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잇태리
박찬일 지음 / 난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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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순간..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 부터 계속 이 문구가 맴돈다. 이딸리아가 내겐 그대가 아닐까. 빠스타가 내겐 그대가 아닐까. 어쨌든 잇태리라는 그 문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책. 뭔가 야들야들하고 몰캉몰캉한 파스타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할 듯한 요리사의 책. 이 책은 그런 기대감을 확실히 깨주었다.  

 

한 두해 전 본 어느 잡지에서 요리에 대한 칼럼을 읽다가 그의 글을 읽는 재미에 푹 빠졌고, 이렇게 글 잘쓰는 요리사는 대체 누구지?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그 때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가 막 출간된 시점이어서 북토크도 찾아가 보고 나름 팬질?을 했다. 그리고 그 이전의 책들도 사기 시작했는데, 그가 책을 내기 시작한 초창기 책들은 내가 처음 매혹 된 그 정도의 글들은 아니었다. 파스타를 만드는 남자는 왠지 좀 섬세할 것 같은 데, 박찬일은 생각보다 걸쭉한 감성의 소유자인듯. 이 책 속에서의 그의 입담이 그렇다.파스타를 배우겠다고 두어달.. 하며 이태리로 날아간 그가 그 열배의 시간을 머물며 엮어낸 생활글들이 이 책에 담겼다. 그가 몸으로 부딪친 이태리의 일상과 공기는 낭만적이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스쳐지나듯이 가 아닌 그들 속으로 들어가 몸으로 겪어 낸 박찬일식 스튜 같은 <어쨌든 잇태리>. 깨알 팁들이 소소히 박힌 이태리의 날 것. 이 책을 읽고 나니 시칠리아의 산토끼 고기가 먹고 싶다거나, 진짜 손 맛 라비올리가 먹고 싶다거나 하는 맘보다는, 나도 시골 어느 주방에서 멸치 가시가 손톱 밑에 박히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생생히 느껴보고 싶었다. 이태리는 아니지만, 나도 내년 기장 봄멸을 가지고 엔초비 만들기에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깊은 감칠맛 나는 우리네의 멸치 젓국도 좋아하지만, 올리브오일에 잠겨 있는 엔초비의 깔끔하고 농축된 짭짜름.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침이 고였다. 단지 음식에 끌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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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여행자 - <내 여행의 명장면> 공모전 당선작 모음집
강지혜 외 33명 지음 / 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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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아니다. 공모에 모두 천여편이 넘는 글들이 접수 되었다는 것을 보면.

접수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 '당연히? 우리는 모두가 여행자' 일터이다. '달' 답게 역시나 이쁘게, 감각적으로 또 한 권의 책을 펴내었다. 살금살금 읽어지는 달의 책들. 서점에서 몇 부분을 읽어 보고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첫 글이 너무 감각적이어서 시끄러운 서점에서 읽으니 잘 안 읽혔다. 첫 글은, 줄거리를 따라가는 서사의 여행이 아니라 순간의 감성을 시적으로 표현한..그런..너무 예술적이었다고나 할까..자칫 손에서 놓을 뻔 했다.

 

조용한 곳에서 다시 천천히 읽으니 한 편 한 편 모두 떠나는 자들의 마음이 오롯이, 참 잘 담겨있다. 마치 내 안의 여러 명이 모여 한 권의 책을 낸 느낌. 계획하거나 계획하지 않거나, 떠나거나 떠나지 않거나 우리 삶의 한 장면 한 장면은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찰나의 순간에도 우리의 감정은 흔들리며, 그 순간의 흔들림을 마주하고 사는 우리는 참 허하거나 아픈 존재이다. 속이 긁히고 있을 때도 무연하게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우리는, 그래서 참 외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외롭다고 항상 손 내밀 수 있나. 그래서 짐을 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숱한 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공감하며 즐거웠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 사이에도 어떤 보이지 않는 끈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읽고 나서 어떤 글이 내게 가장 와 닿았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그리고 떠올려 보았다. 순간 어떤 장면이 딱 떠오르는 글이 있긴 했지만, 이거다 라고 한 편을 꼭 집기 어려울 만큼, 한 편 한 편이 골고루 다 마음을 건드렸던 부분들이 있었다. 우리는 결국 인생의 명장면들 속에서 여러가지 마음을 다스리며 일깨우며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 삶의 수많은 장면들을 기획하고 연출하며.. 심지어 살아내기까지 하고 있는 멋진 사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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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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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 '두부' 이후로 책이 안 나온 줄 알았다. 두부를 읽으며 막연히 그 사색의 깊이에 매료 당해 마치 이 분이 마지막 날을 받아 놓은 경지에 이르러 나올 수 있을 법한 책이라 믿어 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혼자서 마지막 책이라고 단정지은 탓이 아니었는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요즘 계속 산문집만 읽고 있다. 자연히 다른 책들과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가의 글힘이야 다시 말 할 것도 없고, 조곤조곤 개인사를 듣는 것 같은 정다움에 좋았다. 특히 김훈의 <남한산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정머리라고는 손톱 만큼도 없이 냉정한 단문이 날이 선 얼음조각처럼 내 살갗을 저미는 것 같았다'라는 표현은 내 속까지 시원하게 해주었다. 나의 완소책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을 언급하신 것도, 정원의 풀과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신 것도, 돌아가신 분들을 그리워 하는 글들을 읽은 것도 모두 직접 이야기들은 듯이 좋았다.그리고 이니셜로 언급한 지인들도 누군지 알 것 같은 공감대와 에피소드는 절로 미소 짓게 하였다.

