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밀란 쿤데라 전집 7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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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순간 떠올랐다 사라지는 장면이 있었다. 끝 없는 눈 덮힌 벌판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한 사람이 있는 풍경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외롭게 외롭게 살다가 혼자서 죽고 싶다는 얘기를 입버릇 처럼 하다가 친구들에게 뒤통수를 얻어 맞곤 했다. 언제부턴가 그런 얘기를 안하게 되었는데, 그건 그렇게 죽고 싶은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말의 공허함을 견디기 힘들어서 였다. 그렇게 죽지 못할까봐 불안하고 그렇게 뇌까리고도 공감 받지 못했던, 삶과 죽음의 방식이 [불멸]안에 다 있었다.

 

세상 안에는 떠나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이 있다. 늘 길 위에 있는 사람들과 늘 방안에 있는 사람들. 대체로 내가 공감하는 사람들은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나 또한 끝없이 떠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삶의 아이러니는 떠나고자 하는 사람이 머무는 사람을 만나 이해 받지 못하고 이해 하지 못 한 채 맞추며 살아간답시고 서로 숨막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물론 본질을 변하지 않았겠지만), 나 또한 머무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골짜기로 찾아 들어가 가부좌를 트는 것 같은, 그런 틀어박히는 사람이 되었다. 떠남으로서 자유를 찾고자 하던 정처 없던 마음이 안으로 파고 듦으로서 침잠하게 되는, 그것이 곧 자유가 되는 뭐 그런 느낌을 알게 되었다. 진실인지 알 길이 없는 슬픈 이야기다.

 

[불멸]안에는 공간이 참 많았다. 이야기의 방이 수두룩해서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는 맛이 쏠쏠했다. 엮기 나름으로 이야기가 두 개가 되었다 세 개가 되었다 아울러 하나로 읽어도 내 맘이었다. 쿤데라는 남자 무당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 마음 속에 신을 지펴 준다는 생각을 하게되는데, 쿤데라가 피워 올린 향을 따라 걸었다가 떠올랐다, 책 안으로 들어갔다 완전히 책 밖으로 빠져나와 바라보게 했다. 날아 오르든, 길을 떠나든, 틀어 박히든 나를 자유케 했다. 아녜스가 되기도 괴테가 되기도 공감대의 포인트가 다 달랐다. 좀 더 진즉에 이런 소설들을 읽었더라면, 그렇게 허황된 말을 많이 지껄이고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정제되지 않은 두서 없는 내 말의 공해를 다 받아 주었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공간을 불러 오는 사람 앞에서 참 많이 까불었다. 적어도 찾아가는 사람은 불러 오는 사람보다 하수임에 틀림 없는데 말이다. 불멸하거나 멸하거나, 지긋지긋한 자아로부터 좀 해방된 느낌이다.이런게 동일시가 주는 카타르시스겠지 한다.  쿤데라의 마리오네트가 되어 실컷 춤을 춘 느낌. 혼자서는 절대 맛 보지 못했을 희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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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 양양 에세이
양양 지음 / 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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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은 '노래는'이었다. 너는 방안에 조용히 혼자 앉아 노래를 했다 하는데 너의 목소리는 내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줄줄 눈물이 흘렀다. 작은 공간이라 내 눈물이 보일까봐 나는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네가 나의 웃음을 보기를 바랐다. 3집을 내고 처음하는 공연, 추운 날이었고, 나는 이불 속이 좋아 많이 굼지럭거렸다. 겨우 도착한 벨로주의 하얀의자는 너무 많이 비어있었다..공연이 시작되자 자리가 더 채워지고 겨우 허전함은 면했지만, 너의 노래가 이렇게 홀대 받을 줄은 몰랐다. 이런 노래를..사람들이 이렇게 몰랐던 거구나.

