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말이 바로 이거였다. 선생님이 왕따라는 말. 아이들 마음 속을 무슨 수로 다 헤아리랴. 내가 옳다 하고 내가 이쁘다 한 아이들의 행동이 본인들이나 친구들에게는 별 것 아니거나 시시한 행동인 일이 어디 한둘이랴. 뚱이 같은 아이들을 교사나 엄마의 눈으로 보자면 어떻게든 행동을 바로잡아 주어야 하는 문제적 아이일 수 있지만 좀더 넓은 시각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라면 무척 창의적이고 자존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많은 어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를 가졌던, 어른들의 '폭거(?)에 굴하지 않는 자존심을 가졌던, 반항적이고 영악했던 '어린 어른'이었다고 회상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기르거나 가르치는 아이들을 한없이 어린아이로만 보는 모순(나 자신의 것일 수 있는 굴곡진 시각이다)에 빠져있다. 헷갈린다,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그 아이들을 이해하고 품어주어야 할 것인가, 가르쳐야 할 것인가...
여기저기 구르는 돌들 주워 쌓아 울타리 된 곳을 이제껏 당신 마당이라 여겼건만오늘에야 다시 보니산언덕 한 모퉁이에 지나지 않았다. - 똥 누고 가는 새 中임길택의 시는 단순하다. 물 한 잔 맛. 그의 삶도 그랬으려나. 한없이 맑고 착하고 겸손했던 그. 시에 기교도 부릴 줄 모른다. 휙 마당에 똥 싸고 가는 새 보고도 울타리 치고 사는 좁고 작은 '사람의' 마당을 읽어내더니 니 마당 내 마당 가르지 않은 산언덕을 향해 그냥 휘적휘적, 그는 갔다.
내가 몹시 견디지 못해그대 근처를 거닐 때내가 바람 속에 들어가바람 속의 다음 세상을 엿들을 때,바람 속에서 다음 세상을 엿들을 수도 있고 게 눈 속에서도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때론 너무 그리워 영정 같은 사진 속에서도. 여기 아닌 언제, 지금 아닌 어딘가. 내가 결코 가볼 수, 만나 볼 수 없는 세상이 어딘가 있고 가끔 그곳에서 신호가 온다. 시인은 그 신호를 감지한다. 문득문득, 전기 오르듯. 그래서 시의 구절들은 감전되어 신경이 튀어오르듯 그렇게 한두 구절씩 튀어오른다. 그 많은 구절 들 중 어떤 일부를 만나 나 또한 함께 감전이다. 그의 시 속에서, 다음 세상을 엿본다.
우선, 그림이 너무 좋다. 대개 한국화로 그리면 무거워지기 쉬운데 그렇지도 않으면서 색채도 좋고 표정도 좋다. 종이질감도 좋다. 이 그림책을 아이들과 읽는 내내 나는 시아버지 생각을 했다. 어느 집에서나 가장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수탉'이었다. 조금은 허풍이 섞이기도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이어야만 하는 모든 아버지들. 그 아버지들이 진정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어지는 순간은 올망졸망 잘 자라나는 자손들 앞에서 아닌가. 밖에서 하는 힘자랑이란 언제든지 더 잘난 놈 앞에서 술 앞에서 무너질 수 있는 것. 정말 힘센 게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공터에 책가방 내팽개치고 말타기 하는 중평아리들 그림이 너무 이쁘고 정겨워 보고 또 본다. 우리 어렸을 때나 맸던 책가방. 지금 애들은 내 또래 아줌마 아저씨들이 이 장면을 왜 좋아하는지 이해하려는지...
제목에서, 위기와 고난의 상황을 끝까지 이겨낸 사람의 강한 인생을 읽는 정도였다가 본문에서 이 제목이 '사람은 그의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는 '리빙스턴전'에서 인용된 말임을 알았다. '사람은 그의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 하늘이 내게 주신 삶의 무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으며 또한 일찍 삶을 다한다면 내게 주어진 사명을 다한 것이리라. 그 말이 주는 운명적 무게는 그만큼 삶의 의지로 다가온다. 채규철 선생이 그랬으리라.선생의 인생이 우리의 귀감이 되기도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여유가 더 크게 느껴진다. 많은 활동을 하고 성과를 내올 수 있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분처럼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하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들려줄만한 많은 예화와 감동의 잠언들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함석헌 선생의 '그사람을 가졌는가'를 여기서 또 만난 것도 좋았고 헬렌켈러의 일화도 좋았다. 로버트 테스트의 기도도 자료로 자주 활용한다.개인적으로는 본다이크의 '이름도 없이 명예도 없이 먼 훗날의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믿고 자기의 청춘을 불사르는 이름없는 교사'라는 대목이 가슴을 찔렀다. 내가 믿는 바 바로 그대로이다.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름없는 교사들이 무수히 많다는 정신적 교감. 종으로든, 횡으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