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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5살에 양친을 살해한, 천재 프로그래머 마가타 시키 여사가 팔다리 모두 절단당한채 살해당했다. 그런데 살인이 일어난 장소는 완벽한 3중밀실이다. 누가 범인인가? 그리고 어떻게 범행이 가능했던가?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명문가 부잣집 철없는 아가씨 니시노소노 모에와 그녀의 담당교수인 건축공학과 조교수 사이카와 쿄스케다. 그리고 마가타 시키라는 사람은 15살에 양친을 칼로 찔러 죽였지만 심신상실을 인정받아 정신병원 대신에 작은 섬에 연구소를 세우고 15년 이상 자신의 방에서 누구도 만나지 않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천재공학자다. 어찌어찌해서 연구소가 있는 섬으로 캠핑을 떠나게 된 니시노소노와 사이카와 앞에 마가타 시키가 팔다리가 절단된 채 웨딩드레스를 입고 운반로봇에 얹혀져서 15년이 넘는 동안 한번도 나온적이 없는 문에서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시작된다.
그런데 살인이 일어난 방은 3중완전밀실이다. 시키 여사는 오랫동안 삼엄한 감시를 받으며 자신의 방에서 한발자국도 나올 수 없었고 게다가 24시간 감시카메라와 보안요원 두명이 방 앞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들어간 사람도 나온 사람도 없는데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시체가 그 방에서 튀어나온다. 두번째로 어찌어찌 여사의 방을 누군가가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해도 연구소는 출입기록이 완벽하게 기록되고 창문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세번째로 연구소는 배도 다니지 않는 아주 외딴섬에 있다. 하필이면 그 때 연구소 시스템에 에러가 생겨 전화나 통신은 모두 두절되어 외부로의 연락이나 교통편은 있을 수도 없다. 범인은 아직 연구소에 있는데 감시카메라에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아서 이 트릭을 깨지 않는한 범인을 잡을 수가 없게 된다.
먼저 저자의 직업이 나고야 대학 건축공학부 교수라는 것이 시사해주듯이 사이카와는 저자의 분신이다. 그래서 그의 입을 통해서 천재가 만들어내는 미래에 대해 설명하면서 공학적인 용어들이 조금 등장한다. 초보적인 비트, 바이트 개념부터 가상현실, 네트워크, 건물 전체를 관리하는 시스템, 원격회의 같은 개념들이 등장한다. 뭐, 지금의 시선으로 봐서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을 뿐 책 속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카트에 앉아 3D 입체게임을 즐기는 것도 머지 않았다. 하지만 출판된 96년도에는 집집마다 PC가 있지도 않았고 인터넷이라는 것도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시대적으로 뒤쳐진 느낌이 드는 개념들이지만 이미 실현화된 사회라고 보면서 책을 읽어도 무방하다. 96년 당시의 최첨단 연구소는 이제는 어디에나 있는 연구소로 이미지가 바뀌고 어떤 이미지의 연구소라도 사건의 무대로써는 충분하니까. 전통적으로 창문과 방문이 모두 잠겨져 있는 밀실 트릭이 아닌, 당시 최첨단이라 할 수 있는 공학시스템이 만들어낸 밀실살인에도 어차피 누군가가 출입할 수 있었으니 살인이 일어난 것 아니겠는가.
천재 연구자가 3중밀실에서 살해되고 연구소 전체가 시스템 에러로 뒤죽박죽, 하지만 시키 여사를 감시하던 곳의 시스템은 별개의 것이라 카메라 조작은 있을 수도 없는일. 트릭을 풀기 위해 사이카와는 가설을 세워보지만 어떤 것도 들어맞지 않다가 우연히 시계를 보다가 영감이 떠오른다. 1분의 차이, 1분의 오차, 그것이 수년동안 쌓여왔을 때를 기다린 인내의 범죄다.
범인은 가상 현실에 등장해서 사건 관계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자신의 범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섬 내에 있을 수 밖에 없는 범인은 섬 내에 있지 않다!!! 그리고 사이카와는 추리를 통해서 셜록홈즈처럼 사건관계자들의 의문을 풀어주는 탐정이 되어 이번 사건의 전모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준다.
256*256=65536. 65536시간 동안 모래가 조금씩 내려가는 모래시계가 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모든 시스템은 멈추고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유가 주어질 것이다. 사이카와와 니시노소노라는 예상치 못한 손님 때문에 계획은 조금 어긋나지만 천재에게 그것 역시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의 머리로는 살인하지 않아도 탈출할 방법이 있었을텐데 세명씩이나 죽이고 15년만의 탈출을 이룬다는 것은 이해는 할 수 있어도 공감은 할 수 없는가보다. 천재라서 그런지 죽음에 대해서도 일반인과는 관점이 다르다. 죽음, 그것이 세계의 원칙이며 생명이라는 것이 신이 만든 프로그램의 버그라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전혀 억울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죄책감도 없이 시키 여사는 자신의 딸을 포함해 3명을 연구소 내에서 살해하고 탈출에 성공한다.
3중살인사건의 트릭이 참 신선했다. 그리고 그 트릭은 수년에 걸쳐 완성되었기에 더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