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별이 내리는 밤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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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별이 내리는 밤]

By Maeve Binchy

가슴 께 어딘가가 푸근해지는 느낌이 든다. 지금 밖에는 때 늦은 장맛비가 내리고, 이 책의 배경은 분명 햇살이 따듯하게 내리쬐는, 향긋한 레몬나무가 연상되는 따듯한 그리스의 작은 섬인데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그녀의 다른 소설 [그 겨울의 일주일]처럼 어두운 한 겨울 밤에 포근한 담요에 폭 싸여 핫초코를 마시는 기분에 휩싸였다. 이 소설은, [그 겨울의 일주일]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어찌보면 자기복제 수준이라 해도 될 정도로 사실은 구성이 비슷한데, 사랑이라 믿었던 남자가 버리고 떠난 한 여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억척같이 힘든 세월을 견뎌내고, 그 여자의 삶에 찾아온, 각자의 문제게 휩싸인 이방인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이야기라는 점이 특히 그렇다. 이런 플롯 구성이 비슷하다면 사실 꽤 지루하게 읽힐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감이 없었다는 것은 이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종종, 아니 어쩌면 늘 자기합리화의 달인이 된다. 주변 사람들의 삶에는 사사건건 참견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문제에 있어서는 감정에 휩쓸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자기객관화란, 성별과 인종, 나이를 다 넘어서 누구에게나 끔찍히도 힘들고 어려운 듯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도 그렇다. 어쩌면 내가 처해있는 문제와 닮아있는 남의 문제를 보면서도, 그 유사성은 눈치채지 못하고 남의 문제는 너무 쉽게 해결책을 줘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자기는 처지나 상황이 다르다고 꾸준히 자기합리화를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현실을 깨우치게 도와주려해도, 스스로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깨어나올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듣지 않을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을 위해서 꾸준히 위로하고, 옆을 지켜주고, 이따금은 객관적인 이야기도 해줄 수 있어야하는 듯 하다. 그 누구도 서로의 마음 속 상처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그 아픔을 쉬이 넘기거나 손 쉬운 해결책을 줄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되기도 하고. 하지만 그 과정 안에서, 그 위로와 공감의 시간들 안에서 우리는 서로 치유된다. 아기아안나라는 이 작은 섬을 찾은 이방인들을 품어주는 보니와 안드레아스도, 각자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채이지만, 이들을 도와주면서 자신들 스스로 안에서도 치유를 받고 희망을 찾게 되는 듯 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고 위로하고 공감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비와 별이 내리는 밤을 그리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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