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
장지오노 지음,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한 번, 진짜 좋은 것들은 반짝이는 외양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걸 확인한다. 진짜 좋은 책은 멋진 장정, 화려한 문체, 베스트 셀러, 여러 번의 수상 경력, 작각의 특이한 행적, 그런 것이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진짜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조금 싱겁기까지 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도 내일부터 하루 한 알씩 도토리를 심어 크고 울창한 상수리 숲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만큼 그 일은 '실천 가능한' 일로서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러나 보라,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당장 일어나 무씨 하나조차 심는 실천을 쉽게 해낼 수 없는 이유가 뭔가. 그 일이 하찮은 것 같이 보이는 것은 기술이 필요한 것도, 자본이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 그런데 누구나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일이 씨앗을 심으면 나고 자라 나무가 되리라는 신념, 그 일에 걸릴 엄청난 시간에 욕심을 매어두지 않을 수 있는 정신적 여유, 그리고 인내심, 그 일로부터 어떤 개인적인 이득도 기대하지 않는 너그러움이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이 시리게 푸른 숲들을 내 나라 곳곳에서 보고 싶으면서도 늘 그러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아파한다. 우리에게도 나무를 심은 사람처럼 자신의 슬픔을 씨앗 하나하나를 다듬어 심는 희망의 힘으로 바꿀 사람은 없는가. 아니 있다면 그가 숲들을 가꾸어 가는 그 시간을 기다려줄 현실이기는 한가.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작은 씨앗 하나를 심고 가꿀 뿐 아니라 그 가꾸는 기쁨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마음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내게 알려지지 않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숲과 물과 바람을 가꾸고 있다. 그래서 그나마 이렇게 세상이 더럽혀지고 있어도 어디선가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 아이들 하나하나가 그 안에 나무를 숨긴 실한 씨앗들임을 매일매일 깨닫는다. 그들이 내 품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10년, 20년 후 멋진 나무가 되어 세상 어딘가에 또 다른 씨앗을 퍼트리란 걸 안다. 나 역시 이 땅에 나무를 심는 사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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