모임에 갔다가 엄마의 친모 묘를 보았다. 묘비명의 졸년도를 보고 엄마가 아기였을 때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물어보았다. 엄마는 계속 부인하다가 마지못해 인정하면서 너희 외할머니(계모이셨던)를 엄마로 알고 컸다, 다른 형제들하고 똑같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그랬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사위 생일날마다 오셔서 정말 떡벌어지는 생일상을 차려주고 가셨는데 다른 (배다른) 이모네도 똑같이 가서 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엄마를 친딸과 다름없이 여기지 않았다면 그렇게 정성껏 하지는 못하셨으리라. 

어쨌든, 나는 엄마의 엄마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아무리 기억에도 없는 친모라지만, 아무리 차별없이 잘 컸다 하시지만 친모가 없는 유아기를 보냈고 언제인가(스무 살에 시집 왔으니까 어렸을 때나 사춘기 때) 엄마가 친모가 아님을 알았을 터인데 그 외로움이 어떠했겠나. 엄마는 화통하고 따뜻한 여자가 아니다. 어둡고 무뚝뚝하다. 가끔 내가 엄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지금의 나는 교사로, 엄마로 살면서 많이 밝아졌지만 어렸을 때 나는 말이 없고 잘 웃지 않는 아이였는데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이다. 그땐 그게 엄마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엄마의 우울한 성격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엄마에게 빌려온 것이다. 다 읽은 소감이 어떠냐니까, 그냥.. 재밌어.. 그러고 만다. 사실 나는 신경숙을 좋아하지만 안 읽은 지 오래됐다. 숙제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처음엔.. 우울한 이야기가 속상해서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아무래도 우리 엄마 이야기가 오버랩되니까 마음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나이 들어가는 모든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치매나 뇌졸중으로 자식에게 짐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는 자주자주 울면서 이 이야기를 읽었다. 특히 남편이 아내를 회상하는 장면은 많이 아팠다. 물론 가장 아프고 아름다웠던 장면은 아마도 중음신으로 차마 이승을 못 떠나던 '엄마'가 마지막으로 자기 태어나 살던 집에 들르는 장면이었다. 나도 엄마가 필요했다는 말,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자들이 많이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너무나 당연했던 엄마의 손길이, 엄마와 멀어지면서 얼마나 귀한 것이었나를 생각하고, 가끔 엄마를 만날 때마다 새삼스럽게 깨달아지는 우리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엄마가 없다는 일은 어떤 것일까. 이 이야기의 주제는, 너무나 당연해서 그 존재조차를 깨닫지 못했던 엄마의 소중함을 말하고자 함이겠으나 나는 자꾸, 엄마가 없다는 것, 있다가 없어진 이야기 속의 그 엄마, '박소녀'뿐 아니라 지금 내 100미터 가까이 살고 있는 엄마가 없어진다면 하는 끔찍한 상상과 엄마 없이 자라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엄마없이 자란 내 제자들에 대한 생각까지 생각은 자꾸 뻗어간다. 입가에 묻은 밥풀까지 챙겨주던 엄마, 시든 떡잎 뒤란에 잡풀에까지 오롯이 손길을 미쳐 아이들을 다독이는 엄마의 손길을 미처 겪어보지도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무수한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아무리 모자라게 생각할지라고 나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우주에 무한히 감사를 느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일요일 아침에도 우리 엄마는 우리 집에 잠깐 들러 방금 흠뻑 물을 준 내 화분에 물기가 말랐다고 나무라고 간다. 엄마에 대한 감상에 젖고 있을 때 가차없이 엄마 본연의 모습으로 나를 압도하는 우리 엄마, 푸근해서도, 다정해서도 아니지만 난 엄마가 있어서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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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사계절 1318 문고 36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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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라는 것, 아니 그래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 뭉클한 이야기다. 뭉클한 이유는 그 명제가 고귀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결코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만큼 존엄한 것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가, 학벌이 외모가 나의 존엄을 깎아내릴 때마다, 혹은 깎아내리려고 덤비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혹은 내가 다른 이에게 그렇게 상처받은 것을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할 때마다 새삼 이 명제는 가슴 아프다. 그래서 합리적 이성으로 아이가 어른만큼 존중받아야 하고 여자도 남자만큼 귀한 존재이고 흑인도 백인과 똑같은 사람이고 평민도 양반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을 느낄 줄 알며 비정규직도 정규직과 같은 '인간'이며  서울대를 나온 사람이나 고등학교밖에 못 나온 사람이나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견해는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선언할 때마다, 그런 선언들이 절절한 것이다. 

