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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마법을 쓴다
프리츠 라이버 지음, 송경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봄 햇볕이 평화롭게 흘러넘쳤고. 팔꿈치께의 창문으로는 향기로운 공기가 온화하게 흘러 들어왔다.' 노먼에게는 이토록 달콤하고 아늑한 오후였다. 오래 미루어왔던 논문의 마지막을 끝내면서 만족스러운 한숨을 쉬며 그는 행복의 봉우리에 도달했다.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보수적인 대학 교수자리도 어느정도 익숙해졌고, 교수 부인이라는 옷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아내 탠시도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아내의 화장방을 엿보고 말았다. 행복의 봉우리에 서 있던 노먼은 다시 하강하기 시작한다. 그 곳에는 마법도구들과 주술과 관련된 서적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이성과 합리성과 논리가 최고의 지향점이라고 믿고 있는 사회학 교수에게 아내의 마법도구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쁨이 최고조일 때 누렸던 사치는 이제 서서히 악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탠시는 노먼에게 당신과 당신의 직업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노먼은 합리성의 정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인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자신을 위해 마법에 빠져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탠시는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모든 마법과 관련된 것들을 없애버리고, 그리고 이후 노먼에게 악운이 계속되는 며칠이 이어진다.
노먼은 합리주의자다.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고 일을 결정하고 논리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현대인이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중심주의는 자연을 분해하고 재구축하면서 과학을 발달시켰고, 원자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까지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두번에 걸친 세계대전 속에서 인간을 실험체 삼아 과학은 더욱 발전할 수 있었고, 신은 죽었다고 선언되고 감성은 비합리적인 것이 되었고 여성보다 이성적인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가 당연해졌다. 바야흐로 세계는 이성중심주의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다. 그런 노먼에게 자신의 부인 뿐만 아니라 주위 여자들이 오래전부터 마법을 써오고 있다는 사실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고, 너무나도 원시적인 주술이 현대를 살고 있는 '나'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 아무리 곰곰히 생각을 해봐도, 지붕 위의 드래곤 석상이 볼 때마다 위치가 바뀌는 등의 불가해한 일이 자꾸 일어나도 마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의 물리학적, 사회적 소견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논리적인 사고에 위배되는 것이다. 마법이 행해지고 마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기는 하지만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노먼은 마법을 끝까지 부정한다. 귀신 혹은 유령이나 마법의 존재 유무를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충분히 근거가 있고 타당하다고 느끼는 점에 대해서 단지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증명되지 않았다고 무시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린 일은 없었을까. 조금 더 소급해보자면 나와는 다른 인생관을 가지고 삶을 대하고 있는 자를 무시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을까. 노먼은 마법을 쓴다고 아내를 부정하기까지 한다. 마법이 효과가 있든 없든 마법을 사용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내에게 큰 실망을 한다. 하지만 그럴 이유를 무엇인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 때문인가?
노먼과 같이 이성과 합리성, 논리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도 세상을 치열하게 보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물 흐르듯 살고 있는 친구의 웃음이 이성적이지 않다고, 참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와 다르다는 것,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선택한다는 것은, 거부감이 드는 일일 것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같다.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고 생각하는 존재... 인종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지만 그것은 틀리다고 생각하는 존재. 그들은 틀리고 나와 내 울타리 안의 사람은 옳다고 생각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닐까......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가운데 이 책은 출판되었다. 나치즘, 공산주의, 자유주의가 뒤엉켜있고 세계는 서로 죽고 죽이는 아수라장이다. 나와 내가 지켜야하는 울타리 밖의 사람은 모두 적이고 모두 알 수 없는 대상이다. 아내는 남편을 지키기 위해 마법을 쓰고, 남편은 자신이 믿고 있었던 학문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마법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울타리 밖의 세 마녀는 아내의 영혼을 빼앗아가버린다. 서로의 욕망을 위해서....
이 소설이 세번씩이나 옇화화되었던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환상소설이나 공포소설에 전혀 관심이 없고 흥미도 못느끼지만 이 소설이 환상소설이라는 점을 떠나서 소설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해준다. 나와 나를 둘러싼 울타리와 바깥의 세계와의 대립에서 의미는 더욱 확장되어 현실과 초자연의 대립까지도 영역을 확장한다. '나'라는 인간에서 출발해서 가족, 친구, 사회, 자연, 우주까지 이 소설은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하면서 인간의 사고에 대해 의문부호를 독자에게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