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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왜 그랬을까. '두부' 이후로 책이 안 나온 줄 알았다. 두부를 읽으며 막연히 그 사색의 깊이에 매료 당해 마치 이 분이 마지막 날을 받아 놓은 경지에 이르러 나올 수 있을 법한 책이라 믿어 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혼자서 마지막 책이라고 단정지은 탓이 아니었는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요즘 계속 산문집만 읽고 있다. 자연히 다른 책들과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가의 글힘이야 다시 말 할 것도 없고, 조곤조곤 개인사를 듣는 것 같은 정다움에 좋았다. 특히 김훈의 <남한산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정머리라고는 손톱 만큼도 없이 냉정한 단문이 날이 선 얼음조각처럼 내 살갗을 저미는 것 같았다'라는 표현은 내 속까지 시원하게 해주었다. 나의 완소책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을 언급하신 것도, 정원의 풀과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신 것도, 돌아가신 분들을 그리워 하는 글들을 읽은 것도 모두 직접 이야기들은 듯이 좋았다.그리고 이니셜로 언급한 지인들도 누군지 알 것 같은 공감대와 에피소드는 절로 미소 짓게 하였다.
생전의 박완서 선생님은 한 번도 뵙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늘 아는 분처럼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러는 사이처럼 느끼고 있었다. 매번 그렇지만, 작가의 글을 읽고 마음이 순연해지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착하게 살고 싶어졌다. 꾸준히 겸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