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테 콜비츠 역사 인물 찾기 2
카테리네 크라머 지음, 이순례.최영진 옮김 / 실천문학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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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이다. 하지만 자주 보는 책이기도 하다. 많이 낡았다.글보다 케테 콜비츠의 판화들을 다시 여러번 펼쳐본다. 무겁고 슬프다. 그림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만 같은 몇 안 되는 그림들이다.

그녀가 미술학교를 다닐 때 그녀의 선생이 소묘솜씨를 비판했다더니, 그래서 그런지 그림이 기교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혼이 실린 것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서툴어도, 서툴수록 마음을 흔드는 그 무엇. 그게 있다. 그녀가 여자였고, 몇 안되는 판화가였고, 정치의식을 예술에 잘 녹여냈고, 그리하여 예술의 실용적 측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고... 그런 모든 것들이 나의 마음을 잡아 끌지만 한가지 더 공감을 가질 수 있는 요소가 있다.

그녀는 미술을 늦게 시작하였고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교수에게 소묘 솜씨에 대한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회화가 아닌 판화에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면서도 가장 잘해낼 수 있는 출구를 찾아냈다. 만세! 그런 인생이고 싶다.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서 더 멋진 것을 찾아내는 그런 인생, 자신의 슬픔을 원동력으로 삼아 더 강해질 수 있는 인생, 그리하여 아름다울 수 있는 인생, 그것으로 많은 이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인생, 그것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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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고향
신영훈 글, 김대벽 사진 / 대원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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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사진을 얻기 위해 이 책을 샀다. 글이 풍기는 냄새도 사진과 별 다르지 않았다. 어느 흐린 날 - 그런 날이라야 냄새도 눅진하니 땅으로 기어 더 깊이 퍼진다 - 삭정이와 마른 나뭇잎 모아 태우는 냄새 같은 것. 사진 속의 손으로 빚은 징검다리, 휘어진 나무 줄기를 그대로 기둥으로 삼은 어느 부엌 뒤, 뒤란으로 향한 작은 문을 열면 뒷담장과 문 사이 작은 공간에 툭툭 떨어지는 감꽃. 어린 시절 분명 어딘가에서 보았을 터이다, 그런 풍경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꼬맹이 시절에 충청도 깡촌에 있는 시골집을 찾아 버스도 없는 길을 걸어들어갈 때, 어디선가 분명 이 장면들을 본 듯한 낯익음을 느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어린시절이었을까, 아님 전생이었을까.

혹시 그런 인연을 사진으로나마 다시 만날까 하여 군침을 흘리면서 책을 들여다 보고 저 뒷뜰 그늘에 뭔가 있을 것만 같은 집 그림은 스케치로 옮겨도 보았다. 경복궁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꽃담 무늬를 스케치해 보아라, 시켜놓고 정작은 나자신도 거의 처음으로 찬찬히 그 무늬들을 살폈다. 닮았어도 어느 하나도 똑같지 않은 단아하면서도 귀여운 무늬들을 놓은 사람들은 담장을 짓는 동안만이라도 그 안에 들어 살 사람들의 혼이 되어보았나보다. 참 재미있었겠다. 내 살 집 담장, 돌 주워다 흙개어다 지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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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턴 휴즈 역사 인물 찾기 6
밀턴 멜저 / 실천문학사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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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할렘 강가에 나가 울어본 적 있는가,
그녀, 태어나지 말았기를 빌어본 적 있는가.

