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도 괜찮아 베를린
아방 글.그림.사진 / 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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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는 때로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달콤하다. 미친거 아냐? 미쳤어. 내가 미쳤나봐.. 입에서 수시로 나오는 말들. 나야말로 미친 일상 속에서 살고 있다. 제목이 반가웠다. 괜찮다니..고마웠다. 언뜻 느낌만으로 남성적이었다. 하지만 <미쳐도 괜찮아 베를린>은 이쁜 아가씨의 책이었다. 재밌고 발랄한 이야기들, 역동적이면서도 정적인 묘한 일러스트와 다정한 이미지가 넘쳐나는 매력적인 책 <미쳐도 괜찮아 베를린>.베를린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며 겪어낸 베를린의 속살 같은 에피소드들과 작가의 눈으로 담아 낸 특색 있는 공간에 대한 소개도 참신했다.

 

대중에게 베를린은 건조한 도시의 이미지다. 늘 거대하고 신산하단 느낌을 받는다. 자동적으로 베를린장벽이 연상되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베를린은 좋아하는 도시였기에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처음에 휘리릭 봤을 때는 무지 감각적이다, 예쁘게도 만들었네..정도 였는데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자, 어..이 사람 뭐야?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폭발할 듯한 생각들을, 감정들을 거칠 것 없이 써 내려 갔다. 질주하듯 썼으니 그렇게 잘 읽힌다. 그리곤 거침 없는 행동 뒤에 보이는 순연한 감성들을 또 그렇게 아기자기하게 표현할 줄도 알았다.사람을 좋아하고, 도시 그 자체를  즐기며 사랑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사람과 공간, 그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티스트들의 순정한 에너지가 넘치는 곳.그 곳이 바로 <미쳐도 괜찮아>의 '베를린'이었다.

 

이 책을 통해 카우치 서핑이라는 개념도 처음 알았는데, 빌려주는 쪽도 빌리는 쪽도 정말이지 쿨하다. 한국적으로 말하자면 '간도 크다'. 하지만 읽고 나니 나도 그 사이트에 한 번 가입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못 떠날 망정 내 집 소파라도 빌려주게. 그러면 또 누가 아나.베를리너가 내 집으로 걸어 들어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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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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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신작 소설집에는 드라이브 마이 카, 예스터데이, 독립기관,셰에라자드,기노,사랑하는 잠자,여자 없는 남자들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단편들에는 일관 된 주제가 흐르는 데 바로 '상처 많은 남자들'이 주인공이란 것이다. 많거나, 절대적이거나 상처를 준 사람들은 여자들이다. 그래서 남자의 인생에 있어 여자란?이란 질문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확대하면 개인의 삶에서 타인이란? 의미가 될 것이고 더 확대하면 인생에서 있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이런 질문으로 이어질 것이다.

 

소설가는 재주를 타고 난 사람이라는 전제 하게, 소설들은 많든 적든 인생의 깨우침을 준다. 더구나 자신을 단련하며 소설을 써온  노작가의 소설은 왠지 더 믿음이 간다. 사람에겐 누구나 비밀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가슴 아픈 것이었을 때 더욱 아무렇지 않은 것 처럼 살아가려 애쓰는 것이 현실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자기를 드라이빙하는 것, 자신을 컨트롤 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을 잘 드라이빙하며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가후쿠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배우이다. 가후쿠를 통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괴로워 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잘 드라이빙 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저 드라이브 하듯 인생을 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구조적으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라는 영화를 생각나게도 했는데, 예민한 사람 옆에는 좀 무덤한 사람이 친구하는 것도 인생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예스터데이나 독립기관,기노는 모두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배신 당한 남자들의 처절한 이야기다. 처절하다. 나에겐 적어도 그렇게 읽혔다. 남자들 자신이 모두 여자에게 매달리거나 여자가 인생에 있어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며 쿨한 인생을 살아 왔지만, 실제로 그들의 탄탄했던 삶은 여자들에 의해 무너졌다. 한 사람은 타국을 떠돌고 한 사람은 곡기를 끊어 생을 마감했다. 반면에 기노는 무너지지 않은 남자다. 상처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무연히 다른 삶을 이어가지만, 그는 결국 상처 앞에서 아파하지 않은 것이 자신의 인생을 허물어뜨리고 있음을 발견한다. 소설에서 보건데, 뭉뚱그려 남자들이란 여자들보단 단순한 구조를 가진 생명체인 듯하다. 관계가 주는 상처를 더 못 받아들이기에 무연하게 굴거나, 상처가 두려워 가벼운 관계만을 고집하거나, 버려질 것이 두려워 미리 버리는 것처럼 굴거나.

