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다녀온 지희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주로 오물락조물락해서 만들기 한걸 보여주곤 했는데 오늘은 뭘 그렸나보다.

-옥찌 뭐야?

-응, 봐봐.





 사랑한다는 말과 분홍색을 좋아하는 지희답게 핑크표 그림들이 슝슝. 지희 하는짓이, 그림이 사랑스러워서 뿅반해있는데 이건 타고난 질투의 화신인지라 그냥 넘기질 못했다.

 -옥찌, 이모건?

-아, 이모. 이모.

평소의 녀석답지 않게 옥찌는 약간 당황하더니 금세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는데

  

 -에이 뭐야, 이모건 사랑해요도 없고.

그러자 옥찌 아주 의기양양하게

-그래도 이모건 두개잖아.

 그렇군. 두개구나. 두개에서 위안을 얻고 있는데 애들 가방에서 수저 꺼내면서 본 결과 저런게 수십개는 됐다. 대체 이모가 몇명인거야. 어디서 오린걸 이모꺼라고 주는 센스는 누구한테 배운건지.

 갑자기 아무리 잘해도 애들은 부모 밖에 모른단 엄마의 악담이 생각났고, 지희한테 나는 뭘까란 존재론적 위기감도 좀 있었지만 냉큼 내 품에 안기는 요녀석을 보면서 위기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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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10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애 본건 공이 없다는 말도 있어요. 아무리 기름종이에 적어놔도 소용 없다지요!ㅋㅋㅋ

무스탕 2008-07-10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기, 그런거 없습니다. 그냥 사랑하면 되는거지요 ^^

Arch 2008-07-1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기름종이에 써놓으면 피지 닦을걸요.(이건 뮝~) 무스탕님 그러니까요.
 

# 1

 예전에 회사다닐 때.

 점심 먹을 때면 여자가 많은 곳이면 으례 빠지지 않는 남자친구 얘기가 한창이었다.

 여자1 -음, 우리 오빠가 출장이 많거든. 출장 갔다오면 무슨 선물을 사줄까, 다음에 같이 가자 이러면서 좀 귀찮게해.

 그러니까 여자1은 지금 사귀는 오빠 자랑질 중이었던 것이다. 얘기를 듣던 사람들은 왜 자기 남자친구는 출장이란게 없는지, 대체 무슨 선물을 사다주는지 나름대로 눈치껏 상상의 나래를 피고 있는데, 평소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개념을 팍팍 집어삼키시는 개념녀께서 한마디 던져주셨다.

개념녀- 어머, 너네 오빠 열쇠 수리공이야? 왜그렇게 출장을 많이 다녀?

다들- 야야 (만류하지만 은근 즐기는 분위기)

개념녀- 아니 그렇잖아. 출장도 많고. 니네 모르나본데 문따주는게 돈 많이 번다고. 아니면 에어콘 놔주고 다니는 사람?

 여자1은 돌씹듯이 꾸역꾸역 밥을 먹었고, 다들 좀 고소하단 분위기였다. 물론 개념녀의 말이 열쇠수리공 총각 이하 아저씨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었음을 밝히는바다.

 

#2

 어제, 같이 공부하는 언니 중 한분이 아구탕 얘기를 해서 우리 아구탕 언제 먹으러갈까, 아구찜이 낫지 않겠어에서 누가 뭘 준비하냐 어쩌냐 쿵짝이 맞아서 맘이 콩밭에 가 있는데

 메아리란 별명을 갖고 있는 김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아구탕 좋아하는데.

 그러자 맥을 잘 짚어내는 M이 바로 맞받아쳤다.

-여기, 언니가 아구탕 좋아하는거 궁금해하는 사람 없는데.

 다들 웃고, 메아리 언니도 어설프게 호응을 하는데 정말 웃는게 웃는게 아닌 표정이 되어버렸다.

 tip. 메아리 언니가 메아리 언니인 이유 : 수업 시간마다 누가 대답하거나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물은 후 아무 대답도 없어서 알아서 대답을 하면 그걸 꼭 따라해서 붙여질 별명. 주위 사람은 시끄럽다고, 본인 자신은 수업에 집중 한다고 뿌듯해해서  상당한 괴리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모두들 다 아는데 본인만 전혀 눈치를 못채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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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7-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저리 콱콱 쏴주는 사람이 있어야 가심에 응어리 진것도 풀리고 그러거든여~~ㅋㅋ
(이름하여 사무실 소방수)

Arch 2008-07-09 20:56   좋아요 0 | URL
소방수 물발이 너무 센건 아니구요? 보는 나야 즐겁지만 당하는 사람은 보통 정신으론 버티기 힘들거 같단 생각이. 공공의 적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hnine 2008-07-0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메아리 언니 무안했겠네요.
여자1에 대한 응수에 대해서는 뭐 의의 없습니다만.

