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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학고재신서 1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1994년 6월
평점 :
절판
문화재를 예찬하는 글들은 많았다. 어렸을 때에는 거기에 많이 속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글을 가슴 벅차하며 읽고,(읽는 순간 내가 꽤 괜찮은 민족의 후손이라는 착각에 기뻐하면서) 읽고 난 후 밀려드는 허무감이 더 무거웠다. 과거에 그토록 괜찮았던 문화민족이 지금 이렇게 조악한 건축물, 지저분한 거리, 자부심이라곤 느낄 데가 없는 사람들의 감수성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무언지. 현실이 그렇지 못한데 우리가 대단한 문화재를 지녔다고 큰 소리치는 일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우리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지, 그런 허세좋은 글 썼던 이들은 고개 숙여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최순우 선생의 글을 읽으며(이분뿐은 아니다. 이전의 나의 안목으로는 보이지 않던, 좋은 글들을 요즘은 많이 만난다.) 과거에는 가졌으나 지금은 없는 무엇으로서의 문화재가 아닌, 발 하나 내디디면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지금도 살아있고 계속 만들어질 것이며 훗날도 그러할 그야말로 '문화'로서의 '문화재'들을 마음 풍성하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안목이다. 허세부리지 않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 읽을 수 있는 눈, 그것이 최순우 선생이 가진 혜안이었고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도 깨닫게 하는 고졸한 문장력이 그의 능력이었으며 그분 덕에 덩달아 눈뜨고 찾아 읽고 보게 되는 것은 나같은 사람의 행운인 것이다.
부석사에 가서 아무런 칠도 해놓지 않은 그 기둥을 살며시 안아보고 돌아와서 나는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는 말에 정말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지세 생긴 대로 층단을 지으면서 언덕을 기어 넘게 마련이어서 산이나 언덕을 뭉개기 좋아하는 요새 사람들의 생리와는 크게 마음이 다르다.'하는 것은 굳이 경복궁 담장을 따라 가 보지 않아도 이름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의 자그마한 절터나 돌탑 주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습들이다. 한국인이 자연이 가지고 있는 모습에서 어그러지지 않고 건축물을 만드는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내 살던 삼척의 죽서루로 예를 들 땐 한참 전에 본, 바위 지면을 살려 세웠기에 네 기둥의 길이가 다 다르다는 그 누각의 미덕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다.
가령, 어떠한 건축양식이라거나 연대가 어찌되었다거나 어떤 종교정신을 담았다거나, 이러한 근거와 논리를 대지는 못하지만 나에게 어떤 건물이나 돌덩이나 조형물이 기쁨을 준다면 그건 순전히 나의 느낌에 불과하다. 그런들 어떠랴. 나의 일천한 안목이 최순우 선생처럼 깊은 안목과 일치하면 영광이고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앞서 눈뜬 사람들이 이렇게 길잡이가 되어주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기쁨을 우리같은 사람들도 이생에서 누리고 가게 되는 게 아닌가. 그것이 안목있는 사람의 할일이요, 글솜씨 있는 이들의 역할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