나는, 내가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뭐 누구나 자기가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생각해 왔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그랬던가 다시 한 번 반성해 보았다. 나는 아이들을 공부 못한다고 차별하는 선생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해왔지만 내 안에 장애인을 볼 때 움찔하는 마음처럼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남다른 면에 대해 움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바르톨로메는 장애의 몸에도 불구하고 영특한 재능도 있고 맑은 영혼과 자존의 영성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못 볼 뿐이다. 내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많은 장애인들을 보면서 그 안에 숨겨진 영성은, 있으리라고 짐작조차 못하기도 한다. 바르톨로메를 개 취급하는 공주도 나쁘지만 길거리에서 만난 장애인을 보고 에구, 불쌍해서 어쩌나, 저렇게 살 바에는 태어나지나 말지.. 하고 혀를 차는 할머니들도 좋은 사람들이라 말하기 어렵다.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나를 하찮은, 혹은 없는 존재로 여기는 태도이다. 그것에 저항하지 못하면 살아남을런지는 모르나 내 영혼은 존재감 없이 날아가고 말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개가 아니라고 외쳤던 바르톨로메의 영혼이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 있는 것이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누구도 개가 아니다. 그리고 공주도 사람이다. 바르톨로메가 사람이듯이. 더도, 덜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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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노래한다 창비청소년문학 20
권하은 지음 / 창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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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딸보고 "야, 청소녀!" 이렇게 부르곤 한다. 청소년이란 말은 있어도 청소녀는 없지만 말이다. 성장소설에도 유형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너무 다른 아이들의 내면을 언급하다 보니 성장소설에는 많은 일탈이 있고 어른들의 이해를 구하는 호소가 있고 때론 위악이, 쿨한 척하는 위악이 기승을 떨기도 한다. 명랑이든 심각이든 위악이든 쿨이든, 과장된 면은 있다. 소설이니까 그렇기도 하고. 

바람이 노래한다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주인공 '명지'가 뛰어난 존재도 아니지만 요즘 성장소설에 대세로 등장하는 '겉으로는 별볼일 없어 보이나 나도 꿈이 있는 청소년' 류가 아니고 목사 부모를 둔,  가정도 안정적이고 그림이라는 자기만의 세계도 있는 '멀쩡한' 아이일 뿐 아니라 장애를 가진 친구나 가난한 친구를 겉모습이 아니라  본질을 봏고 대할  줄 아는 진지한 아이라는 것, 게다가 이 아이는 양갓집 소녀답게 착하게 모범적으로 살자, 가 아니라 친구를 위해 사랑을 위해 뛰쳐나갈 줄도 아는 아이이다. 어쩌면 많은 소녀들은 여기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특출할 것은 없지만 대체로 큰 말썽없이 자라나, 안에 숨겨진 자신의 욕망과 내면을 잘 추스릴 줄 아는 현명한 소녀들, 그러나 평범이란 이름에 묻혀 그 안에 강고하게 갇혀 있는 역동성들이 평가절하된... 그래서 어느 날 이 평범한 소녀들이 우정과 사랑을 위해 역동할 때 부모들이 '깜딱' 놀라 버리는... 나에게도 있었고 내 주변의 많은 여인들의 어린 시절이 있었고 내 딸에게도 있는 역동성을 가진... 

나의 여고시절에는 성숙한 소녀의 영혼을 친구처럼 맞이해주는 선생님들이 몇 있었다. 나야 남자중학생만 20년을 가르쳤지만(솔직히 여자 아이들의 복잡다단한 행동양식과 영혼과 철학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만약 여자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다면 별나라끼리만 통하는 전파의 만남을 이루는 듯한 영적인 만남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기대도 없진 않다. 

주인공은 첫사랑을 잃지만 자기 스스로 성숙할 줄 아는 아이였다. 세 아이들이 우정이자 삼각관계를 건강하게(결과는 많이 아팠지만) 이끌어갈 수 있는 자기건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몰랐다. 지금도 어른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나도 한편 저 녀석들이 자기 인생을 충분히 이끌어나가리라 믿다가도 물가에 아기를 내놓은 듯 전전긍긍하는 건지도 모른다. 작가 후기에서 가슴에 묻은 사람 이야기를 읽으며 울컥했다. 이 사람도 이 소설을 쓰면서 사춘기에 대한, 첫사랑에 대한, 죽은 친구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았으리라. 누구나, 언젠가 그렇게 하고 싶은 어린 날, 젊은 날, 아픈 날이란 게 있지 않겠나. 글을 써서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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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 대한민국 말하기 교과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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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 강의로 인기와 부를 얻었을 텐데 이 책으로도 돈깨나 벌었겠다. 서점에 가보니 베스트셀러 가판에 깔렸다. 잠깐 서서 읽어보니 참 재미있다. 하지만 망설여진다. 이런 책들에 편승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만, 잠깐 읽은 부분 중에 딸과 오랫만에 대화를 트게 된 이야기가 자꾸 마음에 남는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마음을 잘 열어보이지 않으려는 딸과 우연찮게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다고. 저자의 말로는 엄마보다 영어를 잘하는 딸은 대화에서 우위를 선점하자 마음 속 이야기를 터놓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점점 마음을 안 열어주려는 아들딸, 그리고 학교의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입을 열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고심한다. 상담실에 있을 때에는 첫 마디를 열게 하는 게 참 힘들었다. 일단 시작하면 그 다음엔 아이들이 알아서 말을 하지만 처음 마음을 여는 것이 관건인데, 그것을 김미경 씨는 '말의 권력'으로 해석한다. 아이들이 선생이나 부모 앞에서 자신이 취조를 당하고 상대방에 의해 무언가가 캐내지려 한다고 느낀다면 당연히 방어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많거나 자기가 주도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시키지 않아도 말을 할 것이다. 내가 진정 아이들의 말을 듣고 싶어한다면 나는 주도권을 쥐고 있으려 애써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전에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김미경 씨의 강의 동영상을 보았다. 옆집 아줌마 수다떨듯 이야기하는 게 편안하기도 했지만 말잘하는 법을 강의하는 그 사람이 출연자들에게 말을 시켜보고는 그들을 주눅들지 않게 하면서도 칭찬하면서도 가르칠 내용을 잘 가르치는 것을 보고(가령 제스처나 눈빛 같은 실용적으로 꼭 알아야 할 것들도 잘 가르치면서) 괜히 이름을 얻은 사람은 아니겠구나 싶어졌다. 재미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말 잘하는 어떤 비법을 배우겠다는 생각보다 누군가의 자전적 에세이 같은 걸 읽는 심정으로 편하게 읽고 싶어졌다.  

