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죽은 그녀
로사 몰리아소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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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람을 뜨끔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모든 것이 빠른 이 세상에서 점점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만 급급해 남들에겐 점점 무관심해지고, 설령 관심이 생긴다 한들 타인이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그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질 번거로움에 외면하게 된다. 이는 아마 하늘에서 갓 내려온 천사가 아닌 이상 우리도 크든 작든 한 번쯤 겪어봤을 수 있는 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속으로 흠칫 놀라고 공감의 미소를 던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동정심과 호기심이 뒤섞여 바라보다가도, 용기 있게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경찰이나 119에 신고하기란 사실 쉽지 않은 법이다. 괜한 오해를 받을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방치하자니 드는 죄책감. 많은 이들이 그 사이에서 고민해봤을 것이다. 아름다운 시체를 보고 지나친 4명의 사람들도, 휘말려 들까 두려워 순간 지나치지만, 결국 이면에 드는 죄책감 때문에 다시금 그 장소를 찾고, 자신의 삶을 다시 계속하는 것처럼, 우리는, 아니 최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그런 한켠의 죄책감과 관심이 남아 있다. 난 책을 다 읽고 나서 어젯 밤, 주차장 한 켠에 놓인 쓰레기를 보고 들고가서 버리고 싶지만 뭔가 오염되어 있을까봐 걱정 되 결국 그대로 두고 온 내 생각이 났다. 오염이라는 이유로 포장했지만, 한 편으로는 직접 가지고 와서 씻어서 버리기 까지가 귀찮았던 마음이 더 컸던 게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 출근 길에 그대로 놓여 있던 그 캔 무더기가, 나를 포함한 몇몇 주민들에게 그 ‘시체’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서 거듭해서 말하는 것처럼, 순간의 선택이 인생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이 크게 와 닿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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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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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다. 책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대나무와 철을 얼키설키 엮어 만든 쇠꼬챙이 같은 걸로 나를 찔러 내 깊은 곳을 관통시키는 느낌이 들어서, 한참 읽다가도 잠시 숨을 돌리려 책을 내려놔야 했다. 이 책은 일차원적으로는 전쟁포로들이 겪었던 일, 그리고 전쟁이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남겨 놓은 공허함과 지울 수 없는 상처 같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큰 틀 안에서 작가는 시점과 시간을 교차해가며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도 내가 여기서 말하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말하기가 어렵다. 마치 내가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내 안의 의심과 위선, 욕구, 허탈감, 무력감, 그리고 이런 감정들을 나 스스로에게나 타인들에게 정당화하려는 생각들, 소위의 책임의식과 그로부터 오는 중압감, 그런 것들이 모두 들통나버려서, 그리고 작가가 표현하는 이 모든 것들이 다행히도 나 혼자만의 문제만이 아님을 느끼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모두를 뭉그러트려 인간성이라고 손 쉽게 말해 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책 안에서 작가는 여러 이벤트들을 겹겹히 쌓아올려 사람에 대한 여러 그의 생각들을 풀어냈다. 그의 책 속 포로수용소에는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부서져도 얼마 없는 죽을 주저 앉은 전우에게 나누어 주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공동의 인류애 같은 게 있으면서도, 자신을 우러러 보는 병사들이 가져다 준 스테이크를 속으로는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싶지만 병사들이 자신을 생각하는 “그 존경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중압과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위선에서 우러난 선행도 그와 함께 공존한다. 도리고 에반스는 끝끝내 사랑을 정의하지 못하고, 아내를 참을 수 없어하며, 가족에게 무심했지만, 가족을 위해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마침내 그들을 마주했을 때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 그들을 강하게 끌어안는다. 전쟁포로들을 자신들의 확고하고 무자비한 신념 아래에 희생시켜 놓고도 뻔뻔하게 스스로를 전쟁의 희생자들이라 칭하며 과거를 미화하는 전범들 조차도, 깊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죄책감을 가끔 마주하며 외면하려 애를 쓴다. 그렇게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승자는 없이 패자만 남았다. 아니 정확히는 소수의 싸이코패스가 승리하고 남은 사람들은 가해자며, 피해자며 할 것 없이 모두 패자가 되었다. 책을 읽은 뒤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적는 이 와중에도, 머릿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은 너무 많은 생각과 인간성에 대한 복잡하고도 혼란스러운 잡음이 뒤엉켜 조금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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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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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이고 따듯하며, 아름답다. 이제 막 비추기 시작한 햇볕 아래에서 미지근한 욕조에 발을 담그는 것처럼. 책의 플롯은 단순하다. 치매로 소중한 기억들을 잃어가는, 그리고 그것을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는 한 노인이 지독히도 힘들게 기억들을 붙잡으려 애쓰며 그 현상을 그와 그의 가족들이 힘겹게, 하지만 겸허히 받아 들이는 과정의 이야기다. 그는 그의 머릿속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손자가 그와의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애쓰지만,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질 수록, 말하자면 그의 ‘머릿속 광장’이 계속 좁아질 수록, 그의 ‘히아신스로 둘러싸인 광장’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던 나무 밑’에서, ‘우주에 떠다니는 배’ 위에서, 그의 아내와 노아는 오히려 그를 다독이며 그를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이끈다. 괜히 보랏빛 꽃에서 날 법한 향기가 코 끝에서 느껴지는 그런 책이다.

“’제 손을 왜 그렇게 꼭 붙잡고 계세요, 할아버지?’ 아이는 다시 속삭인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있고 싶거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보답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더욱 세게 잡는다.”

