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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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와서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면 꼭 그림에 그려진 곳을 전부 내 눈으로 보고 보고야 말 테다고 마음먹었지. 온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분명 어딘가에 가슴에 확 와닿는 내 자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 ‘없었나요?’ 조심스레 묻는 겐에게 “아쉽게도...결국 내가 가장 마음 편했던 순간은 세계를 돌아다닌 끝에 이 후지미 목욕탕으로 돌아와 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였어”...온몸 구석구석이 따뜻해질 만큼 몸을 푹 담그고 있었던 탓에 하얀 피부가 엷은 복숭앗빛으로 변해 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내가 있을 자리라 생각하는 게 마음이 홀가분하고, 마음으로 이어진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면 그 순간부터 혼자가 아닌 거야.”

“‘빨간색이 도저히 싫으면 다른 가발을 선택하면 되는데 전 빨간 가발을 선택했어요. 머리 모양에 맞는게 그것 밖에 없었다는 얘기는 핑계에요. 빨간 머리가 정말 싫었다면 조금 머리 모양에 안 맞더라도 다른 가발을 선택하면 됐으니까요. 제가 선택한거에요, 틀림없이. 빨간 가발이 좋다고, 자신이 결정한거에요.’ ’떠밀린 것 같지만 실은 자신이 결정했다…’ ‘맞아요, 그 증거로, 자, 봐요, 전 지금도 내 머리를 염색해서 빨간 머리로 만들었어요. 결국 좋아했던 거에요.’”

표지에 앙증맞게 서있는 둥글둥글한 펭귄처럼, 이 책은 둥글둥글 편안하게 읽히고 하얗고 보드라운 펭귄의 배마냥 읽는 나의 마음을 쓰다듬었다. 별 부담없이 빌려온 이 책에서 왠지 모를 위로를 느꼈다. 최근 바나나가 떠난 후 내 마음에 잔류하던 죄책감, 내가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하는 불안감, 사랑받고 싶어 타인에게 나를 맞추며 잃어가는 내 진짜 모습, 그리고 떠난 후 깨닫는 소중함까지, 스스로 외롭거나 고립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에게 혼자 환승역에서 자유자재로 철도를 갈아타는 펭귄과 빨간머리의 야먀토기타 여객철도 나미하시선 유실물 보관소(나는 이 긴 이름을 위해 다시 이 책을 펼쳐야만 했다), 속칭 분실물 센터 직원이 주는 위로는 담담하고 편안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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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씽 (예담)
니콜라 윤 지음, 노지양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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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섣부른, 어찌보면 어설픈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살랑살랑, 마치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을 함께 겪고있는 양, 어느 순간 나는 10대들의 사랑을 함께 하고 있었다. 병든 소녀와 그녀의 지루하고 반복되는 투병생활로부터의 탈출을 돕는 소년. 상당히 진부한 내용임에도 왜 자꾸 그리 미소를 짓게 하는지 모르겠다. 주고받는 농담과 메시지 속에서 나는 풋내와 애틋한 감정들, 그리고 바깥 세상으로부터 차단된 매디 특유의 감성이 어우러져 나는 효과가 아니었나 싶다. 그 와중에 이 작가가 참 대단하다 생각했던건, 정말 단조로운 어체와 편하게 읽히는 문체로 엄청난 몰입을 유도한다는 점이었다. 정말 이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희망조차 사치가 되고 그저 이 상황이 그대로 존속되기만을, 그저 그 다음 생일이 오면 그 전 한 해를 이겨낸 것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이렇게 유지라도 되어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어떻게 내 깊은 속 한 구석을 시리게 할 정도로 전달했을까.

"그해 여름 나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서서 나의 부질없는 소망때문에 가슴에 멍들이며 살았던가. 처음에는 그저 창밖을 내다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자 밖에 한 번만 나가보고 싶었다. 그런 다음에는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고 싶었다. 딱 몇시간만, 딱 하루만, 아니 평생동안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메일을 읽지 않았다. 내가 확실히 아는 딱 한가지가 있다면, 그건 한번 원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더 많은 걸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욕망에 끝이란 없다."

기욤 뮈소의 작품처럼 급하게 해피엔딩을 위해 이야기가 너무 급 선회된 것은 조금 아쉬웠으나, 하루 내내 이 책을 읽으며 가슴 한켠이 저릿하면서 매디의 표현을 빌리자면 "뱃 속에 나비가 날라다니는 듯한" 느낌은 상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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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로맹 가리 지음, 이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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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로망 가리의 책들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로망 가리의 글이 레니에의 죽음으로 치닫을수록 점점 불안해져갔다. 긴장된 모습으로 스스로의 범행현장을 준비하고 있는 레니에와 함께 나도 같이 식은땀이 흐르려 했다. 그렇게 레니에가 죽었다면, 이 책은 노년의 절망을 구제하지않고 방치하여 독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늙음에 대한 두려움만 남겼을 것 같다.하지만 로망 가리는 레니에를 구제해 주었다. 끝에 몰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간이 오면, 오히려 그 순간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라고 희망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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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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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사회적 약속에 의해 합의된 법에 따라 잘못에 대한 처벌이 결정되어야 하지, 한 개인이 원한에 의해 손쉽게 남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그 또한 범죄이며,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강력히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연히 이 책을 봤을 때 내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내 테이블위에 책이 내려놓을 때마다, 심장이 뻐근해지며 그 다음 내용을 빨리 알고싶어질 뿐이였다. 결국 책을 덮을 땐, 자기 나름대로 요리조리 법망을 빠져나가며 벌은 받지 않은 채 남의 인생을 망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벌하는 릴리가 어느정도 납득이 되다가도, 결국 그 책임을 지지않고 법망을 유유히 벗어나는 그녀를 보고, 결국은 릴리 자신도 죽여 마땅한 사람이 되지 않았나, 느낌이 들었다. 통쾌한 느낌이 들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심경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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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7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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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전들이 그렇듯, 읽는 사람이 어느 시기에, 어떤 상황에서 그 책을 접하느냐에 따라 같은 책이 매번 판이하게 다르게, 새롭게 읽힌다. 마찬가지로 나도 내가 고등학교 때 이 책으로부터 받았던 그 느낌과는 굉장히 다른 시선으로 이 책을 접근하게 되었다. 어렸던 10 대의 나는 이 책에서 1900년대 초반의 더블린의 남루함과 부족함이 묻어나는 인간적인 사람들, 그리고 낯선 도시의 매력을 느꼈다면, 20대 후반의 나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분열되는 계층간, 그리고 사람들 간에서 쉽게 다른 사람들을 비틀어진 시각과 흠 잡는 듯한 말투로 무시하는, 그리고 그럼으로써 추락하는 스스로의 가치를 어떻게든 보존하고자 하는 이들의 처절한 모습과 가식, 애처로운 행동들, 그리고 무너져 가는 삶을 읽은 듯 하다. [더블린 사람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단편은 마지막의 ‘죽은 사람들’이었다. 안으로부터 분열과 붕괴의 시기를 걷고 있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변화하는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선택의 기로에 내몰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무너져가는 삶 안에서 작은 즐거움과 행복을 찾으며 묵묵히 잘 살아가는 그 모습이 그 전 단편들에서 느꼈던 목 막히던 답답함이 씻겨져 나가는 듯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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