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나라 여행
제홈 뤼이이에 글 그림 / 크레용하우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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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는 이 책으로 말도 배우고 색깔도 배웠다. 각 페이지만다 있는 문장이 길지도 않으니 몇 번 잘 때마다 읽고는 그 내용을 거의 외웠다. 그러면서 말문 트던 시기에 문장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색깔들. 여지껏 손바닥만한 보드북에 한 가지 사물에 한 가지 색을 입혀놓고 빨강, 노랑, 파랑, 이렇게 가르치려들던 것들과는 많이 다르다. 하나의 색깔로 하나의 장(場)이 마련되고 그 자체가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여행'이란 이름 아래 연결된다. 그림에 쓰인 색채들이 정말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파란 색들이 좋았지만 초록 세상도 예뻤다. 초록만으로도 충분할 것처럼 예쁜 세상. 현실세계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운 그런 세상. 그런데, 여행에서 만난 온갖 색의 사물들이 그 초록 세상으로 들어오니 더더욱 예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은 초록을 바탕으로 하여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는 그런 세상이려나.

다만 이야기 속에서 회색은 도시의 색, 검은 색은 괴물의 색, 이런 식으로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질 위험이 조금 우려되긴 했다. 빨간 색은 복잡하고 소란한 느낌으로 표현되었지만 칸딘스키는 그것을 트럼펫의 높고 경쾌한 소리의 느낌과 연결했었다. 그래도 어쨌든 인간이 푸른 자연의 품에 안겨야 가장 행복할 수 있음을 이야기해서 좋았다. 내가 만난 '그림책'으로서는 색깔과 사람의 삶을 함께 이야기한 드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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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어른을 위한 동화 2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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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에게 쌩떽쥐뻬리의 어린왕자 만큼의 점수를 주고 싶다. 어린왕자에 비해 너무 교훈적이라고 비판한다면 할 수 없다. 그것이 교훈일지라도 삶을 호도하지 않고 이렇게 힘을 주는 교훈을 어디 가서 쉽게 얻을 수 있으랴.

이 책은 쉽고 재미있고 얻을 게 있고 아름답다. 책이 가지고 있어야 할 미덕들을 다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짧기까지.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책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중학생들에게 아주 많이 권한다. 이 책이 책읽기의 길로 인도한 나의 아이들이 아주 많다는 일도 참 고마운 일이다.

연어의 생태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한 구석이 아주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간결하고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로 만든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 그저 나 자신을 위해 이 책을 읽었을 때에도 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 다음 이야기를 자주 인용한다.

사람들이 연어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편안한 물길을 애써 버리고 폭포를 거슬러 올라갈 길을 선택하면서 은빛 연어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쉬운 길을 택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새끼들도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할 것이고, 곧 거기에 익숙해지고 말 거야.... 우리들이 지금, 여기서 보내고 있는 한순간, 한순간이 먼 훗날 우리 새끼들의 뼈와 살이 되고 옹골진 삶이 되는 건 아닐까?'

고난을 이겨내는 힘과 강인한 의지, 진지한 삶의 태도도 유전이 된다고 믿고 싶다. 그렇기만 하다면 나 더 열심히 살아 내 아이들과 손자들에게 이 삶의 가볍지 아니한 가치를 고스란히 알아챌 수 있는 능력까지도 물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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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 - 북경이야기 1, 전학년문고 3015 베틀북 리딩클럽 17
린하이윈 지음, 관웨이싱 그림, 방철환 옮김 / 베틀북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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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책은 쉬워야 한다? 그래서 그림이 단순해도 좀 부족해도 된다? 아이들은 어렵고 복잡한 문학적 은유를 이해하지 못하니 현실적이고 간단한 문장으로 써야한다? 너무 깊은 인생의 의미는 말해줘봐야 이해 못한다?

그런 오해 속에서 우리에게 어린이 책들은 대개가 유치하다. 유아나 저학년에서는 그래도 이쁘고 재미난 책들이 꽤 있어도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수준의 책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 대개는 정말로 아직은 이해도 되지 않을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들이 초등학교 고학년들에게 억지로 읽혀지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라. 삽화 하나하나가 작품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뛰어나게 아름다울 뿐 아니라 진정한 성장기 소설이라 할만큼 어른들의 이야기를 모르는 채 시치미 떼지도 않고 순진한 척 하지도 않으면서 어린이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문장은 또 얼마나 시적인가. 책의 제목부터가 그랬다.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 '바다' 소리만 나와도 가슴이 설레이는 내가 이 문장이 가지고 있는 설레임을 놓칠 리 없다. 정작 바다를 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지의 바다, 그것을 보러 가리라는 의지와 설레임, 그것은 어린 날 먼 어떤 곳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이고 희망이지 않는가. 조금 달뜬 목소리로, 10대 초반기에 세상에 대해 우리도 그렇게 속삭였다.