 

하루키 자신이 이야기 했듯 그는 이 소설집을 통해 여러 가지 양식을 시험 했다. 영화나 노래 다른 문학작품을 차용해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짧은 이야기에 설치한 단순한 구조들이 깊은 울림과 많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각 이야기들은 한 책에 들어있다는 사실만으로, 또 각 소설 속에 다른 소설과의 간단한 장치를 한 작가의 재치로 엮어 둔 점 또한 재미를 유발했다. 이런 소소한 재미가 소설을 읽는 진짜 재미라기라도 한 듯 웃었다. 사랑하는 잠자나 여자 없는 남자들 모두 신선한 재미로 읽혔으며, 마지막 여자 없는 남자들에선 대놓고 이야기해주어 좋았다. 외톨이들..인생에 외톨이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나 우리 모두는 외톨이다. 어긋한 타이밍에 관한 사랑의 이야기는 가장 가슴 아프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긋난 타이밍 속에서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본질인 것 같다. 타이밍이란 단어는 원래 딱 맞추었을 때보다 어긋 났을 때 단어로서의 매력을 갖추는 것은 아닐까.

 

매력적인 일곱편의 이야기들. 읽고나서 주변 사람들과 나눌 이야기거리가 많았다.  하루키는 남자와 여자라는 장치에 더 확대경을 들이댄 듯 그렸지만, 결국은 지금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여서 그랬다. 읽을 땐 재밌었고 읽고 나니 남자에 대해 여자에 대해 나에 대해 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정비할 수 있는 기운이 생겼다. 그 기운은 위로 받았음에서 오는 에너지였으리라. 상처 많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여자인 내가 위로 받았다는 것은 하루키 소설이 성을 넘어 일반적이고 대중적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왔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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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얼마나 함께 - 마종기 산문집
마종기 지음 / 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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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이란 말이 참 따듯하고 좋다. 복잡한 세상에 살아서 복잡함이 싫고, 많이 생각하게 하는 글도 점점 읽기가 싫어진다. 쉽고 마음을 달래주는 편안한 글들이 읽고 싶다. 박완서 선생님 산문집을 읽을 때 읽는 행위 자체 만으로도 위로 받는 다는 느낌이 드는데,  마종기선생님 산문집도 그런 기분이 들게 했다. 여유 있는 마음자리가 그대로 느껴지는 찬찬한 글들이었다. 마종기 선생님은 일이나 일상이나 일견 참 부러운 인생을 사셨지만, 타국에서 일하며 의사와 시인의 삶을 병행한 혼자만의 고초는 본인이 아니고는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외로웠다고 하는 부분에 깊이 공감했고, 최선을 다해 살고 내면을 잘 다스려 시인의 삶을 잘 지켜내신 것은 정말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가을 내내 가방 속에 넣어 다니고픈, 가을에 어울리는 산문집. 서가 한 켠에 꽂아 두고 눈길만 줘도 열심히 살아 질 것 같은 그런 책이었다. 가을 같은 사진들도 오래 보았다.

