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마카롱 에디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마이클 헐스 해설,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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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이 한 장을 더 넘기면 연약한 그가 푸스러질까봐, 그가 끝내 정말로 무너져 버리고 말까봐 두려웠다. 책의 페이지들이 많이 남았음에도 감성적이고 극단적이며 아름답고 비관적인 베르테르가 끝내 그가 느끼는 이 모든 감정과 우울을 견디지 못해 그의 머리에 이미 총알을 박아버릴까봐 떨었다. 읽으며 마시던 커피 안의 카페인 때문인지, 그의 고통을 글자 너머로 전달받아서인지, 심장이 뻐근했다.

처음엔 그저 그가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책의 중반부 즈음엔 베르테르가 지나치게 감성적이라고 생각했다. 여느 10대의 불타는, 풋기 어린 시간처럼 사랑에 눈이 멀고 판단력이 흐려진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어쩔 수 없음”을, 그가 스스로 알면서도 우울의 깊은 나락으로 추락해가는 그 과정을 함께 짚어가며 어쩌면 외려 우리가 강박적으로 이성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 자연을 향한 경외와 사랑을 향한 열정. 왜 순수하다 못해 성스럽기까지한 감정이 이성을 이겨서는 안되는 걸까. 왜 우리는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왜 베르테르만큼 세상을 충실하게 느끼고 있지 못하는가.

“손을 내밀어 잡는 것은 우리 인간의 한없이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니던가. 어린아이들은 자기들 마음을 끄는 게 있으면 언제든 붙잡지 않는가? 그런데 왜 나는?”

본문이 끝나고 후술된 작품 해석을 보면, 베르테르의 이 유약함이 얼마나 왜곡되어 왔는지 알 수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소위 ‘베르테르적 낭만주의’라고 이름 붙어 오랜 시간 학자들에 의해 젊은이들의 자살을 유도하였다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등 여러 평을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젊은 시절 괴테가 쓴 이 책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그저 이루지 못할 사랑에 눈이 멀어 우울에 빠져 자살한 한 남자만이 아니라, 알베르토로 대변되는 “정답”과 “이성”만이 유일한 답이 아님을, 인간 속에 내재된 연약함과 감성,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도 마땅히 존재한다는 것인 것 같다. 날이 맑아도 흐려도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시선, 작고 낮은 것에서도 경외를 찾는 것, 이러한 것들도 이성과 함께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구성 요소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존재를 바쳐 유일하고 무한하며 장려한 감정의 온갖 환희로 가슴을 채우려 애태운다네. 그러다가 아! 막상 그리로 달려가면, 저곳이 이곳이 되면, 모든 것은 전과 다를 게 없어지지.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가난 속에, 우리의 제한 속에 서 있을 뿐이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사라져버린 청량제를 그리워 한다네.”

이 소설은 괴테의 자전적인 고백이자 허구적인 소설의 결합체로, 젊은 변호사였던 괴테가 그 자신과 샤를로테 부프, 그리고 크리스티안 케스트너와의 관계와 자신의 동료인 예루잘렘이 결혼한 여성을 사랑해 그 자신을 비관해 자살하고 만 이야기를 엮어 만든 책이다. 책 초반부 로테와 베르테르가 만나던 장면과 로테가 어머니의 부재에 자신의 동생들을 잘 돌 본 것까지, 그의 경험이 많이 녹아났고, 이후 자살을 위한 권총을 빌린 것과, 크고 작은 빚을 모두 청산하고 말끔한 옷을 차려입고 편지를 쓴 뒤 권총 자살한 점은 예루잘렘의 실화에서 가져왔다. 집안의 가업을 이어 변호사가 되었던 괴테였지만 감정을 배제하고 오롯이 법과 윤리, 이성만으로 많은 것을 판단해야만 하는 직업을 가진, 예술적인 감성을 타고난 그만이 쓸 수 있었던 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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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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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By 백수린

픽션에 걸맞는 표현은 아닐지언정, 이 책은 상당히 솔직하다. 우리 머릿 속 스쳐지나가는, 남에게는 드러내기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생각들을 그러모아 풀어내려나간 느낌이다. 소설 속 “나”는 대개 안전한 버블 안에 있고, 이 버블 밖이 궁금하고 터트리고 나가고자하는 일순간의 욕구가 일지만, 그 버블 밖의 냉혹함과 막연함을 감내하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어버려 내가 가진것에 안주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손쉽게 동정해버린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가 내 머리 속을 파헤쳐서 읽어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솔직하고 좋았다.