오래된 기억이지만 휴즈의 시에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 귀절이다. 나는 그 두 가지 정서를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지구 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의 국민이고 역시 내가 이해하려고 노력해본 적 없은 흑'인종'이다. 그만큼 내인생에 정서적으로 다사롭게 다가갈 여지가 없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매료되는 소울이나 재즈조차에도 별 공감을 못 느낄 정도니까. 그러나 그의 시는 달랐다. 그의 사회적 활동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두 가지, 시가 쉽게 대중에게 파고 들어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하리란 믿음과, 그 믿음을 실현가능한 것으로 이루어낸 그의 의지와 실천, 그리고 그의 시, 이 두 가지에 90%의 공감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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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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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음악, 미술, 문학, 그리고 생활. 그것들의 공통점은 공학적이고 나름대로의 체계와 매커니즘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과 생활은 비교적 땅에 가깝고 문화적이기 이전에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에서 무질서한 가운데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기능적 미학, 삶에 근거한 고졸함이 있어 그 자체로 문화를 만드는 것을 종으로, 횡으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건축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전시관이나 박물관에서 고상한 옷을 차려입고 우아하게 전시물을 바라보는 차원의 것과는 다르다. 아마도 서현씨는 유기체로서의 건축물에서 살아있는 문화적 미학을 찾아내고 싶은 것이었으리라.

우리의 건축물들이 미학적인 면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역사적 시대적 척박함이 가장 클 것 같다. 식민의 역사와 무리한 근대화와 경제적 가치가 삶의 최고의 가치가 되었던 경제주의적 가치관, 그것들과 맞물려 우리들을 주눅들고 메마르게 목조였던 독재주의 군사문화... 그래서 문화는 배부르고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어 우리 삶 전반에 부드럽게 총체적으로 녹아내리지 못했다.

한강을 건널 때마다 이 아름다운 한강을 망쳐버린 도시공학에 치를 떤다. 어느 위대한 건축가나 도시계획자가 있어 한순간 이 땅을 살려낼 수 있는 구조는 아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내 아들아, 너를 잘 키워 안목있는 솜씨로 우리 사는 땅을 멋지게 세워보라 하고 싶다.
서현씨의 미덕은 건축물을 공학적으로만 보지 않았고 삶이자 곧 문화이며 아름다움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일깨운 것이다. 또 하나, 그의 그야말로 문학적인 글솜씨, 그리고 사람이든 건물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지긋한 눈으로 그 뒷면을 바라보는 안목이다.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집에서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것 밝혀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어야 하겠다. 우리는 받지 못한 그 혜택을 조금이라도 주는 것, 내 미약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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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지오노 지음,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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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진짜 좋은 것들은 반짝이는 외양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걸 확인한다. 진짜 좋은 책은 멋진 장정, 화려한 문체, 베스트 셀러, 여러 번의 수상 경력, 작각의 특이한 행적, 그런 것이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진짜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조금 싱겁기까지 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도 내일부터 하루 한 알씩 도토리를 심어 크고 울창한 상수리 숲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만큼 그 일은 '실천 가능한' 일로서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러나 보라,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당장 일어나 무씨 하나조차 심는 실천을 쉽게 해낼 수 없는 이유가 뭔가. 그 일이 하찮은 것 같이 보이는 것은 기술이 필요한 것도, 자본이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 그런데 누구나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일이 씨앗을 심으면 나고 자라 나무가 되리라는 신념, 그 일에 걸릴 엄청난 시간에 욕심을 매어두지 않을 수 있는 정신적 여유, 그리고 인내심, 그 일로부터 어떤 개인적인 이득도 기대하지 않는 너그러움이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이 시리게 푸른 숲들을 내 나라 곳곳에서 보고 싶으면서도 늘 그러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아파한다. 우리에게도 나무를 심은 사람처럼 자신의 슬픔을 씨앗 하나하나를 다듬어 심는 희망의 힘으로 바꿀 사람은 없는가. 아니 있다면 그가 숲들을 가꾸어 가는 그 시간을 기다려줄 현실이기는 한가.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작은 씨앗 하나를 심고 가꿀 뿐 아니라 그 가꾸는 기쁨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마음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내게 알려지지 않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숲과 물과 바람을 가꾸고 있다. 그래서 그나마 이렇게 세상이 더럽혀지고 있어도 어디선가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 아이들 하나하나가 그 안에 나무를 숨긴 실한 씨앗들임을 매일매일 깨닫는다. 그들이 내 품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10년, 20년 후 멋진 나무가 되어 세상 어딘가에 또 다른 씨앗을 퍼트리란 걸 안다. 나 역시 이 땅에 나무를 심는 사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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