Arch 2008-07-09 20:58   좋아요 0 | URL
메아리 언니는 가끔 눈치를 밥말아 드셔서 잘 모르세요. 열쇠 수리공은 괜찮았단 말이군요. 흠. 센게 먹혀요.ㅋ
 

 전날 모기와 사투를 벌이느라 새벽잠을 몽땅 날려먹어 아침부터 해롱대고 있는데 옥찌가 내 방으로 와선 이제 일어날때 안 됐냐며 날 흔들어 깨웠다.

-조금만 더 자고 싶은데.

-오늘 안 나가?

-지금 몇시야?

-작은 바늘이 7에 가있는데.

-긴 바늘은?

-3

-아, 일어나야겠다.

-이모, 밥은?

-밥 먹어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밥 사수)

-내가 수저 놔줄게. 세수하고 와.

-근데 옥찌, 너 열 나는거 같아.

-응. 목도 아프고, 이마가 뜨거워.

-약 먹을까?

-밥 먹고.

 즈히 엄마가 밥상을 차리는 동안 수저랑 젖가락을 놓던 옥찌는 식탁에 밥이 놓이자마자 부지런히 밥을 먹는다. 입맛도 좋지, 아침인데. 건성으로 밥을 뜨자 옥찌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모, 엄마가 밥 빨리 먹으면 콘푸라이트 준댔어.

-어.

 지희 눈이 반짝인다. 과자를 너무 좋아하는거다. 밥을 다 먹고, 도시락 챙겨서 나가려다 주전부리로 콘푸라이트를 좀 싸가려고 하는데 지희가 거든다.

-이모, 우유 하나 가져가지.

 우유는 안 챙겨나왔지만, 아침부터 조그만 녀석 덕분에 괜히 입가에 웃음을 흘리는 시니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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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07-09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우는 보람이 있다니까요!!

Arch 2008-07-09 11:07   좋아요 0 | URL
헤헤, 그렇죠? 괜히 제가 뿌듯해져서 원.

hnine 2008-07-0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딸 있어야 한다고들 그러지요.
평소에 이모가 자기를 챙겨주듯이 하는가보군요.

Arch 2008-07-09 20:59   좋아요 0 | URL
아,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닌 것 같은데.ㅋ 제가 다정다감한 성격이 못되어놔서. 사실 애교는 둘째죠.
 

 
자, 가볼까요.

  먼저 계단을 올라야해요. 햇살이 정면에서 비친다고 너무 눈을 찌푸리진 마세요. 사진보다 더 살가운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냐구요?
 글쎄요. 자전거만큼의 속도도 좋지만 산은 발로 디디는 맛이 그만이거든요.

 

  높게 솟은 나무도 보이고
  깊은 골짜기도 볼 수 있어요

 운이 좋으면 다람쥐, 청솔모랑 인사를 할 수 있어요. 다람쥐가 작은 다리로 나무 사이를 옮겨다니는 것보다 더 괜찮은 일은 다람쥐를 보는 다른 누군가의 시선과 마주쳐 인사를 나눌 수 있는거죠. 산에 있으면 사람들이 착해져요. 산에 있을때면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요. 가만히 바람 소리를 듣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죠.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따사로운 느낌에 그냥 몸을 맡기는거에요. 단순한건 더더욱 괜찮은 관점이 되죠.

 잠시 좀 쉬어볼래요?
 봄에, 동백꽃이 한창일 때 제가 나무 등걸을 쓰다듬으며 쉬었던 곳이에요. 동백꽃은 활짝 핀 순간만큼이나 지고나서도 쭉 예쁜 꽃이 아닐까 싶어요. 꽃이 진 자리가 참 화사하죠?



헥헥,  거즘 정상인 월명 공원에 도착했어요. 저 멀리 바다 보이세요?

 
또, 잠시 쉬어야겠어요


 벚꽃이 지고 있는 저곳에서 벚꽃비를 맞으면서 책을 읽거나 좋은 사람과 두런두런 얘기를 한다면 참 좋겠죠?

 더군다나


모양 안 나는 산행 후 묵직한 음주만큼 맛있는게 또 있을까요

 산에서 내려오다 보이는 휴게실의 파전과 뻥튀기는 정말 끝내줘요. 맥주에 먹는 치토스가 새우깡보다 2.5배 맛있다면 믿어지시겠어요? 알딸딸한채로 내려오다 보면 이제, 월명동입니다.

그저 슈퍼일 뿐인데  전 이 슈퍼가 참 좋아요. 낡고, 낡아서 장사는 될까싶은데 괜히 가서 군것질하고 싶게 만드는 곳.

 그리고

 
예인촌 뒷뜰
  
 산에서 먹은 파전과 취기가 좀 부족하다 싶으면 이곳에서 도토리묵이나 칼국수로 요기를 해도 좋아요. 직접 담근 술도 술이지만 대추살이 씹히는 대추차는 정말 일품이죠.


  저는 도시마다 먹거리나 교과서에 나온 몇가지 정보로 기억되는 것보다는 각각의 색이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봐요. 그러면 사람들이 여행을 떠날 때마다 쉬면서 다채로운 색의 더미에서 춤을 추고 싶을테니까요.