지하철 몇 번 오가며 읽을 만큼 재미도 있고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다. 역시 예상대로 발음이나 기술 같은 것의 문제가 아니라 필자의 주장은 콘텐츠(뭐,. 쉽게 말하면 내용이겠지)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에피소드를 잘 활용하라는 것도 눈에 띈다. 좋은 이야기다. 내용이 없는 그럴 듯한 말들을 참 많이 듣고 산다.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에피소드는 진정성을 받쳐주는 기둥이 될 터이다. 다만 누구든 그의 글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에피소드'가 말하는이의 자기자랑이 되는 종류의 것으로 채워져서는 안된다는 것. 내가 연수나 강연에 가서 싫었던 강사들은 대개가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한 사람들이다. 자기자랑, 남편자랑, 자식자랑을 에피소드랍시고 떠들어대는 이들이 있다. 김미경 씨가  말하는 에피소드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그도 자기 어머니, 자기 딸, 자기의 살아온 이력들을 자주 활용하지만 거기 자랑은 그닥 없다. 아무리 좋은 강의도 자기가 잘났다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묻어나오면 잉크 한 방울이 흰옷을 온통 오염시키듯 불쾌해진다.  

그의 강의를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참 재미있다. 구수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물론 이야기를 잘 구성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똑같은 주제 똑같은 에피소드도 감동적으로 마무리할 줄 아는 진정성도 있는 사람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온몸으로 이야기를 재미나게한는 능력이 분명 그에게는 있다. 개그맨들이 하는 이야기를 똑같이 해도 재미없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아무튼, 그의 강의도, 그의 책도 참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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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석의 아이디어
최범석 지음 / 푸른숲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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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설명이... 없어서 불친절하게 느껴진다는 것, 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느낀 점이다. 

동대문이면 어떻고 공고면 어떤가. 주류가 아니지만 근성과 재능으로, 무엇보다도 열정과 성실성으로 승부하는 멋진 젊은이 몇을 안다. 디자이너는 감각과 열정이 재산이다. 최범석은 아마 그런 재산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이 바닥에서는 일종의 성공신화의 한 모델인 듯 싶다.  

디자인 공부하는 아들을 위해 남편이 사다 준 책을 우연히 읽었다. 사진이 많은 것은 좋은데 사진에 설명이 없다. 어떤 것은 본문에서 언급한 내용인 것 같고 어떤 것은 아닌 것도 같다. 필자가 사진 속에 보이기도 하는데 그가 좋아한다는 빈티지한 복장이 내 스타일은 아니어서 그런지 공감은 좀 안 된다. 그가 멋지다고 한 복장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컬렉션을 준비하기 위해, 또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밤을 새고 몰두하는 모습은 참 멋지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복감도 여기까지 전해진다.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 좋다. 나도 가끔 어떤 아이디어가 솟아오를 때 정말 머리에서 '퐁퐁' 솟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고 뇌세포가 계곡 물살에 다글거리는 자갈처럼 막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가 아이디어를 펼치고 앉아 있는 모습을 읽으면서 내 손도 미친듯이 스케치하고 메모를 하는 것처럼 피가 끓었다. 

최범석은 젊다. 책에는 그가 녹아있다기보다 그가 책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자의식도 넘친다.(가끔 과잉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만하는 것 같진 않지만 자기 열정에 대한 자부심과 정말 잘 해내고 싶다는 열망의 불균질이 그를 젊다고 느끼게 한다. 좀 거북하기도 하고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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