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6월
구판절판


"이 세계에서는 말이에요... 니시노소노씨. 알고 싶은 건 금방 눈앞에서 볼 수 있어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눈앞에 있어요.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게 당연한 일인 거죠. 안 그래요? 원래 세상은 이랬어요. 그런데 지금 당신의 세계가 얼마나 어중간하고 부자유스러운지 생각해 봐요. 멀리 있는 목소리가 들리고, 멀리 있는 것이 보이기는 하지만 만질 수는 없어요. 산더미 같은 정보가 주어지는데도 모두 잊혀지고 잃어버릴 수밖에 없어요. 정보가 많아서 옆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게 되는 거예요. 사람들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어요. 왜 그렇게 떨어지고, 멀어지려고 하는 걸까요? 권총의 총알이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일까요? 니시노소노씨, 신이란 것도 왜 그렇게 멀리 있는 거죠? 정말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거라면 왜 우리 눈앞에 계시지 않는 걸까요?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모에는 무어라 말하고 싶었다.
"안녕히.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군요." 여자의 목소리만 들렸다.
"어디 있는가는 문제가 아니에요. 만나고 싶은지 만나고 싶지 않은지, 바로 그게 거리를 결정하는 거예요."-248-249쪽

"추억과 기억이란 게 어떻게 다른지 알아?" 사이카와는 담배를 끄면서 말했다.
"추억은 즐거웠던 일, 기억은 나빴던 일투성이죠."
"그렇지 않아. 나쁜 추억도 있고 즐거운 기억도 있어."
"그럼 뭐가 다르죠?"
"추억은 전부 기억할 수 있지만, 기억은 전부 추억할 수 없다는 거야."-257-258쪽

" 왜 몸에 나쁜 걸 피우는 거죠?"
"글쎄요, 왜 그럴까요..." 사이카와는 미소 지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맛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냥 그뿐입니다. 생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걸까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삶을 두려워하는 거죠." 시키는 말했다.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수 있다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테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사이카와는 끄덕였다. 그도 그 말에 동감하고 있었다.
"애초에 살아 있는 쪽이 이상한 상태죠." 시키는 미소 지었다.
"죽어 있는 게 본래 상태이고, 살아 있는 건, 뭐라고 할까요....., 기계가 고장난 상태라고나 할까, 생명이란 버그인 거죠."
"버그? 컴퓨터의 버그 말입니까?" 사이카와는 한 순간의 공백을 둔 다음에야 그녀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 숨어 있는 실수......, 그렇다, 버그일지도 모른다. 신이 만든 프로그램의 버그, 그것이야말로 인류라고 할 수 있다.-442-443쪽

"여드름 같은.... 병인거죠. 살아있다는 건 그 자체가 병이에요. 병이 나았을 때, 생명도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요, 예를 들자면, 교수님, 자고 싶을 때가 있죠? 잠잘 때의 편안함이란, 참 신기하지요. 왜 우리의 의식은 의식을 잃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자고 있는 걸 누가 꺠우면 불쾌하지 않던가요? 각성(覺醒)은 본능적으로 불쾌한 거죠. 탄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태어나는 아기들도, 그래서 모두 우는 거겠지요......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4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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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2010-01-08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늘 이상했어. 생명체를 왜 잠을 자는지, 인간은 왜 몸에 나쁜지 알면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하는지. 생명이라는 것이 버그라면, 이해가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