 

인간에게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시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우정과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에게 아픈 이별이 없다면, 인간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만남의 순간이 없다면 나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고 또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시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죽고 난 다음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쓰지 못했을 것이다.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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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풀 도감 (양장) - 우리 땅에 사는 흔한 풀 100종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10
김창석 글, 박신영 외 그림, 강병화 외 감수 / 보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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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도감이란 제목을 본 순간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런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생화 종류는 사진책들도 많고 세밀화책도 많이 나와 있어 이제 식상한 감이 있을 정도이다. 나무도감이나 식물도감은 개체수가 정해져있는데 실을 것들이 많으니, 정작 길을 걷다 궁금하고 헷갈리는 벼과 식물들은 취급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풀도감이란 이름이 붙은 이 책은, 좀 더 풀다운 풀을 더 많이 실었음 하는 욕심이 있었다. 구색을 맞추려고 그랬는지 다른 도감에 많이 나와 있는 흔한 수생식물이나, 산에 가야 볼 수 있는 곰취나 우산나물 오이풀,진대, 더덕을 실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렇게 유명한? 나물  대신 좀 더 길가표 풀 같은 흔한 것들도 더 많은데..

 

가을을 맞이 하느라 더 수북이 자라있는 산책길의 풀들. 풀인가 나무인가 쳐다봐질만큼 큰 키로 자란 것도 많던데, 어쨌던 이 책엔 벼과 식물들이 많아서 좋다. 큰김의 털이나 줄, 돌피, 물피, 참새그령,그령,개피,바람하늘지기, 올챙이고랭이, 금방동사니 정도도 나와 있는 세밀화 식물도감은 풀도감이 유일한 것 같다. 

 

이제 날씨도 선선하여 걷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사실 예쁘거나 화려한 꽃들은 이름을 찾아 보기가 쉬운데, 그게 그거 같은 풀들은 항상 저게 뭐지 하는 정도의 마음으로 몇 년이나 지나쳤다. 올 가을엔 한 두 가지라도 확실하게 이름을 알고 싶다. 쉬워보이는 많이 봐았던 참새귀리랑 개피와 돌피 정도는 풀도감을 끼고 확실히 구별 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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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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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이벤트 신청해서 천명관 작가의 작가와의 대화에 다녀왔다. <고래>를 읽고 충격 받고 잊을 수 없었던 그 이름. 천명관. 사실 <고래>이외에는 아무 것도 모른다. 다른 소설도 읽지도 않았고. 단지 <고래>에 실렸던 삭발의 작가 모습만 떠오른다. 다소 강해 보였던 그의 이미지. 세상엔 소년의 모습으로 나와 앉아 있다. 어쨌든 나는 <고래>를 이사람 저사람에게 선물했고 누가 재밌는 소설 있냐고 물어보면 늘 <고래>라고 대답했다. 시나리오작가 생활을 10년간 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런데 7년만에 나왔다는 단편집이 너무 얇아서 맘에 안들었다. 대신 표지 디자인과 그립감은 좋았다. 만만했다. 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좋을 것 같고. 한 권 사서 같이 간 친구와 시작 시간을 기다리며 앞에 두 편 정도를 읽고, 집에 와서 나머지를 읽었다. 나는 <고래>를 관통했던 괴기스러운 환상성을 좋아하는데, 앞의 두편에선  그런 느낌은 없었다. 집에 와서 나머지를 다 읽으면서 천명관스러움을 찾았다. 여기저기 발표한 단편을 묶은 것이라서 그런지 색깔이 확확 바뀌는 느낌도 있었고, 무거운 느낌과 가벼운 느낌이 섞여 있어 책장이 잘 넘어 갔다.

 

'사자의 서', '동백꽃',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핑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사자의 서는 공감이 확 되었고, 동백꽃은 질펀함이,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는 7,80년대 잘 쓴 단편을 읽는 느낌이었다. 핑크는 괴기스러운 환상성이 어느 정도 보여서 좋았다. 작가의 새로운 장편이 읽고 싶긴 하지만, 장편이 아니어도 좋았다. 책이 안나오는 것 보다는 나오는 것이 백배 낫다. 출판되어지는 모든 것은 궁극의 쓰레기라는 관점에서 봐도, 이런 책 쯤은 나와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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