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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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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자면, 아날로그와 오래된 것들에 깊은 애정을 품는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나 특별한 날에 손 편지 써주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을 가면 꼭 현지에서 엽서와 우표를 사서, 그 여행지의 날인을 받아 오는 그 엽서를 하나 하나 정리하며 행복감을 느낀다. 앤티크 숍에서 오래 전 날인이 찍힌 편지봉투나 우표를 사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앨범에 보관한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만큼이나 내 스스로의 감정을, 취향을, 그리고 공감을 끌어내는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실 ‘츠바키 문구점’은, 크게 드라마틱한 플롯이랄 게 딱히 없는 책이다. 물론 주인공 아메미야는 츠바키 문구점에서 사계절을 거치며 주변 사람들을 돕고 도움을 받으며 성장하지만, 나에게 이 책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마음을 담아 정성스런 편지를 보내고 싶지만, 표현이 부족하거나 글씨가 예쁘지 않아 아쉬워 하는 이들에게, 차를 한 잔 대접하며 의뢰인에 따라 지류와 필기구, 우표까지 세심하게 골라 그 마음을 전달하는, 그 마음이, 그리고 그 디테일들이 이 책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가슴이 포근해진 느낌. 오늘은 자기 전, 서귀포에 있는 영빈이에게 편지를 쓰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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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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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By Agota Kristof

작가의 말투는, 담담하다. 폭풍우가 휘몰아 치는 어두운 밤 바다 한가운데서 흔들리고 있는 배 가장 밑 갑판에서, 조용히 눈 감고 평안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을 듣는 기분이다. 이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보지 않고 무작정 제목에 끌려 집어 든 이 책에서, 나 스스로 눈치를 채지 못하는 사이에 물 속에 잠겨버린 기분이었다. 두 번의 침공 속에서 나라를 잃고 난민이 된 그녀는, 4살부터 활자중독처럼 글을 읽어대던 그녀는 스위스에서 문맹이 되었다. 낯선 나라, 낯선 음식, 그리고 알 수 없는 활자. 일하던 공장에서 프랑스어로 말을 하는 방법은 배웠지만 쓰고 읽을 줄을 몰라 꼬박 5년을 문맹으로 살았던 그녀가 113쪽의 아주 짧은 책 안에서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녀의 삶은, 여태 내가 ‘난민’을 바라보던 시선을 비웃듯 뒤집어 놓았다. 나는 불안정한 체제 하에서 벗어나 안정된 곳에서 정착을 할 수 있다면 난민들은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받아’들여주는’ 자들의 시선일 뿐, 사실 그들이 등진 삶, 음식, 추억, 문화를 그리워하고 상실을 느낄 것이라는 점은 등한시한 것 같다.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가 나에게 스위스가 소련인들을 여기까지 오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나를 안심시키려고 한다는 것 정도는 이해한다.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더 이상 슬퍼할 필요도 없고, 내가 지금 안전하다고 말한다. 나는 웃는다. 나는 그에게 소련인들이 무섭지 않고 만약 내가 슬프다면 그것은 오히려 지금 너무 많이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직장과 공장, 장보기, 세제, 식사 말고는 달리 생각할 것도, 할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잠을 자고 내 나라 꿈을 조금 더 오래 꿀 수 있는 일요일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에게 말하지 못한다.”
난민에 대한 시각 이외에 이 짧은 책이 나를 더 강렬하게 흔들어 놓은 것은, ‘모국어와 적어’ 이다. 그녀는 소련 통치하에 모국어인 헝가리어 이외에 반 강제적으로 러시아어를 배워야 했으며, 필요에 의해, 정확히는 자신의 아기에게 먹일 우유가 필요해 기초적인 독일어를 배워야 했고, 난민으로써 스위스에 정착해 살아가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웠다. 이 ‘문맹’이라는 책 역시 프랑스어로 집필하였으나, 그녀 자신도 인정하듯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어를 쓰는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프랑스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 그녀는 그토록 좋아하는 글을 읽지 못해 괴로워하다 결국엔 유수의 프랑스어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몹시 기뻐하지만, 사실상 그 언어는 여전히 그녀에게는 외국어 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오히려 그로 인해 그녀의 모국어를 잃는 것 같아 복잡한 감정이 들어 한다. 나는 주로 옮긴이의 말까지 읽는 편인데, 이 번역가 분의 말이 나에게 정말 절절히 다가왔던 부분이 있어서 마찬가지로 소개한다.
“원서로 책을 읽는 다는 것은, 표지와 경계가 뚜렷한 해수욕장을 벗어나 저 멀리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것과 비슷하다. 외국어로 쓰인 원서의 페이지를 넘기는 사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끝이 점점 멀어질 뿐인 광활하고 짙푸른 바다다. 모국어의 경계 밖에서 헤엄치는 일은 매우 험난하고, 때로는 위험하며, 나를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도전의 연속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흥미진진한 모험이다. 외국어를 읽는 동안 나는 가닿을 수 없는 수평선처럼 그곳에 있는, 누군가의 모국어와 내 발을 묶고 있는 나의 모국어 사이 어딘가 대양을 가로지르는 은빛의 물고기처럼 자유롭다…모국어와 모국의 문자 바깥에서 작가는 무력한 이방인이다. 결국 그녀는 외국어, 그러니까 그녀의 용어를 빌면 ‘적의 언어’를 배워 나가며 서서히 잃었던 자아를 되찾아간다.”
해외에 몇 년 나가 살았던 경험 때문인지,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하는 편이다. 미국과 영국을 기반으로 한 문학작품들은, 원서로 읽을 때에 주는 울림을 번역본에서 줄 수 없을 때가 있고, 오히려 번역본에서 한국의 정취가 묻어나 더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는 때도 있어, 언어의 힘이란 참 대단하고 신비롭다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생활이 길어지며 사라지는 이 영어를 어떻게든 붙잡고, 새로운 언어를 계속 배우려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작품 그대로의, 날 것을 온전히 받아들여보고 싶어서. 1시간도 안 걸려 읽은 아주 짧은 책이었지만, 내 저 안쪽 어딘가를 쥐고 흔드는 듯한 깊이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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