 

생전의 박완서 선생님은 한 번도 뵙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늘 아는 분처럼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러는 사이처럼 느끼고 있었다. 매번 그렇지만, 작가의 글을 읽고 마음이 순연해지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착하게 살고 싶어졌다. 꾸준히 겸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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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 꿈만 꾸어도 좋다, 당장 떠나도 좋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1
정여울 지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당선작 외 사진 / 홍익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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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강박이 된 것 같은 요즘. 어쩌면 뻔한 유럽 여행책. 많기도 많은 여행책들 사이에서 어떤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가하고 읽어 보았다. 여행자마인드의 감성적인 문체에 지은이의 문필가 다운 독서력이 어울려 딱 대중이 원하는 만큼의 여행책이 기획 되어진 느낌이었다.

 

여행자들은 머무를 때도 여행에 노출되어 있다. 요즘은 정말 굳이 책을 찾아 읽지 않더라도, 여행 채널만 보고 있어도 정보가 넘쳐난다. 그래서 어떤 여행지를 진작 내가 가봐서 아는지 정보만으로 아는지 헷갈릴 정도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드는 느낌은 새로운 정보라기 보다, 복습 또는 교양의 의미로 다가왔다.

 

사실, 여기 나온 여행지들은 모두가 다 익숙한 곳이었다. 가보았던 곳이던, 정보를 많이 접해서든 익숙한 곳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이 한 번 가본 것은 가본 것이 아니다 였다. 한 번 스윽 지나온 곳은 그냥 안가고도 알 수 있는 정도의 느낌 이상의 무엇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지나쳐 온 여행이 아쉬웠다.

 

열심히 공부하거나 계획해서 떠나지 못할 때, 가기 전이든 가고 나서든 이정도 느낌으로 가볍게 예습하거나 복습하기에 맞춤한 여행서다. 부럽게도 작가는 혼자 떠난 여행에서 정말 그 곳에서의 느낌들을 충만히 채워 온 것 같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인문학 적인 교양이 여행지의 낯섬과 이채로움을 만나 가벼운 듯 깊이가 있다. 에필로그의 101번째 여행지가 특히 좋았다.

 

하지만 섹션을 만들기 위해 만든 듯한 그래서 중복되는 느낌의 꼭지들은 좀 아쉬운 점이었다. 기본적인 여행지도 좋지만 너무 익숙한 여행지만 있다는 것도 새로움이 없었다. 문학 작품의 인용이 많은데 마지막에 인용서를 따로 정리해 둔 것은  좋았다. 꼭 읽을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좋다. 독서 리스트가 생긴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니까.

그저 혼자 오래 오래 걷는 것만이 아름다운 위안이 되어 줄 때가 있다.

여행도 너무 '열심히'만 다니면 백과사전을 섭렵하는 것처럼 '향유 없는 주입'이 되고 만다.

세 사람은 낚시를 할 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는 대신 다만 듣는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를. 강물이 세차게 흘러가는 소리를. 물고기가 조심스레 미끼를 향해 입질을 하는 소리를. 그리고 이 모든 강과 숲과 물고기의 소리를 듣기 위해 숨죽인 서로의 숨소리를, 다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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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1 2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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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듯 랄랄라 - 홍대.유럽.제주의 모퉁이에서 살다, 만나다, 생각하다
황의정 글.그림.사진 / 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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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죄로 느껴지는 자기만의 행동특질 같은 것이 있는 거 아닌가. 잡동사니를 끌어안고 사는 것, 헌책방이나 리사이클링 센터 앞을 그냥 지나치치 못하는 것, 남이 버린 물건 집으로 주워 들이는 것.가뜩이나 정리를 못하고 사는 나는, 나의 이런 행동이나 마인드를 몹쓸 것으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어쩌지 못했다. 깔끔한 친구는 절대 집에 들이지 않고 평생을 살았다. 

 

그런데 '여행하듯 랄랄라'를 읽으며 지저분한 내 인생에 면죄부를 받은 느낌이다. 공감이라는 절대적인 소통. 찌질해도? 비루해도? 괜찮아 라며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것 같은 그런 치유의 느낌. 캠핑카로 유럽의 빈티지 시장을 순례한다거나, 자유롭게 사는 것 같으면서도 어떤 부분 치밀하고 완벽한 마인드는 참 닮고 싶은 부분이었다. 그런 가운데 계산이 안나오는 그들만의 독특한 구매법은 순간순간 유쾌하고 즐거웠다. '여행하듯 랄랄라'라는 제목에 딱 어울리는..

 

책에 나온 인도의 향료 시장이나 유럽의 빈티지 마켓은 읽고 있는 중간에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울컥 불러 일으켰다.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어, 이 책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내용은 진솔하고, 문장은 잘 읽히며, 일러스트는 귀엽고, 사진은 느낌있다. 게다가 창조적인 만능 뚝딱쟁이 남편에 개자식 두식이, 그 숱한 손재주를 가진 글쓴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졌다(부러워 눈물이 난다). 마음이 푸근하다.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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