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노래한다 창비청소년문학 20
권하은 지음 / 창비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딸보고 "야, 청소녀!" 이렇게 부르곤 한다. 청소년이란 말은 있어도 청소녀는 없지만 말이다. 성장소설에도 유형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너무 다른 아이들의 내면을 언급하다 보니 성장소설에는 많은 일탈이 있고 어른들의 이해를 구하는 호소가 있고 때론 위악이, 쿨한 척하는 위악이 기승을 떨기도 한다. 명랑이든 심각이든 위악이든 쿨이든, 과장된 면은 있다. 소설이니까 그렇기도 하고. 

바람이 노래한다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주인공 '명지'가 뛰어난 존재도 아니지만 요즘 성장소설에 대세로 등장하는 '겉으로는 별볼일 없어 보이나 나도 꿈이 있는 청소년' 류가 아니고 목사 부모를 둔,  가정도 안정적이고 그림이라는 자기만의 세계도 있는 '멀쩡한' 아이일 뿐 아니라 장애를 가진 친구나 가난한 친구를 겉모습이 아니라  본질을 봏고 대할  줄 아는 진지한 아이라는 것, 게다가 이 아이는 양갓집 소녀답게 착하게 모범적으로 살자, 가 아니라 친구를 위해 사랑을 위해 뛰쳐나갈 줄도 아는 아이이다. 어쩌면 많은 소녀들은 여기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특출할 것은 없지만 대체로 큰 말썽없이 자라나, 안에 숨겨진 자신의 욕망과 내면을 잘 추스릴 줄 아는 현명한 소녀들, 그러나 평범이란 이름에 묻혀 그 안에 강고하게 갇혀 있는 역동성들이 평가절하된... 그래서 어느 날 이 평범한 소녀들이 우정과 사랑을 위해 역동할 때 부모들이 '깜딱' 놀라 버리는... 나에게도 있었고 내 주변의 많은 여인들의 어린 시절이 있었고 내 딸에게도 있는 역동성을 가진... 

나의 여고시절에는 성숙한 소녀의 영혼을 친구처럼 맞이해주는 선생님들이 몇 있었다. 나야 남자중학생만 20년을 가르쳤지만(솔직히 여자 아이들의 복잡다단한 행동양식과 영혼과 철학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만약 여자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다면 별나라끼리만 통하는 전파의 만남을 이루는 듯한 영적인 만남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기대도 없진 않다. 

주인공은 첫사랑을 잃지만 자기 스스로 성숙할 줄 아는 아이였다. 세 아이들이 우정이자 삼각관계를 건강하게(결과는 많이 아팠지만) 이끌어갈 수 있는 자기건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몰랐다. 지금도 어른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나도 한편 저 녀석들이 자기 인생을 충분히 이끌어나가리라 믿다가도 물가에 아기를 내놓은 듯 전전긍긍하는 건지도 모른다. 작가 후기에서 가슴에 묻은 사람 이야기를 읽으며 울컥했다. 이 사람도 이 소설을 쓰면서 사춘기에 대한, 첫사랑에 대한, 죽은 친구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았으리라. 누구나, 언젠가 그렇게 하고 싶은 어린 날, 젊은 날, 아픈 날이란 게 있지 않겠나. 글을 써서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