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홍주와 왕도손의 사건일지 - 경성탐정록

경성탐정록 ㅣ 경성탐정록 1
한동진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9년 1월

  경성 최고의 민완 탐정 설홍주, 그와 함께 하숙하는 한의사 왕도손. 책을 펼치자마자 웃었다. 이거 너무 깜찍하잖아~ 하하하하 

  탐정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한국소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 정보 없이 나에게 선택되어진 책. 그런데 하필이면 셜록홈즈에 푹 빠져서 전집과 그 이외의 패스티시 작품에까지 손을 대고 있는 와중에, 주인공 탐정 '설홍주'와 그의 친구 의사 '왕도손'은 이름 자체만으로 나는 '아~ 이거 셜록홈즈와 왓슨이잖아'라고 단박에 알아차리고 그 재기발랄함이 참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어나갔다. 

  또한 장편인가 했는데, 5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단편들의 제목이 멋드러진다. 운수좋은날, 광화사, 소나기, 천변풍경...... 한국 문학사에 그 이름만으로도 뚜렷한 지표가 되는 작품들이 각 단편의 제목이고 그냥 제목만 가져다 그렇게 붙인 것이 아니라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나 배경, 분위기 등과도 너무 잘 어울린다.  

  설홍주는 사건을 풀고, 왕도순은 그의 곁에서 사건을 자신의 시점에서 기록한다. 경찰들도 풀지 못할 사건에 뛰어들어 논리적인 추리 하나만으로 난해한 사건을 술술 풀어낸다. <운수좋은날>에서 범인은 정말 운수도 좋게 완전범죄를 눈 앞에 두고 왕도순을 인력거에 태웠다는 악운으로 인해 설홍주에게 덜미를 잡힌다. <황금사각형>에서는 암호를 풀어 결국 보물을 찾아낸다는 이야기, <광화사>에서는 정말 기묘한 변사체의 정체와 지능적인 살인범과의 두뇌대결 등이 펼쳐진다. 

  한국추리계에서 이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한 작가의 단편집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비문은 눈에 띄지 않고 반듯하면서도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길이의 잘 정리된 문장과 물 흐르듯이 매끈한 사건 전개는 인상적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다. 일단 캐릭터가 너무 단편적이다 못해 죽어있다. 셜록홈즈와 왓슨의 이미지만 있을 뿐, 설홍주와 왕도손은 없었다. 두 사람의 개인적인 과거나 특징적인 성격이나 버릇 같은 것을 설정해서 독자가 캐릭터에 대해 애정 혹은 애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 꼭 셜록홈즈와 왓슨에 얽매이지 않았어도 됐을텐데, 너무 매몰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사건 전개 방식은 시간순차적이다. 사건이 생기고 설홍주가 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왕도순과 함께 사건을 풀고 범인을 잡는다. 끝~~.... 회상도 없고 시간역순적인 배치나 범인의 입장에서의 반추도 없다. 셜록홈즈 시리즈에서는 오랜 원한으로 인한 범죄 뒤에 범인이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기도 하는데 이 단편집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그래서 읽어나갈수록 조금 지루해서 지치기도 한다. 

  이 단편집은 한번쯤 읽고 한국미스터리문학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여지를 독자에게 던져주고 있다. 조금 미숙하지만 애정어린 시선으로 감싸줘야 할 부분도 있고 질책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홍주와 왕도손을 탄생시키고 기발한 트릭으로 사건을 잘 포장해낸 능력에 찬사를 보내야 할 부분도 있다. 특히 <천변풍경>에서 천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사건의 진행과 생각지도 못했던 트릭에는 깜짝 놀랐다. 다섯 편의 단편 중에서 <천변풍경>을 베스트로 꼽고 싶다! 

ps. 네이버 캐스트에 설홍주 시리즈의 새 단편 '무가'가 있다고 하네.. 찾아봐야겠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