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서술트릭'하면 떠오르는 책이 제일 먼저 '살육에 이르는 병', 또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 정도가 있는데... 이 책은 차원이 다르다. 아... 위에서 말한 두 소설보다 '도착의 론도'가 뛰어나다는 말이 아니다.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르다. 여타 서술트릭을 사용한 책들은 서술하고 있는 인물의 심리적인 면에 집중하면서 서술트릭을 충격적인 사실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쓰는 반면에 오리하라 이치는 이 책에서 서술트릭을 수학문제같은 지적 유희로 독자에게 '자.. 니가 한번 풀어봐라'라고 직접 대놓고 말하고 있다(사실이다. 책 속에 "이 소설의 트릭을 눈치채셨습니다?"라고 도전적으로 독자에게 문제를 던져준다.). 이런 소설은 처음이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흡인력이 있고, 뒤의 충격적 반전은 여타 포장은 필요없다는 듯이 셜록홈즈와 왓슨의 대화처럼 담담하지만 대놓고 독자에게 말해준다. 1989년에 일본에서 발표된, 즉 20년전의 미스터리 소설이니 만큼 반전을 풀어내는 장치가 미숙하다고 볼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대놓고 말해주지 않으면 이해못하는 독자도 사실 있을것 같아서 작가가 그냥 친절하게 설명하는 투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 앞선다. 

  그렇다. 이 책은 20년이나 전에 쓰여진 책이다. 그!런!데! 21세기의 시선으로 보아도 전혀 뒤쳐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이런 책이 이제서야 번역되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느 시대에나 있을법한 사건 속에서 빼앗긴 자와 뺏은 자의 치고받는 진흙탕 싸움인데, 이것을 몇겹에 걸친 서술트릭으로 너무나도 상큼하게 풀어내고 있어서 정말 1989년에 출판된 소설이 맞는 의심스러울 정도다. 참신하고 신선하면서 작가의 발랄함에 반해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책을 한두장 넘길때는 전형적인 루저의 심리상태를 서술하고 있어서 '내가 책을 잘못 고른거 아냐?'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주인공인 야마모토 야스오는 추리소설 신인 공모를 5개월 정도 남겨두고서 하는 생각이라고는 고작 시험을 앞둔 학생이 공부는 내일내일 하다가 어느새 시험 전날이 되어 머리 쥐어뜯으면서 괴로워하거나 공부는 안하는 주제에 시험 끝나고 뭐하고 놀 것인지 그게 더 신경쓰이는 것과 같이 3개월 내내 창작 스케줄만 짜고 글은 한줄도 쓰지 않으면서 신인상에 당선되어 긴자술집에 갈 생각부터 하는 한심한 사내다. 이 루저가 주인공이라면 결론은 어느정도 보이는게 아닌가 의구심을 가지면서 작가의 놀이에 적극적으로 몸을 맡겼는데 그 결과 놀라운 반전이 나를 매우 즐겁게 해주었다. 한챕터가 끝날때마다 범인을 생각해보았지만 내 짐작은 어느 것 하나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완벽하게 허를 찔렸고, 반전이 끝났다고 생각한 후에도 작가는 아직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주 오래간만에 너무나도 재미있는 롤러코스터를 낮동안 타고 내린 기분이다.  

p.s. '3부작' 중에서 2부격인 '도착의 사각'이 며칠전에 출판되었는데 질러야하나 매우 고민이다. 지르는게 당연한 건데 고민하는 이유는 아직 3부가 언제 출판될지 모른다는 점.. 기다림은 언제나 고역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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