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홍수 속에 산다.

 금강 하구둑에 놀러갔다가 다른 사람들 농구하러 갈 때 뭐라도 하나 더 먹겠다고 눌러붙어 앉았다가 수다쟁이 동료에게 붙잡였다. 내 표정을 못읽는걸까. 내가 굉장히 따분해하고, 대꾸조차 하기 싫다는 표를 확확 냈는데 말이 끊기질 않는다. 말의 끄트머리엔 무슨 약속이나 하는 것처럼 '정말 결혼' 어쩌고의 질문이 따라온다. 할말이 없기도 했지만 아예 하고 싶은 말을 잃어버렸다.
 어색하니까 하는 말이란걸 잘 안다. 나도 그래봤고, 여전히 그러고 있으니까. 그런데 난 상대방이 정도껏 해줬으면하고 바란다. 내가 정도껏 하지 못하고 말을 소화 안 된 팰릿처럼 뱉어낸게 언젠데. 젠장. 

 집에 돌아와 창작 블로그에 글을 쓰고(그래요, 아직 하고 있어요.) 옥찌들 페이퍼를 올린 후에 음악을 들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댓글을 달까, 그냥 넘길까, 뭐라도 보태고 싶은 맘에 뭉기적대고 있어보니 알겠더라. 나 역시 말이 하고 싶다는걸.

 그렇다면 어떤 말, 대화를 하고 싶은걸까.

 소크라테스처럼 자꾸 물어봐줘서 나의 무지를 깨닫게 한다거나, 어딘가에 적힌 향기로운 말들을 인용해 말 자체를 아름답게 하는 대화. 누군가의 흉을 은근슬쩍 보다가 부지불식간에 둘 다 그 사람을 별로라고 생각했다는 지점에 도달하는 공모자 되기형 대화. 몸을 웅크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 대화. 무슨 무슨 대화 등등. 한쪽만 일방적으로 말 듣는 인형을 함부로 대하듯이 늘어놓는게 아니라면 괜찮은 정도. 터무니없이 확고한 믿음을 갖고 강변하는게 아니라면 나쁘지 않을만한 대화.
 
 까탈스럽거나 서툴지 않게 시작해서 속살 하나쯤은 제깍 보여줄 정도로 진심이 통하는 대화. 핑퐁처럼 말을 주고 받지만 속도보다는 눈빛에 초점이 맞춰진 대화.

 거참, 원하는 것도 많다. 이래서 말상대 하나없이 페이퍼만 죽으라고 써대는건지도 모르겠다. '죽으라고 써대는 페이퍼'의 함량미달 질에 대해선 미안한 맘만. 어쩔 수 없이 또 사진으로 양이나 늘리려는 속셈을 보여줄 밖에.

 프레이야님, 저도 자전거 타는거 무척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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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9-06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작 블로그 주소 불러봐요.

Arch 2009-09-06 19:24   좋아요 0 | URL
페이퍼 복습도 안 했구나.^^

하날리 2009-09-07 00:44   좋아요 0 | URL
불친절한 아취님 대신 제가 알려드릴까요?

Arch 2009-09-07 01:11   좋아요 0 | URL
아치라고 하는게 부르기 편하지 않겠어요? ^^
절친도 아닌 불친이라... 내가 얼마나 떠들고 다녔는데~

이제 추천 세개면 레이시즌님이 떠올라요. 흐

조선인 2009-09-06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자전거 탈 줄 몰라요. 흑흑.

Arch 2009-09-06 21:06   좋아요 0 | URL
아니! 어떻게^^
 

 동생들이 블록을 맞춘다고 전등은 죄다 켜놓고, 목욕하고나서 옷도 제대로 안 입고 몰입을 하고 있었다. 정작 선물 받은 민은 약간 졸리운지 반쯤 눈이 감겨 있고.

- 민, 생일 지나면 몇살이야? 
- 다섯살
- 여섯살 아닌가? 생일 지나면 한살 더 먹으니까... 
- 다섯살도 생일 있어.
- 그렇긴 한데(무슨 얘기를 더 하려다 이모 보고 이해도 못한다고 할까봐 가만히 있다가) 그런데 큰 이모는 민한테 무슨 선물 해주지?
- ......
- 뽀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 그럼, 편지?
- 응.
- 그럼 이모는 편지 써줄게. 누나한테 읽어달라고해.(그런데 민은 편지가 뭔줄 아는걸까?)

 요즘 연필 잡고 뭔가를 쓰는 민. 구멍이 많이 뚫린 사람 그림이 다인줄 알았는데 이 아이가 글을 쓰고, 숫자를 읽는게 좀 신기하다.
  

 애들 엄마도 지희 때는 안 그랬는데 고집불통 민이 뭔가를 해내고 할 수 있다는데 놀라는 눈치다. 게다가 민은 친구들이랑도 사이가 좋다. 네살때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 유아들끼리 치고 박고 하는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민 덕분에 가능하다는걸 알았단 얘기를 해주고 싶다. 정말! 이제 지민이가 6살이 됐다. 6살의 민은 어떨까.

