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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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음악, 미술, 문학, 그리고 생활. 그것들의 공통점은 공학적이고 나름대로의 체계와 매커니즘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과 생활은 비교적 땅에 가깝고 문화적이기 이전에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에서 무질서한 가운데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기능적 미학, 삶에 근거한 고졸함이 있어 그 자체로 문화를 만드는 것을 종으로, 횡으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건축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전시관이나 박물관에서 고상한 옷을 차려입고 우아하게 전시물을 바라보는 차원의 것과는 다르다. 아마도 서현씨는 유기체로서의 건축물에서 살아있는 문화적 미학을 찾아내고 싶은 것이었으리라.

우리의 건축물들이 미학적인 면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역사적 시대적 척박함이 가장 클 것 같다. 식민의 역사와 무리한 근대화와 경제적 가치가 삶의 최고의 가치가 되었던 경제주의적 가치관, 그것들과 맞물려 우리들을 주눅들고 메마르게 목조였던 독재주의 군사문화... 그래서 문화는 배부르고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어 우리 삶 전반에 부드럽게 총체적으로 녹아내리지 못했다.

한강을 건널 때마다 이 아름다운 한강을 망쳐버린 도시공학에 치를 떤다. 어느 위대한 건축가나 도시계획자가 있어 한순간 이 땅을 살려낼 수 있는 구조는 아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내 아들아, 너를 잘 키워 안목있는 솜씨로 우리 사는 땅을 멋지게 세워보라 하고 싶다.
서현씨의 미덕은 건축물을 공학적으로만 보지 않았고 삶이자 곧 문화이며 아름다움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일깨운 것이다. 또 하나, 그의 그야말로 문학적인 글솜씨, 그리고 사람이든 건물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지긋한 눈으로 그 뒷면을 바라보는 안목이다.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집에서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것 밝혀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어야 하겠다. 우리는 받지 못한 그 혜택을 조금이라도 주는 것, 내 미약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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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지오노 지음,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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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진짜 좋은 것들은 반짝이는 외양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걸 확인한다. 진짜 좋은 책은 멋진 장정, 화려한 문체, 베스트 셀러, 여러 번의 수상 경력, 작각의 특이한 행적, 그런 것이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진짜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조금 싱겁기까지 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도 내일부터 하루 한 알씩 도토리를 심어 크고 울창한 상수리 숲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만큼 그 일은 '실천 가능한' 일로서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러나 보라,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당장 일어나 무씨 하나조차 심는 실천을 쉽게 해낼 수 없는 이유가 뭔가. 그 일이 하찮은 것 같이 보이는 것은 기술이 필요한 것도, 자본이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 그런데 누구나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일이 씨앗을 심으면 나고 자라 나무가 되리라는 신념, 그 일에 걸릴 엄청난 시간에 욕심을 매어두지 않을 수 있는 정신적 여유, 그리고 인내심, 그 일로부터 어떤 개인적인 이득도 기대하지 않는 너그러움이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이 시리게 푸른 숲들을 내 나라 곳곳에서 보고 싶으면서도 늘 그러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아파한다. 우리에게도 나무를 심은 사람처럼 자신의 슬픔을 씨앗 하나하나를 다듬어 심는 희망의 힘으로 바꿀 사람은 없는가. 아니 있다면 그가 숲들을 가꾸어 가는 그 시간을 기다려줄 현실이기는 한가.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작은 씨앗 하나를 심고 가꿀 뿐 아니라 그 가꾸는 기쁨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마음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내게 알려지지 않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숲과 물과 바람을 가꾸고 있다. 그래서 그나마 이렇게 세상이 더럽혀지고 있어도 어디선가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 아이들 하나하나가 그 안에 나무를 숨긴 실한 씨앗들임을 매일매일 깨닫는다. 그들이 내 품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10년, 20년 후 멋진 나무가 되어 세상 어딘가에 또 다른 씨앗을 퍼트리란 걸 안다. 나 역시 이 땅에 나무를 심는 사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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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속의 검은항아리
김소진 지음 / 강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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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그를 애도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에게 내린 소박한 찬사들과 아쉬움을 만나면서, 언젠가 꼭 읽어보리라, 내가 즐겨읽는 소설적 취향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현실적 가치관은 김소진의 소설을 값있게 읽으리라 싶었다. 그로부터 한참 후, 그의 책을 샀다.

또 그로부터 한참 후, 그의 책을 읽었다. 먼 나라 여행을 위해 비행기 안에서 '가벼이' 읽으리라 가져가서는. 물론 그의 소설은 어렵지도 않았고 단편들이어서 부담없이 읽었다. 떠난 문인들을 떠 올릴 때마다 그가 오래 살아 있어 더 많은 작품을 썼다면 어떠했을까 상상을 해 본다.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은 습작기에 흥분상태에서, 작가가 그 작품 속 세상을 고스란히 살면서 쓴 것들 같다. 원숙한 작가들이 침착하게 글을 쓰는 그 매끄러움, 그 뻔뻔스러움과는 다른 날것의 느낌이 있다. 그가 더 살았다면 더 매끄러운 작품들을 썼을 것인지..

