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 시인선 97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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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몹시 견디지 못해
그대 근처를 거닐 때
내가 바람 속에 들어가
바람 속의 다음 세상을 엿들을 때,

바람 속에서 다음 세상을 엿들을 수도 있고 게 눈 속에서도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때론 너무 그리워 영정 같은 사진 속에서도. 여기 아닌 언제, 지금 아닌 어딘가. 내가 결코 가볼 수, 만나 볼 수 없는 세상이 어딘가 있고 가끔 그곳에서 신호가 온다. 시인은 그 신호를 감지한다. 문득문득, 전기 오르듯. 그래서 시의 구절들은 감전되어 신경이 튀어오르듯 그렇게 한두 구절씩 튀어오른다. 그 많은 구절 들 중 어떤 일부를 만나 나 또한 함께 감전이다. 그의 시 속에서, 다음 세상을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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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이호백 글, 이억배 그림 / 재미마주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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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림이 너무 좋다. 대개 한국화로 그리면 무거워지기 쉬운데 그렇지도 않으면서 색채도 좋고 표정도 좋다. 종이질감도 좋다. 이 그림책을 아이들과 읽는 내내 나는 시아버지 생각을 했다. 어느 집에서나 가장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수탉'이었다. 조금은 허풍이 섞이기도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이어야만 하는 모든 아버지들. 그 아버지들이 진정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어지는 순간은 올망졸망 잘 자라나는 자손들 앞에서 아닌가. 밖에서 하는 힘자랑이란 언제든지 더 잘난 놈 앞에서 술 앞에서 무너질 수 있는 것. 정말 힘센 게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공터에 책가방 내팽개치고 말타기 하는 중평아리들 그림이 너무 이쁘고 정겨워 보고 또 본다. 우리 어렸을 때나 맸던 책가방. 지금 애들은 내 또래 아줌마 아저씨들이 이 장면을 왜 좋아하는지 이해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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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
채규철 지음 / 내일을여는책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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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위기와 고난의 상황을 끝까지 이겨낸 사람의 강한 인생을 읽는 정도였다가 본문에서 이 제목이 '사람은 그의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는 '리빙스턴전'에서 인용된 말임을 알았다. '사람은 그의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 하늘이 내게 주신 삶의 무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으며 또한 일찍 삶을 다한다면 내게 주어진 사명을 다한 것이리라. 그 말이 주는 운명적 무게는 그만큼 삶의 의지로 다가온다. 채규철 선생이 그랬으리라.

선생의 인생이 우리의 귀감이 되기도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여유가 더 크게 느껴진다. 많은 활동을 하고 성과를 내올 수 있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분처럼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하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들려줄만한 많은 예화와 감동의 잠언들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함석헌 선생의 '그사람을 가졌는가'를 여기서 또 만난 것도 좋았고 헬렌켈러의 일화도 좋았다. 로버트 테스트의 기도도 자료로 자주 활용한다.

개인적으로는 본다이크의 '이름도 없이 명예도 없이 먼 훗날의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믿고 자기의 청춘을 불사르는 이름없는 교사'라는 대목이 가슴을 찔렀다. 내가 믿는 바 바로 그대로이다.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름없는 교사들이 무수히 많다는 정신적 교감. 종으로든, 횡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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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서 들려오는 하프소리 넥스트 4
스티븐 버트먼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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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버트먼이 고고'학'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솜씨도 좋지만 고고학을 하는 사람들이 단지 학문적으로만이 아니라 마치 어린 날 신비한 꿈 속 세상을 만나고 싶은 열망을 어른이 되어 구체적으로 실현해 보려 노력하다 고고학자의 길을 택하듯이 글 자체가 미지의 '과거'에 대한 궁금증과 열망과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어린 시절부터 그야말로 이야기로나 들어 본 것들이지 실지로 가보았거나 가 볼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지난 여름 영국박물관에서 로제타 석이나 투탕카멘의 석상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그 대목을 펼쳐보기는 했으나. 그러나 어떠랴, 영원히 못 본들. 이 책을 읽어 좋았던 것은 뭐 이런저런 고고학적 지식도 유용하고 작가과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넘나드는 상상의 세계도 달콤하고 시간을 뛰어넘어 영원한 인간의 본성들을 확인하면서 인생에 대해 조금 넉넉해지는 정신적 여유도 좋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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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음악 속의 사람들
문호근 / 개마고원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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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라 보엠'을 본 게 언제던가.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 제일 꼭대기 층에서. 오페라를 좀 아는 사람이 어느 낙엽이 마구 떨어지는 11월에 라 보엠이 꼭 이런 분위기라고 이야기해주었는데 4년 전 본 오페라의 분위기가 정말 그랬다. 회색빛 도시, 가난한 뒷골목, 불도 못 때 파지를 불쏘시개로 써야하는 가난한 작가의 방... 그리고 눈발이 날리는 스산한 공원, 가지만 남은 커다란 나무 아래서의 만남...

그리고 이 책. 오페라가 궁금하고 알아야하지 않을까 싶어도 마땅한 입문서를 찾기 쉽지 않았다. 대개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은 본의아니게 자신의 박학을 자랑하느라 문외한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남발한다. 음악만은 아니겠으나... 그게 싫어 대부분의 책들을 퇴짜놓았다. 그러나 이 책은 일단 '문호근'이란 이름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고 집었다. 존경하는 문익환 목사의 아드님이라는 프리미엄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그가 문화계에서 보여준 행보가 열정적이면서도 겸손하고 독보적인 것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글들은 소박하다. 오페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이야기책처럼 만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알량한 이런저런 오페라 이야기들을 확인하고 낯선 것들에 대해서는 '언젠가 만나보리라'는 기대를 심어둔다. 훗날 새로운 작품을 보고 오면 다시 이 책을, 또 다른 책을 펼쳐 장면 속의 그것을 활자 속에서 재검토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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