잉쯔는 어린아이 답게 어리숙한 면도 있지만 때때로 영악하고 벌써 세상으로 발 내딛기 시작할 때라 부모에 대해 조금 심드렁하기도 하고 또 어린애다운 이기심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스한 동정심과 분노도 가지고 있다. 이맘 때 어린 아이란 그런 것이다. 착하기만, 어리석기만, 욕심장이이기만 한 아이는 없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복함적인 성향과 지향을 어른들은 벌써 잊었다. 그걸 잊어버리지 않아야 린하이윈 같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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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동무 1
권정생 지음, 박경진 그림 / 우리교육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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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어진 바지를 기워입으면 밤하늘의 별이 더 맑고 환하게 빛난다. 그렇다. 정말 그렇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토록 많은 옷들을 만들어내는 걸까. 어렵지 않게 옷을 사입고 얼마 입지 않고 새로운 옷을 또 산다. 낡거나 터졌다고 기워입으려 들지 않는다. 옷은 곧 그 사람의 품위를 나타내기에 헐한 옷을 입는 것은 라면으로 점심을 먹는 것보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게 지금의 세태이다. 나 역시 앞발가락 나달나달해진 양말은 아이발에서 획 빼앗아 더 이상 신지 말라 한다. 왜, 부끄러우니까.

도대체 뭐가 부끄러운가. 낡은 옷을 입는 것이? 쓸데없이 내 작은 한 몸에 버거울 만큼 많은 옷들과 차들과 신발들, 누릴 물건들에 싸여 나 자신 점점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가며 내 눈에 비칠 별빛들을 가리고 있는 것이 더더욱 부끄러운 일 아닌가.

그동화 속의 또야너구리는 이쁘게도, 자신의 기운 바지가 시냇물을 더 맑게 하고 거기에 물고기들을 더 많이 살게 해준다는 엄마 말에 금방 설득된다. 또야의 유치원 친구들도 선생님 말씀을 듣고는 금세 자기들도 기운 옷들을 입겠노라고 마음을 모은다. 동화 속 아기 너구리들의 표정이 너무 이쁘다. 그렇게 빨리 엄마의, 선생님의 마음과 말을 이해해 주어서 더더욱 이쁘다. 동화 속 그림만큼이나 이쁘다.

그러나 그것은 동화일 뿐, 돌아와 어디에도 옷 기워입힐 엄마도, 기꺼이 기운 옷을 입을 아기도 없음이여, 다시 더는 빛나지 않을 별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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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6-12-1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엄마가 조그만 전구를 양말속에 넣고 깁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 양말이 참 창피하다고 여긴적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철이 없었던거 맞겠지요?
풀꽃선생님.... 감기 조심하세요..
 
슬픈 열대 한길그레이트북스 3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 한길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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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적인 모험과 실험을 다 극복해 내고 자신의 이론에 살을 붙여 살아있는 것으로 일으켜 세우는 '학자'들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혹은 그런 노고를 부렸다 하더라도 교묘한 지배논리나 이념에 악용되어 결국 숭고한 노고를 독재자의 아전인수에 놀아나게 한 수많은 학자들이 있었음을 생각할 때 레비스트로스처럼 흔들리지 않는 냉철하고 바른 시선을 입증하기 위해 고생과 모험을 마다하지 않은 학자의 존재는 참으로 귀하기 짝이 없다.

'어린왕자'에 나오던가, 남들이 탐험을 하고 돌아와서 주는 자료들로 지도를 만드는 지리학자였던가, 그 동화의 비아냥이 참 재미있게는 생각되었어도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실제로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탁상공론을 펼치는지, 그 폐해가 어떤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다. 단순히 다리품을 파는 정도가 아니라 기아와 더위와 온갖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브라질 열대림을 원주민들과 함께 헤치고 돌아다녀야 하는 고생이야 말로 다하랴.

레비스트로스의 모험과 실천 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떤 부족 사람들이 누에만한 애벌레를 주식으로 삼는다 하기에 그 살아있는 애벌레를 먹어본다. 때로는 정말 식량이 없어서도 그랬고 때로는 그들이 왜 그런 것들을 먹고 사는지 이해하고 알아야 하는 차원에서도 원주민들이 먹는 음식들을 같이 먹곤 했단다. 그 애벌레의 몸통 가운데를 분질러 노랗게 흘러나오는 즙을 먹어보니 무슨 치즈맛 같은 게 난다고 담담히 서술한다.

그런데 레비스트로스의 글은 그의 발품이 열정적이었던데 비해 조금은 건조하고 냉철하다. 그래서 더욱 신뢰를 주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의 장을 연 사람으로 레비스트로스를 많이 언급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미개'에 대해 우호적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문명인, 아니 서양인의 입장에서 '문명'이라 부르든 '미개'라 부르든 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에는 어떠한 형태이든 '문화'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다가가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쓸데없는 우월의식도, 특히 지배나 정복의 욕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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