이상하게도 나는 간접적으로 겪었던 70년대 한옥 주택가의 골목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혹은 달동네... '신풍근 배커리 략사'가 좋았던 것은 '그래 정말 맞아!' 소리가 절로 나게 서울 어느 변두리 마을에서 보았음직한 신풍근씨 빵집의 풍경과 정취 때문이었다. 자신의 일대기를 조금 쑥스럽게 서술하는 신풍근씨를 통해 작가가 우리나라 근대사, 민중의 고난사를 말하려고 했다면 그건 좀 미약했을지도 모르겠다. 신풍근 할아버진 그의 어수룩한 캐릭터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매우 신념에 찬 인물이 되었다가 인생에 한없이 너그러운 할아버지가 되었다가, 나름대로 분석적으로도 되었다가 종잡을 수가 없다. 작가가 주제에 대해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설정인가, 궁금하다.

울프강의 세월을 읽으면서는, 대학 때 만났던 인물들 몇이 떠올라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울프강처럼, 이 땅 어디선가 근거를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작가는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나는, 어느 시대나 그렇게 허랑허랑 때로는 치졸하게, 거짓으로라도 온갖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슬픈 영혼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건 어쩜 바람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김소진은 내 두세 살 윗 연배로 아마도 어린 시절에 비슷한 풍경들을 보고 청년 시절 비슷한 고민들을 하며 이땅을 살았을 것 같다. 그의 작품은 너무 다양한 실험으로 인해 일관성이 없어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단점이 그의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것이 그의 작품을 풋풋하게 느끼게 하니까. 뻔뻔스럽지 않으니까. 소박하고 고소하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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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딸
휘트니 오토 지음, 홍현숙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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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란 말에 혹해서, 그리고 딸,이란 말에 혹해서 또한 그 광고로 미루어 이것은 두 배의 고난을 이겨내야 겨우 성공할까 말까한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려니 - 가령 까미유 끌로델 같은 - 하고 이 책을 읽었다. 촛점은 세계대전 무렵의 미국인 사진예술가에 주로 맞춰져 있고 미켈란젤로 시대에 그를 염탐하는 줄리에타라는 여류 예술가는 사실상 앞부분에만 잠깐 나온다.

로미라는 이탈리아계 미국 여자는 꽤 고상한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처음엔 함께 사는 남자 - 오거스틴 -의 성공에 비해 가려져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만 궁극적으로 사진 예술가로 성공한다. 길고 진실한 오거스틴과의 사랑도 성공하고.

영화에서 주로 만난 미국의 이미지에 비해 여기 등장하는 로미는 꽤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녀가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사진들은 프랑스의 고급 패션잡지 사진 같다. 예술혼이 우긴다고 만들어지는 것인가? 열망만으로 되는 것인가? 그 영역이 매우 넒어 내가 좋아하거나 겪어 본 것이 아닌 것 중에도 많은 '예술적'인 것들이 있긴 하겠지. 그러나 다 읽고 나서도 계속 궁금한 것은 도대체 로미는, 오거스틴은 혹은 소설에 등장하는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어떤 예술적 열망을 왜 가졌는지 모호하다.

사회주의적 성향도 정신도 갖지 못했는데 사회주의자 취급을 받는 것도 그렇고 어떤 정신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지 자신도 모르면서 자신이 예술가라고 우기는 것도 그렇고, 입밖으로 내어 선언한다고 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이 소설가는 잘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번역의 문제인지 원작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줄거리만 있고 심리 묘사도 감정이입도, 절실함도 없는 소설. 미켈란젤로를 왜 언급했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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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 민들레 그림책 1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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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든 소설이든 '진짜'인 것. 세상에 몇 안 된다. 꼭 피눈물 나는 내용이어야 진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 숱한 동화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끄적거려진 것들, 철학도 없이 교훈만 지닌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들은 쉽게 쓰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쉽게 읽히지도 않는다. 읽기에 가슴 아프고 무거운 것들이 많다. 반드시 어느 대목에서인가 눈물을 찔끔거려야 하는 것들.

'강아지 똥'은 아주 예쁜 책이지만 나의 아들이 6살 무렵 이 책을 읽어줄 때 강아지똥이 스스로 아무 쓸모도 없다고 하소연하는 대목에서 울먹거리던 기억이 난다. 강아지똥은 엄마도 없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던 기억도 난다. 버림받았다 하기엔 아기 몸처럼 너무 예쁘게 그려진 강아지똥. 그 표정이 너무 고와 이 그림책이 원본의 글맛을 버려놓았다는 누군가의 호된 비평에 대해 팔벌려 이 책을 감싸주고 싶을 정도이다. 정승각 선생의 그림 역시 따뜻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의 그림임이 보인다.

이 책이, 그 내용이 너무나 과학적이면서도 교육적이면서도 철학적이고 그림마저 고와 중학교 아이들에게도 수업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중1 국어책에 실렸다. 이 것을 읽을 때 몽실언니를 쓴 바로 그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이라고 꼭 덧붙인다. 특히, 어리버리 글씨도 많이 틀리는 공부 잘 못하는 작은 중학교 1학년 짜리들을 붙들고 이 작품을 꼼꼼히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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