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단어들을 먼저 늘어놓자면.. 법, 제재, 복수, 처벌, 소년범죄, 증오, 우연.. 등등...  두 소년이 저지른 범죄와 피해자 가족의 복수극에 걸맞는 평범한 단어들이 중반까지 이어졌다.  

  중간쯤까지 읽으면서 그저 인간 사이의 소통과 이해의 부재가 가져온 비극적인 사건과 그에 대한 피해자 어머니의 개인적인 복수극으로만 생각했다. 그 복수극이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나는 범죄로 가족을 잃었을 때 법의 심판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내 손으로 갈가리 찢어죽이기를 원할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어떤 심정이 될까,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만들어진 윤리관이라고 할지라도 일단은 법의 심판으로 정의가 구현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을 것 같다.(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으니 뭐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범죄로 가족을 잃은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다.)  개인적인 복수도 물론 하고 싶을테지만 누구나 인정할 만한 심판의 잣대로 처단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속의 내용과 같이 소년 범죄로 희생되었다거나 법의 사각지대 때문에 한 사람의 목숨과는 상대도 되지 않을, 처벌이 아닌 제재만이 가능할 때는 모리구치 선생님처럼 개인적인 처단을 원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모리구치 선생님은 감정이 앞서 무턱대고 덤비는 것이 아니라 두 인간을 서서히 조여드는 냉정하고 치밀한 복수를 감행한다.  

  그리고 나오키의 어머니의 일기와 슈야의 어머니에 대한 러브레터를 읽으면서, 또 딸을 잃은 모리구치 선생님의 복수의 행보를 보면서,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맹목적인 애정을 쏟는 나오키의 어머니, 애정으로 가장한 채 아이를 버린 슈야의 어머니, 딸을 위해 복수하는 모리구치를 보면서 모정이란 것이 이토록 무서운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생산해내고 가치관이나 윤리관 등에 영향을 미치면서 살아가는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를 보면서 어머니가 망가뜨린 자식이 폭주하는 경우를 소설 속에서 종종 보게된다. '살육에 이르는 병' 이나 아직 2권 중간밖에 읽지 않은 '모방범'이 이 소설과 같은 어머니와 그 자식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막장드라마를 봐도 알지만 빈부 따위를 떠나서 어떤 어머니라도 자식이 자신의 분신이 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맹목적이게 되지 않나 싶다. 나오키의 어머니는 자신의 남동생과 같은 인간이 되기를 원했고, 슈야의 어머니는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라면서 어린 아들에게 전자공학을 가르쳐주고 자신이 읽었던 책을 떠나기 전날 선물해주는 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쩔 수 없는걸까,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달을 지내고 어머니의 살을 찢고 나오게 되는 자식을 보는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맹목적이게 되는 걸까.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모리구치의 말대로 '소년 범죄는 과연 본인 탓일지, 아니면 사회 혹은 가정의 영향일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인격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시기이기에 소년 범죄는 형법이 아니라 가정법의 테두리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언뜻 타당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은 누가 대변해 줄 것인가, 라는 물음에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답을 찾을 수가 없는 질문이다.

  마지막 한 페이지에서 대단원의 복수를 감행하는 모리구치를 보면서 입을 쩍 벌릴 수 밖에 없었지만, 모리구치의 방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 너무도 씁쓸한다.   

  너무 사실적이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한 인간이 비뚤어지는 장치로 너무 어머니를 이용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내가 너무 불편한 진실과 마주쳐서인지 몰라도, 별 다섯개를 줄 수 없었다.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읽으면서 완벽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에 별 다섯개를 줬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보니, 역시 답할 수 없는 많은 질문을 앞에 두고 당황했기 때문에 이 책에 별 다섯개를 주고 나면 어쩐지 내가 작가에게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졌다는 기분이 들어서 별 다섯 개를 주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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