 

나만해도 세 명쯤은 같이 갈 수 있었는데 부산하게 가서 떠들고, 마치고 왁자하게 뒤풀이하기가 싫어서 혼자 간거였다. 혼자서 가만히 너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채찍을 들고 누군가가 뒤에서 쫓아오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렇다고 열심히 달린 것은 아니고 늘 채찍에 휘둘리까봐 불안한 그런 삶. 그런 중에 너의 노래를 들으면 죄지은 기분이 내려 놓아지곤 했다. 달리지는 않고 불안해만 하는 나의 못난 삶이 너의 노래 앞에서는 당당해졌다.

 

노래로 못 다한 이야기를 너는 글로 풀어내었다. 노래만큼 나를 위로해준 너의 글. 신기할 정도로 너는 나와 닮은 사람이었다. 허름한 집, 포장마차야 그렇다쳐도 4,5순위의 위시리스트에 나오는 단어들까지 똑 같아서 좀 웃기기도 하였다. 너의 공연장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너의 책을 읽었다. 책표지가 건너편 사람들에게 보이게 들고 앉았다. 그 사람들은 내가 좀 웃겨 보였을 것이다. 너의 마음과 너의 숨결이 너의 노래가 되어 세상 속으로 더 멀리 멀리 퍼졌음 싶었다.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의 책을 전철역 벤치에 앉아 마저 읽고 들어갔다. 누구와 말을 섞지 않고 책속에 펼쳐진 너와 나의 공기를 침범당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침이 되었다. 너의 노래를 어디서 어떻게 처음 접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몇 년전이었고, 나는 너의 공연을 한 번 보고 싶었지만 늘 소식을 접하고 나면 끝난 뒤였다. 올 해 마침 타이밍이 맞은 건 너의 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너의 글과 노래는 나의 노래였고, 너의 공연은 혼자 보기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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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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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들에게 자유가 도래했다. 성적이 발표나기 전 얼마간의 유예이고, 단지 몇 퍼센트의 수능생들에게만 허용된 자유일까 생각하면 씁쓸하기 그지 없지만. 나는 그동안 책을 읽고 싶어도 못 읽었던 고3들이 분명히 있었다고 믿는다. (그래도 그렇지, 고3필독서라니..제목을 넘 선정적으로 뽑았나...)

 

이제 방금 <아주 사적인 독서>의 [주홍글자]편을 읽었는데, 바로 고3들이 떠올랐다. 이 책은 일곱 권의 고전을 다루고 있다. [마담 보바리],[채털리 부인의 연인][햄릿][돈키호테][파우스트][석상손님]. 이 중 내가 읽은 작품은 그나마 너댓편 정도인데, 옛날 옛적의 일이라 안 읽은바나 진배없다. 배경지식이 완전히 없는 지경..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독서가이드로 몹시 훌륭하다.  야할 것 같아서 멀리 한 책 두 권도 아주 훌륭한 책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으니 책을 펼칠까 덮을까 고민스럽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독서하거나 독서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텐데, 않으면 않아서 하면 해서, 두 경우 모두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되리라 믿는다.

 

[주홍글씨]를 읽는 동안 머릿 속으로 '고리와 독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좋은 책의 좋은 점은 좋은 책을 안내해 준다는 것이다. [주홍글씨]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와 토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견주어 설명하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확 되었다. 책을 읽어내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인데 자연스레 책을 읽어내는 방법이 체화되는 느낌이었다.

 

[마담 보바리]나, [채털리부인의 연인]은 작가나, 문학사적으로나 작품 자체로나 왜 이렇게 몰랐던 것 투성인지 무식을 다시 한 번 절감했고, 고3인 딸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딸은 고교시절 도서부를 해서 비교적 책과 가까이한 편이었지만, 학교에서 읽는 책들도 고전은 드물었다. 고전 읽기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책 속에 있는 제목, 주인공들의 이름이라도 읽고, 언제 어느 순간에 본서를 접할 기회가 온다면, 보다 더 수용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한다. 또는 어차피 20대 초반에 읽어도 이해 안 될 고전을 이정도 맛보기만 보고 지나도 훌륭할 듯 하다.