 지희가 누워서 장난을 치길래 민에게 물었다.
- 아들, 누나는 어디가 제일 예뻐? 
- 다 예뻐.
- 그럼 이모는?
- 안 예뻐.
- (지희가 거든다.) 지민아, 그래도 하나 정도는 말해줘야지.
- ....

 블록 조립은 끝날줄 모르고 민은 지쳤는지 잠들어버렸다.

 지민아, 생일 축하해! 지민이 말대로 벤치에서(집 밖에서 생일 잔치를 해야한단다.) 촛불 호~ 끄면서 생일 축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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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9-0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구, 어구 귀여워, 지민이. 레고 조립 (블럭인가요?) 앞에 놓고 잠든 모습이 정말 그냥 못 지나가게 만드네요.
생일 축하, 이모가 대신 받아주세요.
일곱살? 음~ 역동적인 나이지~ ^^

Arch 2009-09-05 22:38   좋아요 0 | URL
여섯살인데~ ^^ 감사해요! 꼭 전해줄게요.

뷰리풀말미잘 2009-09-05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민아, 그래도 하나 정도는 말해줘야지." ..라니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ㅎㅎ 우리 아치님이 얼마나 예쁜데.

Arch 2009-09-05 22:38   좋아요 0 | URL
옥시누이라고, 보통이 아녜요. 흐흐~ 미잘만 나 예쁜거 안다니까, 아무도 몰라. 시어머니도 몰라.

프레이야 2009-09-06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하나 정도는 말해줘야지라니.. 깜찍해요.
여섯살 생일 맞은 귀여운 민이에게 축하인사 전해주세요.
(꽤 여러해 살았구나.^^)

비로그인 2009-09-06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생일 축하한다'고 하더라고 전해주시오~ ㅎ

Arch 2009-09-06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정군님 꼭 전달해줄게요. 감사드려요^^

2009-09-06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09-06 21:06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생각했어요^^

순오기 2009-09-07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민이 생일이군요. 축하축하~
여섯 살이라니, 벌써~~ 생일선물을 편지로 때우려는 이모가 이쁠데가 있겠어요.ㅋㅋ
 

 알람 시간을 잘못 맞췄다. 알람 대신 지희의 책읽는 소리로 잠이 깼다. 지희를 불렀다. 지희는 왜, 왜 그러며 늦장 피우다 투덜거리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 지희를 안고선 머리에 코를 대보았다. 예전 같은 아기 냄새가 안 난다. 무취의 지희. 이를 두 개나 빼고, 책 한권쯤은 이젠 뚝딱 읽어버리는 지희. 책 읽는 소리, 지희 목소리로 잠이 깨서 조금 행복해졌다.

아이가 자란다는 희망이 위로가 된다는 바람돌이님 말이 맞다. 하지만 가끔은
금세 쑥쑥 자라서 떠나버릴 것 같아 무섭다. 난 아무런 준비도 안 되었는데.

 어제, 조금 늦게 도착해 텅 빈 집을 보자 조금 쓸쓸해졌다. B도 늦고 옥찌들도 늦었다. 내가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B와 함께 집으로 들어선 옥찌들. 지희 표정이 안 좋았다. 학원차가 옥찌들만 내려주고 갔었나보다. 나도 B도 없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동생과 단둘이 벤치에 앉아있으니 무서웠다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까 겁이 났다고. 난 울상인 지희에게 괜찮다는 말을 하며 꼭 안아줬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하늘이 새까맣게 변하도록 혼자일거란 상상. 옥찌는 차가운 저녁 바람에 소름이 바싹 돋아 있었다. 어쩌면, 아이가 자라는게 아득하다기보다는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얼마쯤 슬펐는지도 모르겠다. 든든한 빽이 되어주고 싶고, 무섭지 않게 다독여주고, 가끔은 아기 흉내로 칭얼대면서 작은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싶어서. 지희라면 지민이처럼 ‘아가, 엄마한테 가서 밥 달라’고 하지 않을테니까. 

 오늘 왜 이렇게 맥이 탁 풀려선 갈피를 못잡을까.

 말쟁이 dd씨가 모처럼의 전화를 받더니 그렇게 시간되면 1조만 땡겨달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대출 전화엔 저렇게 의연하게 대응해야한단 말이지. 난 그냥 웃지요. 맥은 왼쪽 손목 힘줄에서 손가락 한마디 떨어진 곳에서 잡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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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9-04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셔요. 아이들은 언젠가는 당연히 떠난다구요. 그게 감당이 안되면 그 애들이 떠나지 않고 늙어서까지 나한테 빌붙어 있을걸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끔찍할지요. ㅎㅎ
아 저도 오늘은 진이 다 빠진 느낌입니다. 올해는 아무 약이라도 좀 먹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루 종일 하고 있어요. 몸이 처지니 마음도....ㅠ.ㅠ

Arch 2009-09-04 14:38   좋아요 0 | URL
아마도 그렇게 되면 서로 웬수 웬수 하면서 그 끈질김에 대해 한탄하겠죠. 그래요, 끔찍할거에요.