“어떤 이와 주고받는 말들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용감한 게 아니야. 단지 그런 척하는 거지. 척을 하다보면 그래지기도 하니까”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구겨진 신발 위에, 양말도 없이, 까치발을 한 채로. 돌이켜보면 그 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니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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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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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dnight Library]
By Matt Haig

우리는 종종 쉽게 후회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게 된다. 이때 이런 선택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늘 우리는 지금보다는 달랐을 그 길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휩싸여 지금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감사하게 여기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면, 내가 외골수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내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사이에도 내 주변에 감사할 일은 항상 가득하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을 우리는 늘 잊고 산다. 그걸 어찌보면 진부하게, 하지만 약간은 버거울 정도로 와닿도록 해주는 게 이 책인 것 같다. 평행세계의 개념을 각자의 머릿 속 피사체에 결합시켜 만들어내는 go-between place는 결국 우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고, 마음만 먹으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싱크홀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 책은 그런 건강하고 꼭 필요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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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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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평화로움 이면에 존재하는 불안, 마음 깊은 곳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아름답게 그려낸 단편집이다. 속이 타들어 가고 내내 시달려도, 겉으로는 표출할 수 없는 그 죄책감과 고통을 세밀하게 묘사해낸다. 결국 그 실체를 직면해야 하는 그 순간에, 우리는 진정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가. 실제로도 크고 작게 겪을 수 있는 우리의 감정 곡선을 글로 정확하게 찔러내는 느낌이다.

“뭔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발견의 기회를 없애버리게 되니까요.”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말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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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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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By 무라카미 하루키

한 작가의 작품들을 꾸준히 읽어오다 보면, 그 특유의 정서나 문체에 질리기 마련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은 희한하게도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법이 없다. 기본적으로 원어가 따로 있고, 번역이 된 책들은 아무래도 번역가의 영향이 크게 미칠 수 밖에 없는데, (그래서 번역가가 그 맛을 잘 못살리면 더 빨리 질려버리는 듯 하다) 하루키의 경우는 좀 특이한게 원어인 일본어에서도 특유의 번역투가 느껴진다고 하니 비교적 그런 류의 괴리감은 적은 편일 듯 하다. 나 자체도 약간 번역투를 쓰는데다, 자유롭고 종종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사고의 흐름 자체가 유독 편하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탓이다. 이 책은 묘한 틈새를 파고드는 맛이 있는데, 하루키는 에세이를 많이 쓰는 작가이다 보니, 본인이 일인칭 주인공인 이 소설에서는 그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완벽히 갈라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묘한 매력과 약간의 흥미로운 판타지를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는가...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일을 이루어내고 나면,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크림 중의 크림, 그게 ‘크렘 드라 크렘’이야.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나는 실로 방대한, 거의 천문학적 횟수의 ‘지는 경기’를 지켜봐왔다. 다시 말해 ‘오늘도 또 졌네’라는 것이 세상의 이치로 여겨지도록 내 몸에 서서히 길들여갔다는 소리다. 잠수부가 오랫동안 주의깊게, 수압에 몸을 길들이듯이.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하는 데서 나온다.”

“물론 지는 것보다야 이기는 쪽이 훨씬 좋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경기의 승패에 따라 시간의 가치나 무게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시간은 어디까지나 똑같은 시간이다. 일 분은 일 분이고, 한 시간은 한 시간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그것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시간과 잘 타협해서, 최대한 멋진 기억을 뒤에 남기는 것-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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