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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의 과학 - 물건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탐험 ㅣ 사소한 이야기
마크 미오도닉 지음, 윤신영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4월
평점 :
제목으로부터 시작하자. <사소한 것들의 과학> 이 책의 원제는 <Stuff Matter>, 즉 ‘재료 물질’ 정도로 단순하지만, 출판사는 이를 ‘사소한 것들의 과학’이라고 변형시켰다. 왜 사소한 것들인가?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하게 널려 있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너무 흔하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이라 관심을 갖는 것이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 딱 좋을”(24)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런 물건들에 관심을 갖는다. 물론 미치지 않아도 말이다. 그들은 ‘이건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이걸 다른 방식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이 재료는 어떻게 발견되었을까’ 등등 온갖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가진 지식을 활용하여, 인터넷에 검색을 하고, 책을 찾아보면서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려 든다. 그것이 자신의 전공 혹은 직업과 상관없어도 말이다. 나 역시 그런 호기심 많은 사람 중의 한 명이기에 (물론 미치지도 않았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가 건설할 재료의 세계를 해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재료들이 어디에서 탄생했고 어떻게 기능하며, 우리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우리 주위에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료 자체에 대한 지식은 때로 놀랄 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다. 저자 자신이 옥상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는 아주 평범한 (구도마저 별 볼일 없는) 사진이다. 아마 우리의 핸드폰에 들어 있는 사진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그런 사진. 그러나 저자는 사진 속에서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물질들, 즉 세상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재료들을 찾아낸다. 그가 찾아낸 사진 속의 서로 다른 재료들은 서른세 개나 된다. 재료과학자의 시선이란.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물질은 그 중 열 개로, 강철, 종이, 콘크리트, 초콜릿, 거품, 플라스틱, 유리, 흑연, 자기, 생체재료가 바로 그것이다. 생체 재료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아홉 가지는 바로 지금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재료들이 어떻게 처음 발견되었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개선되었으며, 지금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파고들어 왔는지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이러한 설명들이 매우 반가울 것이다.
내가 관심 있게 보았던 몇 구절을 옮겨보자.
“산화크롬으로 된 투명한 보호막 덕분에 우리는 스푼에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한다. 혀는 금속에 닿지 못하고 타액도 반응하지 못한다. 우리는 식기의 맛을 보지 못한 역사상 첫 세대 중 하나이다.” (48)
“종이가방 자체는 전적으로 공업의 생산물이고 환경 측면에서도 비싼 물건이다. 하나의 종이가방을 사용할 때 소비되는 에너지의 양은 비닐봉투보다 많다.” (77)
“콘크리트가 물과 반응해 충분한 강도를 갖는 데에는 24시간이 걸리지만, 내부구조를 완성하고 최대한의 강도를 얻는 데에는 수년이 걸린다.” (111)
“에어로겔은 거품이기 때문에, 한쪽 면에서 다른 쪽 면까지 사이에 천문학적인 수의 유리층과 공기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이 물질은 최고의 단열재로 만든다.” (156)
“그래핀은 세상에서 가장 얇고 가장 강하며 가장 단단한 물질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다른 어떤 물질보다 열을 빨리 전달하고, 전기를 더 많이, 빨리 나르며 저항은 더 적게 받는다.” (256)
무엇보다 이 책의 재미는 곳곳에서 재료과학자로서 세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물질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절절하게 드러난다는 점에 있다. 특히 콘크리트와 흑연은 저자의 전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따뜻함이 느껴진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설명처럼 듣기 좋은 이야기는 없다. 아마도 이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장을 볼 때까지 놓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이과를 선택했거나 선택하려는 중고생에게 꼭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제목으로 다시 마무리를 짓자. 내 생각에 아마 저자에게 이 책이 한국에서 <사소한 것들의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고 들으면 매우 서운해 할 것 같다. 책 전반에 걸쳐 ‘결국 이 재료들은 사소한 것이 아니에요. 매우 소중한 것들이랍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p.s. 아쉽게도 두 가지 흠을 지적하자면, 오탈자가 여러 개 눈에 띄고, 자료 사진들이 선명하지 않아 보기 다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