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가 아닌 느낌표의 예술 - 박성봉 교수의 대중문화 읽기
박성봉 지음 / 일빛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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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밌게 읽었다. 사실은 내가 잘 모르는 노래, 잘 모르는 만화, 영화들도 많이 등장했고 나는 그가 그토록 '관심가져 함부로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들로 보듬어 안으려 하는 대중문화에 별 애착도 없으며 지은이가 언급한 '북극성'이  뜬 혹은 중요한 작품들이 매우 주관적이라 생각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참 맘에 든다. 일단, 선생으로서 그가 가지도 있는 다양한 자료들과, 예술론을 가르칠 만한 그의 감수성과 정서가 좋다. 자칫 교수라 하여 이론적으로 다가가려 하여 놓치기 쉬운 열정과 적극성과 감성이 있다.

또한, 아마도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매우 재미있어 했을 것 같은, 아마도 말발과 거의 닮았을 듯한 재미있는 글발도 맘에 든다. 그는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수업을 할 것 같다. 글을 쓸 때에도 그러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이토록 대중문화를 감싸 안는 것은 그것이 어깨에 돈과 권력과 평론가들의 설왕설래로 힘을 빡 주고 있는 소위 '진짜 예술'들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것, 그 문제제기의 정신을 놓지 않아야 할 예술가 혹은 평론가들의 자세에 대해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있다는 것이 아주 맘에 든다. 예술이냐 아니냐의 평가에는 혹시 권력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그야말로 진짜 예술을 가려내는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그는 예술작품 뒤에 숨은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 언급한다. 영화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건다 안 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과 경험의 문제일 수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내겐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 감독이란 이름으로가 아니라 뒤에서 셋트를 세우고 소품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했던 무수한 인력들의 수고가 위대한 작품의 진정한 토대임을 자주자주 언급한다.

그의 책이 정리되지 않았고 무슨 이론이라 할 수도 없는 내용이라서 불만이 많은 독자들은 그러나 최소한 그가 후까시 잔뜩 들어간 거짓말을 하는 이 땅의 무수한 베껴대기 왕자 학자, 교수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좀더 그를 기다려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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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수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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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태생과 취향을 다 벗어버리고 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게 된 사람을 안다.  영혼은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는 말이나 표정에 묻어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쩌면, 영혼이 없이 몸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아주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그런데, 그 사람의 영혼을 보고 사랑하게 되었던 필라는 도대체 뭔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편안하고 아름다운 집과 예쁜 아이들과 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그런 헷갈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영성을 저버리지 않기를 갈구했던 필라는 어찌 보면 현실적이고 영악한 요즘 처녀는 아닐 것이다. 만약 그녀가 처음부터 끊임없이,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게 맞는지 의문을 갖고 자신이 그를 사랑함으로써 잃게 되는 안정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사랑에 빠져드는 자기자신을 응시하고, 사랑으로 인하여 자신의 영혼마저 정화되고 고양되는 과정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거부하고 싶어 하고,  영성을 버리고 현실의 사랑을 택하려는 그에 대해 진심으로 그건 아니라고 절망하고, 결국 아름다운 사랑의 출발을 위해 아름답게 약속하는 그 고뇌와 승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은 내가 아주 싫어하는 무슨 종교소설에 그치고 말았을 것 같다.

어느 날 잠자리에서 별로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던 이 책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필라의 영적 고양이, 눈물이, 방언이 참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대목을 떠올렸다. 난 신앙인이 아니니 그런 행위가 논리적으로 이해가 잘 되진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도 영적 씻김의 기억이 있지 않았던가. 개심사 새벽 예불을 보면서 하염없이 내가 저 멀리로 둥둥 떠가는 듯, 혼의 분리를 느꼈던 기억,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에서 오랫만에 기도하면서 미칠듯한 참회의 심정으로 눈물로 영혼을 씻었던 기억...

나는, 필라가 아름다운 그의 남편과 언덕 위 하얀 집에서 숲을 바라보며 학교에서 돌아올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음식을 준비하는 행복한 그림책의 마지막에 서 있길 바란다. 그러나, 서로의 영혼이 또 다른 하늘에 닿아 만나는 아름다운 체험으로부터 서로를 자기 곁으로만 끌어내리려 하지 않으며 또 그렇게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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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이은희 지음 / 궁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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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다양한 책을 읽히고 싶은 욕심에 역사, 사회, 과학, 예술, 문화, 만화까지 다양하게 책을 탐색하지만 특히나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과학 분야에서 맘에 쏙 드는 교양서(그것도 중학생이 읽을 만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기준에서 나를 아주 기쁘게 했다.

중3 국어책에는 '현대사회와 과학'이라는 단원이 있다. 과학의 가치 중립성을 생각해 보게 하는 에세이인데 이 단원 공부할 때 여러가지 과학교양서를 소개했다. 그 중 아이들이 가장 열광했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의 구성을 이야기하면서 앞에 실린 한편의 신화를 소개하고 그것을 장기이식과 연관해 쓴 글의 일부, 누나를 위해 태어난 아담이라는 아기 이야기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자 도서관에서 이책은 금방 대출이 되었고 내게도 개인적으로 와서 내 책을 빌려다 읽는 아이들이 생겼다.