 

만약 집안에 꽂혀있기만 하는 세계문학전집이 있다면, '책 좀 읽어라'고 해놓고 보태어 줄 뒷말이 생각나지 않는 부모라면,  <아주 사적인 독서>를 아이 손에 쥐어주면 될 것 같다. 본서를 읽지 않고서라도 어디가서 아는 척 하기도 적당하다. 심지어 문학을 이야기하는 너무나 문학적인 화법은 사람을 감동시키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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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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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에 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깨달았다 하더라도 달리 표현할 수 없거나, 어쩌지 못해 외면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당장 그 부조리함이 나에게 닥친다면, 그래도 어떤 방법으로든 살아 나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는 적이 있다. 나에겐 그런 의지가 있을까. 묻기도 전에 아니,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서 가능하면 되도록 법원이나 병원 기타 공공기관에 안가고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바란다. 그리고 나의 이 비겁함과 죄스러움을 들키지 않으려 가만가만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약한 인간도 존재의 근원 같은 것을 따져 보기도 하고, 모순이나 삶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차남들의 세계사> 같은 소설을 읽으면 통쾌하다. 내가 가늠하지 못했던 '세상'을 읽어주고, 그 운명과 우연과 거짓과 패악들을 적절한 방식으로 내가 이해 가능한 문투로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사소한' 인간이 비틀리며 세상에 존재하는 참상을 목도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가슴 갑갑하게 가지고만 있었던 그런 느낌들을 현실들을 객관화해서 본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그래서 이런 소설은 손에 들면 놓을 수가 없다.

 

<김박사는 누구인가>도 읽지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 <차남들의 세계사>를 먼저 손에 쥐게 되었다.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이기호 작가. 역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있었다. 그리고 알아졌다. 나는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구나. 뭔가 좀 걸쭉한 문체들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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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자기 여행 : 동유럽 편 유럽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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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내게 가장 기쁨을 주는 것은? 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있다. 그러면 순간 딱 떠오르는 것은 '커피 한 잔'이다. 커피 한 잔은 비 오는 날의 커피 한 잔이 될 수 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잔에 마시는 커피 한 잔, 좋아하는 사람이 내려주는 커피 한 잔이 될 수도 있겠다. <유럽 도자기 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잔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이야기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삶의 순간 순간 매혹 당하는 것이 없다면...

 

올 가을이 유난히 이쁜 건 내 안에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서 일 것이다. <유럽 도자기 여행>의 저자도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데 단단한 준비가 된 사람 같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깊고 넓다. 이 책은 글자 그대로의 '도자기 여행'이 아니다. 어떤 브랜드가 있고 어떤 제품이 있다는 식의 도자기 카탈로그는 더더욱 아니었다. 저자는 도자기를 사랑해서 이 여행을 떠났겠지만, 그 저변에는 삶과 역사와 사람과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 구석을 헤쳐 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마음, 순수하게 아름다운 것을 탐하는 마음이 있었다. 

 

여행이나 독서에서 주제를 한 가지 정한 다는 것은 보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고, 더 깊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단은 개괄을 한 이후에야 가능한 것이니 유럽을 가고 또 가고 할 수 없는 우리로서는 어쩌면 요원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런대로 이 책은 가지 못하는 곳에 대한 상세한 돋보기용의 책으로 유용할 것이고. 가게 된다면 길잡이로 훌륭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이고, 내용 중에 가본 곳도 많고, 좋아하는 건축가들 이야기도 있어서 나에겐 혹한 책이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도자기에 관심은 없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벌써 권해 두었다. 그 친구의 반응이 궁금하다. 배경지식이나 관심사가 달라도 이 책이 좋은지 읽을만한지 그 친구의 입을 빌리면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 같아서다. 어쨌거나 나는 사서 꽂아두고 자주 들춰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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