“히아신스 향기가 나고 가끔 고수 냄새도 풍기는 정원 옆에 오래된 벌판이 있다. 벌판을 가로지른 울타리 저편에 오래전에 동네 주민이 육지로 끌어다 놓은 고물 어선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집에서는 도무지 평온하게, 조용히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 할머니는 항상 할아버지가 집에서 일을 하면 평온하게, 조용히 지낼 수가 없다고 대꾸했기에 어느날 아침 할아버지가 정원을 지나고 울타리를 돌아 나가서 어선의 선실에 페인트를 칠하고 사무실로 꾸몄다. 그 곳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모든 것이 논리적인 공간이었다. 수학자들에게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공간이 필요할 지 모른다. 커다란 닻이 어선 한쪽에 기대 세워져 있다. 테드는 아주 어린 꼬맹이였을 때 가끔 아빠에게 그 닻보다 더 키가 커지러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노아가 태어났을 때 그는 달라졌다. 할아버지인 그는 아빠였을 때와 다른 사람이었다. 예전에 테드가 했던 질문을 노아가 하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평생 그러지 않길 바라는 게 좋을거다. 왜냐하면 닻보다 키가 작은 사람들만 할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언제든 놀 수 있거든.’ 노아의 머리가 닻 꼭대기에 점점 가까워지자 할아버지는 방해받을 특권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 밑에 돌을 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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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마카롱 에디션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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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는 내내 이 모든 문장들을 어딘가에 고스란히 옮기거나 박제해두고 싶은 욕망에 휩싸였다. 보통 읽으며 인상깊은 문장들은 따로 찍어두거나 써두는데, 이 책에서 그런 부분들을 따오자면 141쪽 책을 모두 옮겨 적어야 한다. 아마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인상깊고, 가슴 속부터 너울이 치고, 공감하고, 찔려 읽은 듯하다.

1960대의 이 불안정한 젋은 부부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나,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로 이어져 있는 듯하다. 끊임없이 열망하고, 부를 추구하고, “행복”해지고 싶어하지만 그에 따르는 수고로움과 노력, 그리고 권태는 감내하려 하지 않는다. 일확천금이, 혹은 어떤 행운이 어느 날 자신들 수중에 떨어져 자신들이 늘 코를 박고 쳐다보는 그 진열장 너머의 고급스런 가구들과 정원이 딸린 좋은 취향이 어린 집을 손 쉽게 얻기를 바란다. 지나치게 빠른 발전 속에 정립되어져 버린 “풍요로움”과 “행복”을 손에 쥐기에는 자신들의 금전적 처지가 비참하지만, 사회는 지속적으로 그런 것들을 이들에게 노출시켜 그 갈망을 키운다. 하지만 그걸 얻기 위해 시간적 자유로움이나 개인적인 여유를 포기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이들에게 영원히 그들이 원하는 그 허상은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돌고 돌아 이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시간적 자유로움을 포기하는 대신 어느정도의 부와(그들이 열망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나) 편안한 삶을 얻게 된다.

여기에서 이중적인 감정이 뒤섞이는 것은, 우리가 현대에서 SNS에 표출하는 표면적 행복과 그 선이 닿아있다는 것이다. 남이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대해 부러움만 느끼고, 그 뒤에 숨겨진 그들의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은 외면한 채, 그저 수반되는 노력없이 꿈만 꾸기 시작하는 것이다.

제롬과 실비는 지금의 나와 소름 돋으리라 만치 닮아 있다. 그 목적이 결국 돈에 닿아있지 않을 뿐. 그저 뭔가 대단한 것이, 나에게 딱 맞고 오롯이 나를 위해 존재하리라 믿는 그 천직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저 이 지루한 현실을 탈피하고 싶어하는 나와 닮았다. 찾으려 노력하지도 않고서 나에게 일상의 편안함과 좋은 것들이 제공되기를 바라는, 그런 말도 안되는 어리광을 내가 지금 부리는 것이 아닌가. 결국 우리는 그 두 가지, 그러니까 시간적, 정신적 여유로움과 금전적 여유로움을 동시에는 얻을 수 없고, 그 중 어느정도는(혹은 둘다에서 어느정도씩은) 잃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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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 개역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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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계획하는 단계가 가장 즐겁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스망스의 소설의 주인공 데제상트는 실제로 여행을 하게 되면 머릿속으로 그리던 이미지와 현실간의 괴리로 인해 실망하게 되니, 머릿속에서 행복한 이미지로만 남기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실망할 요소가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보통이 말하듯, 일상은 우리에게 단편적인 일뿐만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많은 보풀들을 함께 떠 안긴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 은행을 갔다” 라는 말은, 아침에 늦장부리며 일어나 귀찮음을 호소하며 버스에 앉아 기분 나쁜 표정을 뿜어내며 주변사람들에게 불편을 안기며 갔다 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여행을 상상할 때엔 그런 보풀을 상상하지 않게 된다. 여행 전에는 우리가 미리 접할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리고 단편적인 사진들의 연속을 상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불쾌함과 괴리감을 느낄 여지는 충분하며, 또 여전히 “나”라는 존재를 데려가야 하므로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알랭 드 보통은 예술이 그런 간편성, 단순성에 대한 욕망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그림과 소설은 행복함이든 절망감이든, 한 가지의 감정 혹은 스냅샷을 표현해 내면서 일상의 보풀들을 과감히 생략해 나간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그 단순함이 주는 편안함을 온전히 느껴내는 것이다.
물론 여행을 가서 실망하는 점들은 분명 있다. 하지만 그 실망감을 이겨내는 그 순간의 스냅샷들, 찰나의 단순한 그 감정들과 눈에 담기는 풍경, 그게 우리가 그 실망감을 반복적으로 학습 당하면서도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일상에서는 느껴보기 쉽지 않은 그 단순함을 보다 더 쉽게 느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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