사실은 중학생이 아니더라도 생물학에 별 관심이 없는 나에게도 이 책은 재미있었다. 중학교 과학 교과서 수준의 상식 정도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면서도 신화나 아주 재치있는 컷과 어우러져 읽는 재미가 있다. 신화와 생물학을 연결하는 능력을 보니 작가의 인문학적 교양도 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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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온달 힘찬문고 34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김호민 그림 / 우리교육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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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은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아이였다. 마음이 순수한 아이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바보'일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해석이 되지 않는 일이다. 조건이 딱 맞지도 않는 사람들이 죽을 듯이 사랑하게 되는 일은 드라마에만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인해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운명의 전환도 결코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다.

새학기에 아이들에게 26살의 자기소개서를 쓰라고 했다. 지금 16살인 아이들은 그 10년 동안 자신을 잘 이끌어줄 선생님 혹은 넓은 음악세계를 아는 친구, 공부에 마음 다잡은 운명적 변화의 자기자신을 만난다고 했다. 이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에게 숨겨진 잠재성을 발견해주고, 그것을 이끌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아직도 내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그 마음, 나를 정신차리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 줄 어떤 여인, 혹은 지도자, 스승, 선배, 친구...

평강이 온달을 사랑하게 된 것은 어린 날부터 거의 주입이 되다시피 한 어른들의 '교육'탓일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 그것은 별의 운명이었다. 그래서 온달이 바보이든 못난이든 평강에게 그 이름은 그 모습은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알 수 없는 운명의 끈 말고도 평강은 장군에게 두드려 맞고도 바위처럼 견뎌내던 온달의 품성에서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명을 사랑하던 숲의 아이 온달은 평강을 통해 사회적으로 가장 가능성 있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못난이 온달의 모습을 깨 버리는 평강은 지혜롭기도 하고 모질기도 한 여인이다. 사랑이란 때로 상대방을 안정과 평화보다도 세상의 험난한 세파에 강하게 대처하는 사람으로 몰아부치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게 온달은 자연의 아이에서 사회의 승자로 나아간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본성을 거스르며 강하고 굵은 남성적 질서에 나아가 목숨을 잃어야 했던 온달. 그렇게 이끌어 낸 평강의 사랑이 진정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랑은 옳은 길이 없으며 평강도 운명의 한줄기 강물에 흘러가는 사람이었을 뿐, 그녀가 신은 아니었으니, 그녀의 지혜도 인간의 그것에 불과했고 한계가 있었으니까...

나는 이 동화를 읽으며 여태껏 동화들을 읽을 때 느꼈던 행복감이나 평안함과는 다른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이 책을 중학생들의 읽기 교재로 쓰려 한다. 어린 아이들이 읽는 동화이기에 설명될 수 있고 납득될 수 있는 구조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온달과 평강, 곰 바우의 관계와 얽히는 비극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자기자신에 대한 갈등들이, 동화이고 역사 속 설화이면서도 우리 청소년들에게 던질 이야기가 많이 있으리라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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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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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거듭 나오는 귀절, 김선우가 어린 날 가슴에 새겼다는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그녀와 비슷한 나이 때 나는 실험극장인가에서 보고 온 연극 팜플렛에서 뜯어낸 '할일많은 세상, 언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랴"란 구절을 책상앞에 붙여두고 알수없는 열정을 태웠던 것 같은데... 그리고 김선우보다 훨씬 많은 지금의 나이에도 난 '나는 자유'라고 외칠 수 없는데... 두려운 것이 너무 많아서...

그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이 별'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불러놓고 나니 나의 생은 더 작아보이고 아프거나 기쁜 일들이 조금 차분해 보인다. 어쩐지 그 사람은 바로 이 글을 썼던 비슷한 나이 무렵의 나처럼 자주 길 위에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안다. 도로가 4차선, 6차선으로 넓게 포장되기 전, 미루나무가 뽑혀나가기 전의, 알 수 없는 순간에 파르스름한 하늘과 땅이 두려울 정도로 시퍼렇게 저물어 버리는 강원도의 7번 국도를. 그리고 그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나무와 산과 들판 혹은 바다 위로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떤지 하는 얼굴로 조금은 빗긴 얼굴로 떠 있던 달과 별들을...

그 사람의 글은 시도 아니고 경전도 아니지만 어쩐지 세상에 눈돌리기보다 자기자신을 고개 숙여 들여다보고, 뚫린 가슴 너머로 바다와 달과 나무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경을 읊는 어떤 사람의 눈빛처럼 무상한 무엇을 발견한다. 혹 나도 그 사람처럼 옴마니밧메홈을 외워보거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경전을 찾아 읽거나 하염없이 관음보살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조금이라도 '나는 자유!'에 다가설 수 있을까. 아니, 개심사 새벽예불을 바라보며 그 새벽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예식 속에서 저 산 아래 두고온 너무 많은 사랑과 욕심을 떠올리고 치를 떨던 나에게 그 사람의 눈빛은 내것이 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김선우, 라는 검색어로 뜨는 글들이 아직 많지 않은 세상에 기원, 기형도처럼 떠나보낸 애인을 생각하듯 가슴 아린 한권의 시집으로 남지  않도록 단 몇 권으로 남지 않도록 우리 글로라도 자주 만날 수 있도록,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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