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 뒤라스가 펼쳐 보이는 프랑스판 ‘부부의 세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렬하다, 무더위도, 감정들도. 책이 손에서 녹아내린다는 더위 속에서 모든 대화나 행동들이 느릿하게 흘러가는데도 그 속에 강렬한 감정들이 숨어져 있다. 그렇지만 그 강렬한 감정들도 결국엔 더위에 녹아내려 원래의 위치를 찾아간다. 다른 남자를 꿈꿔왔지만 기회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바람을 피워오던 남편에게 돌아가는 사라, 사랑의 종류가 다르다고 해서 그게 공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라의 남편 자크, 서로를 속박하면서 그 사랑 속의 권태까지 끌어 안는 루디와 지나. 뒤라스는 부연 설명없이 인물들의 대화와 문장과 문장 사이의 마침표에 많은 것들을 내포시켜 놓았다. 그리고 더없이 관능적이다. 짧은 시간을 길게 늘여 놓고 무더위까지 포함시켜 모든 것이 지치고 권태롭게 느껴지도록 해놓았는데, 그마저도 그 감정선을 더욱 밀도 높고 진하게 만들어 버린다. 사랑을, 그리고 사랑이 수반하는 다른 모든 것들을 날것처럼 대담하고 솔직하게 해체시켜 바라보는 그녀의 관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나긴 이별 열린책들 세계문학 252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김진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나긴 이별]
By Raymond Chandler

60년대의 007 영화를 보는 듯한 추리소설. 필립 말로는 하드보일드하고 충동적이며, 거친, 전근대적 마초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탐정이 아닌가 싶다.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는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비교적 단순하고 우직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반면, (물론 그는 말로와는 달리 경찰이다) 말로는 상대가 누가되었건 자신의 부족함이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마음껏 잘난 체와 빈정거림을 뿜어낸다. 007이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 이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저녁영업을 하려고 막 문을 연 바가 좋아. 안의 공기는 아직 시원하고 깨끗하며 모든 것이 반짝거리고, 바텐더는 막 거울에 자기 모습을 마지막으로 비춰보며 넥타이가 똑바로 됐나 머리가 단정한가 점검하고 나오는 참이지. 바의 뒤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병도 좋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유리잔이나 기대감도 좋아. 바텐더가 그날 저녁의 첫 잔을 만들어 빳빳한 받침 위에 내려놓고 작게 접은 냅킨을 옆에 놓아두는 모습도 좋지. 술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도 좋아. 조용한 바에서 조용하게 그 날 저녁의 첫잔을 마신다는 건 정말 근사한 일이야.”

“세상의 모든 조용한 바에는 그렇게 슬픈 남자가 한 명씩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토너]
by John Williams

담담하고, 답답하고, 또 착잡하면서도 그저 흘러가듯 따라갔다. 뭔가 행복의 낌새가 보이려 치면 인생이 그를 뒤따라가 그걸 뒤엎어 놓는 듯한 삶을 살던, 그리고 그 모든 고통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한 남자의 삶을 엉성하게 컬러로 복원한 무성 흑백영화를 관람하듯 본 기분이다. 책의 전개는 결코 빠르지 않다. 세심한 묘사가 차분하게 그 주변의 공기를 나에게 전달할 수 있을 만큼의 템포로만 흘러간다.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직장에선 입바른 소리를 하다 은퇴할 때 까지 고통받고, 진정한 사랑을 허무하게 빼앗기고, 사랑하던 딸은 병적인 엄마 곁에서 도망치기 위해 도시를 벗어났다가 알코올 중독이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끝내 그는 누구에게 소리쳐 부딪히지도,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지도 않는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나름의 안정과 정리를 해두고는 홀연히, ‘삶을 관망하던 자’로서 떠난다. 씁쓸한 뒷맛이 느껴지는 책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eunhi 2021-03-18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은 여태까지의 읽은책중에서 손꼽히는 책중에 하나이다. 그전에 읽었던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 도 그중에 하나이고, 스토너 는 다읽고 난뒤에는 다음책 을 읽을 수없었고 한동안 나는 집없는 사람 처럼 느껴졌다.....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비와 별이 내리는 밤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와 별이 내리는 밤]

