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어진 바지를 기워입으면 밤하늘의 별이 더 맑고 환하게 빛난다. 그렇다. 정말 그렇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토록 많은 옷들을 만들어내는 걸까. 어렵지 않게 옷을 사입고 얼마 입지 않고 새로운 옷을 또 산다. 낡거나 터졌다고 기워입으려 들지 않는다. 옷은 곧 그 사람의 품위를 나타내기에 헐한 옷을 입는 것은 라면으로 점심을 먹는 것보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게 지금의 세태이다. 나 역시 앞발가락 나달나달해진 양말은 아이발에서 획 빼앗아 더 이상 신지 말라 한다. 왜, 부끄러우니까.도대체 뭐가 부끄러운가. 낡은 옷을 입는 것이? 쓸데없이 내 작은 한 몸에 버거울 만큼 많은 옷들과 차들과 신발들, 누릴 물건들에 싸여 나 자신 점점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가며 내 눈에 비칠 별빛들을 가리고 있는 것이 더더욱 부끄러운 일 아닌가.그동화 속의 또야너구리는 이쁘게도, 자신의 기운 바지가 시냇물을 더 맑게 하고 거기에 물고기들을 더 많이 살게 해준다는 엄마 말에 금방 설득된다. 또야의 유치원 친구들도 선생님 말씀을 듣고는 금세 자기들도 기운 옷들을 입겠노라고 마음을 모은다. 동화 속 아기 너구리들의 표정이 너무 이쁘다. 그렇게 빨리 엄마의, 선생님의 마음과 말을 이해해 주어서 더더욱 이쁘다. 동화 속 그림만큼이나 이쁘다.그러나 그것은 동화일 뿐, 돌아와 어디에도 옷 기워입힐 엄마도, 기꺼이 기운 옷을 입을 아기도 없음이여, 다시 더는 빛나지 않을 별빛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