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학고재 산문선 3
박지원 지음 / 학고재 / 1997년 9월
평점 :
품절


생각하는 폭이 좁은 사회에서, 폭넓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 살기가 얼마나 피곤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디에도 완전히 자유로운 세상이란 것은 없겠지만 행동 뿐 아니라 생각에도 한계를 지어주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이단아 취급하는 사회에서 인식의 폭이 넒은 사람들은 단순하고 말잗듣는 사람보다 분명 힘겹게 살았으리라.

연암 박지원은 당대에 탄압을 받을 만큼 분방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어쩌면 조선후기 사회가 통제할 수 있는 스펙트럼 자체를 뛰어넘고 있었던게 아닐까) 당신 소위 '선비'들의 인식론과는 그 폭이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저 허공을 날며 우는 새의 소리야말로 얼마나 생기 넘치는가. 그런데 적막하게도 새 조(鳥) 한 글자로 새들의 빛나는 색깔을 말살하고 몰각시키며 그 모습과 소리를 놓치고 없애버리니...(중략) 문장은 이 광경보다 더 나을 것은 없다.'

실질을 만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생생한 것들을 글로 표현할 길 없었고, 글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글 그 자체를 위하여 무엇이 살아있는 것인지조차 모르는 채 허상은 좇던 시절에 박지원의 혜안이 빛난다.

그러나, 그 시절보다는 발에 땅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 지금 세상에도 여전히 '문장은 이 광경보다 더 나을 것은 없다'는 말이 뼈에 사무치는 것은 여전히 자기 허영심의 바람으로 둥둥 허공에 떠다니는 '글쓰는 이'들이 많은 현실 때문인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