중국에서 들여오는 약재에 중금속이 들어있다고 하지만 용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금요일은 아무래도 그동안 쌓아놓은 기가 쑥 다 빠져버리는 것 같아요. 데이트 약속이라도 있으면 좀 생기가 돌까~ 크~

다락방 2009-09-04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여기에 뭔가 근사한 댓글을 달고 싶어요. 좀 기다려봐요.

다락방 2009-09-04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세 돌아왔어요. 이 시를 줄게요, Arch님.


흔적

-박연준


남자의 가슴이 왜 좋은지 알아요?
종이처럼 평평하니까
여자의 가슴이 왜 좋은지 알아?
무덤이 두 개나 있으니까

그날, 엎질러진 밤은 환하게 어두웠다
밤이 환할 수 있다니
내 무덤가에서 밤새 뒤척이던 손가락들은
아침이 되자 무덤 속으로
아예, 아예 들어가버렸다

혼자 목욕을 하는 저녁이 찾아왔을 때
외로운 팔과 다리, 등, 배, 가슴, 흐린 얼굴
도저히 내것이라고 하기 어려운 각각의 개체들이
거울 속에서 서로 어색하게 꿈틀대고 있을 때
하얗고 둥그런 왼쪽 가슴에 난 이빨자국
보랏빛으로 선명하게 찍힌 당신의 자국

이렇게 금세 흔적을 남기다니
내 몸은 소문이 빨라
맨 아래 발가락들까지
열 가지 목소리로 수군대고 있는데
보랏빛은 지워지지도 않는데
어둠이 환할 수 있다니

Arch 2009-09-04 16:25   좋아요 0 | URL
근사하고, 아려요. 아리고 아련해요. 다락방님 고마워요.

내가 고마움에 고무돼 할 수 있는거라고는 수첩에 시를 적는 일 밖에 없어요.

순오기 2009-09-04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지희 마음에 공감이 가서~~~ 짠해요.

Arch 2009-09-05 00:4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다락방 2009-09-05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ch님아. 안자고 뭐해요, 이시간에!!

Arch 2009-09-05 01:06   좋아요 0 | URL
뭐하긴. 댓글 달고 있죠. 꼬장 다락방님^^
 

 



이 노래, 지금 생각해보면 기가 막히게도 그저 그런 유쾌한 곡인줄로만 알았다.
노골적이지 않고, 쉽지 않게, 그렇게 무척 좋아서 가을 타는 당신에게 보내고 싶은 곡. 


붉은 레인을 질주하는 sprinter
거대한 익룡의 저 그림자 처럼
뜨거운 지면을 소리없이 스치는
텅빈 시야와 I am a new black star
출발을 알리는 경쾌한 총성
정적을 삼키고 열광하는 함성
떨리는 호흡은 이 전부를 집어삼킬
강렬한 욕망 I am the fastest gun
돌이킬 수 없는 승부 이름조차 잊어버린
이 순간 지옥으로 돌진하는 전차
붉게 충혈된 의지는 오직 하나뿐인 진실
순간 거짓말처럼 시간은 멈추고
펼쳐지는 저 지평선
Ready and get set go Indigo skies up high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순간
Ready and get set go This is the time we go
지금 여기서 숨이멎어도 후회따위는 없어
불타는 태양 I`m a new black star

Ready and get set go Indigo skies up high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순간
Ready and get set go This is the time we go
나에게 주어진 단 한번의 기회는 지금
Ready and get set go
내 전부를 터트리는 이 순간
Ready and get set go
지금 여기서 숨이 멎어도 후회따위는 없어
불타는 태양 and I am a new black star 

 감히 말하건대, 이 음반의 모든 곡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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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9-04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중에서 april punk를 좋아하지요.
4월의 따뜻한 바람을 받으며 걸으면서 이노랠 들을 때의 기분은 >.<

Arch 2009-09-04 16:22   좋아요 0 | URL
기분은 눈이 꽉 감길 것 같다구요? ^^ 역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구나. 늘상 뒷북 같아요.
가사가 정말 근사해요.
 




하얀 날개를 휘저으며 구름사이로 떠오네
떠나가버린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사라져 버린 그 사람
다시는 못올 머나먼 길 떠나간다네
한없이 넓은 가슴으로 온 세상을 사랑하다
날리는 낙옆 따라서 떠나가버렸네
울어봐도 오지않네 불러봐도 대답없네
흙속에서 영원히 잠이 들었네

한없이 넓은 가슴으로 온세상을 사랑하다
날리는 낙엽 따라서 떠나가버렸네
울어봐도 오지 않네 불러봐도 대답 없네
흙 속에서 영원히 잠이 들었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이 노래를 들었다. 가버린 친구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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