 그리고 군산은 단순히 내가 사랑하는 곳이야라고 말하기 부족한 곳이에요. 군산은 바다이고, 산이고, 논이고, 내가 어릴적 모습이고, 내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곳이니까요.

 날마다 월명산을 오르내리다보니 가까운 곳에 산이 있다는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나무 껍질을 손으로 어루만질때면 나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눈에 잡힐 듯도 하고, 하늘과 나무들이 주는 편안함이 단순한 휴식일 뿐인지, 등등 여러 생각이 들곤해요. 물론 대부분의 걸음에선 땀과 숨소리만 남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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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7-0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마다 월명산을 오르내린다구요? 우와
근데 나... 맥주에 치토스... 맛있겠다... 쓰읍 질질 ㅜㅜ

Arch 2008-07-09 08:56   좋아요 0 | URL
언니, 침 흘리는거에요? 습습. 월명산이 산이긴 한데 그렇게 높은 산도 아니고, 파워(?)워킹이면 금세 올라갔다 내려와요. 괜히 튼튼 종아리겠습니까. 언제, 치토스에 맥주?^^*

무스탕 2008-07-09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사진을 보고 제가 산에 와 있는줄 알았어요. 참 좋네요.. :)
저희 집 앞에도 야트막한 야산이 있는데 가본지가 언젠지 모르겠어요..;;;

Arch 2008-07-09 09:3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어딘가로 간다 이런게 있고, 그 중간에 산이 있다면 잘 오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가끔 산 사진 올릴게요.^^

순오기 2008-07-1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월명산, 군산 채만식 문학관 갔다가 기념공원(?)이 있어서 올라갔던 곳 같은데...맞나요? 기념비를 들어다보는 회원들을 찍은 사진도 있어요. 나중에 찾아서 올려봐야지~~

Arch 2008-07-10 09:0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순오기님이 더 상세하게 올릴까 두근두근 ㅋ
 

#1

 옥찌들과 쌀알 뻥튀기를 먹었다. 다들 먹어봐서 알겠지만 이거 먹는 것보다 바닥에 떨어지는게 더 많다. 그래서 지희랑 지민이에게 시범을 보여줬다.

-자 봐봐. 이렇게 세 손가락으로 쌀알을 집어서 입에 숑. 봐, 깔끔하지.

 지희는 그러네 하며 제법 잘 따라해서 바닥으로 낙하하는 뻥튀기 수를 줄이고 있는데 지민인 요 녀석은 고집이 있어서 쉽게 따라하질 않았다. 게다가 손에 침을 잔뜩 묻혀서 뻥튀기를 집어드니 아이 침이라지만 껄쩍지근하기도 하고, 그래서 좀 더 얘기를 (아이에겐 잔소리)했다.

-민아, 이거. 봐봐. 이렇게 하면 안 흘리고 잘 먹는다니까. 한번 해봐.

 지민이 나를 찬찬히 쳐다보더니 한번 따라하는 시늉을 하다가 곧 자기 방식으로 먹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말하려고 입을 떼는데 지민이가 한마디 했다.

-이모, (한숨을 푹 쉬며) 내가 알아서 한다고.

 어, 그래. 지민이가 알아서 하지. 그런데 이모 좀 무안한걸.

 

#2

 한낮이긴 했지만, 햇볕이 너무 강하지 않은 날.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 7시면 기상하는 옥찌들 덕분에 아침을 먹고, 뭘하고 뭘하고 했는데도 여전히 시간은 별로 안 지나 9시. 다른 아이들은 아직 기상 전이라 놀이터는 조용했다.

 한참 철봉에 매달리고 그네를 타며 뛰어놀던 지희가 주말이면 잠 좀 자둬야지란 생각에 벤치에서 헤롱대는 이모를 보고 말했다.

-이모, 이리와. 같이 놀게.

-응, 이모는 이렇게 벤치에 앉아서 옥찌들 노는거 보는게 좋은데.

-그래? 그런데 집에서도 맨날 앉아 있잖아. 놀이터에 왔으면 놀고 그래야지.

  아, 그러게. 놀이터에서 뭉개고나 있다고 지희에게 혼나기나 하고, 요즘 이모꼴이 말이 아니올시다이다.  

  놀이터엔 잠의 요정이 숨어있었던걸까. 정자 나무 그늘이 너무 시원했던걸까. 나중에 지희에게 요정을 그려달라고 해야겠다. 나무 그늘에서 잠가루를 뿌리는 요정. 잠가루 맞고 헤벌죽 웃는 내 모습까지. 딱딱한 벤치에서 비스듬히 자는 실력은 아마 타고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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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7-08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귀엽다, 나 막 웃었어요 (여기 회산데 ㅋㅋ)

hnine 2008-07-08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민이 말이예요,
웬지 저랑 '대화'가 될 것 같아요. 진지한 대화요.

Arch 2008-07-08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귀엽다 웬디양님^^ 저는 조그맣게 웃었어요. 여긴 집인데^^*/hnine님 진지한 대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말을 할는건 분명하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