By Maeve Binchy

가슴 께 어딘가가 푸근해지는 느낌이 든다. 지금 밖에는 때 늦은 장맛비가 내리고, 이 책의 배경은 분명 햇살이 따듯하게 내리쬐는, 향긋한 레몬나무가 연상되는 따듯한 그리스의 작은 섬인데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그녀의 다른 소설 [그 겨울의 일주일]처럼 어두운 한 겨울 밤에 포근한 담요에 폭 싸여 핫초코를 마시는 기분에 휩싸였다. 이 소설은, [그 겨울의 일주일]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어찌보면 자기복제 수준이라 해도 될 정도로 사실은 구성이 비슷한데, 사랑이라 믿었던 남자가 버리고 떠난 한 여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억척같이 힘든 세월을 견뎌내고, 그 여자의 삶에 찾아온, 각자의 문제게 휩싸인 이방인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이야기라는 점이 특히 그렇다. 이런 플롯 구성이 비슷하다면 사실 꽤 지루하게 읽힐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감이 없었다는 것은 이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종종, 아니 어쩌면 늘 자기합리화의 달인이 된다. 주변 사람들의 삶에는 사사건건 참견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문제에 있어서는 감정에 휩쓸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자기객관화란, 성별과 인종, 나이를 다 넘어서 누구에게나 끔찍히도 힘들고 어려운 듯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도 그렇다. 어쩌면 내가 처해있는 문제와 닮아있는 남의 문제를 보면서도, 그 유사성은 눈치채지 못하고 남의 문제는 너무 쉽게 해결책을 줘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자기는 처지나 상황이 다르다고 꾸준히 자기합리화를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현실을 깨우치게 도와주려해도, 스스로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깨어나올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듣지 않을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을 위해서 꾸준히 위로하고, 옆을 지켜주고, 이따금은 객관적인 이야기도 해줄 수 있어야하는 듯 하다. 그 누구도 서로의 마음 속 상처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그 아픔을 쉬이 넘기거나 손 쉬운 해결책을 줄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되기도 하고. 하지만 그 과정 안에서, 그 위로와 공감의 시간들 안에서 우리는 서로 치유된다. 아기아안나라는 이 작은 섬을 찾은 이방인들을 품어주는 보니와 안드레아스도, 각자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채이지만, 이들을 도와주면서 자신들 스스로 안에서도 치유를 받고 희망을 찾게 되는 듯 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고 위로하고 공감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비와 별이 내리는 밤을 그리며 살아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by Patrick Modiano

우리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우리를 우리이게끔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한 사람이란 그 사람의 추억과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을 잃으면 결국 그라는 존재는 더이상 그 일 수 없다. 그렇게 간단하게 끝인것을. 새삼스레 허망함과 공허함을 체감한다. 사탕 틴 케이스 속 고이 모셔두는 사진들과 편지들도, 그를 뒷받침해줄 기억이 없다면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주인공 기 롤랑은 나치가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 그리고 전후의 프랑스에서 그가 잃어버린 기억들을 빵 부스러기 줍듯이 쫓아다니지만, 그 기억들은 관련된 사람들과 함께 바람에 휘날리듯 날라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끝끝내 그는, 기억을 찾지 못하는 한 그 스스로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우리는 그래서 그렇게 하루하루 쉬이 연기처럼 휘발되는 그 나날들을 어떻게든 잡으려, 남기려 발버둥을 치나 보다.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사람들...그들은 어느날 무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미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그는 상자를 집어서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스티오파 드 자고리에프와 그 역시 나에게 주었던 빨간 상자를 생각했다. 결국 모든 것이 초콜릿이나 비스킷을 담던 낡은 상자들 속에서 끝이 나는 것이었다. 혹은 담배 상자 속에서.”

“그 건물들의 입구에서는 아직도 옛날에 습관적으로 그곳을 드나들다가 그후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남긴 발소리의 메아리가 들릴 것 같다.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무엇인가가 계속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 더 약해져가는 어떤 파동, 주의하여 귀를 기울이면 포착할 수 있는 어떤 파동이. 따지고 보면 나는 한 번도 그 페드로 맥케부아였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에서 떠돌고 있던 그 모든 흩어진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