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애의 모든 것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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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알을 까듯 새끼를 낳던 원시인들은 안 그랬는데 현대인은 자식이 생기면 무조건 겁쟁이가 된다. 자식을 보살피는 것에 한해서만 용감해지고 다른 모든 면에서는 무한대로 겁쟁이가 되는 것이다.-18쪽

얼핏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오장육부에서 영혼을 떼어 낸 저들이 바로 이 사회의 절대 몰락할 일 없는 지도층이고 틀림없는 주류였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뻔뻔함이었다. 그냥 뻔뻔한 것이 아니라 힘이 있는 데다가 뻔뻔한 것이다. 시간이 만물과 만사를 무화시킨다는 것을 적절히 이용한다는 점에서 가증스러운 사이비 허무주의자였으며 반드시 그 끝에 가서는 이득을 챙긴다는 점에서 뛰어난 경제학도였다. -149쪽

이러니 벤저민 프랭클린이 이렇게 말했던 거다. 우리를 망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이다. 만약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장님이라면 나는 굳이 고래 등 같은 집도 번쩍이는 가구도 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라고. 괜히 프랭클린이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게 아닌 것이다.-212쪽

"작가는 대신 절망해주는 사람이야. 근데 너희들을 가만 보면 참 존나 건강해. 풍자를 못하면 자살이라도 좀 해 봐라. 외국 작가들 노벨 문학상을 타고서도 자살 많이들 했어. 왜? 절망했으니까. 절망할 줄 알았으니까. 딴따라들도 하는 자살을 작가란 놈들이 글도 못 쓰면서 왜 안 할까? 석연치가 않아. 살아있는 거야 좋은 거지. 훌륭한 거지. 하지만 내 눈엔 너희들이 절망을 극복해서 살아있는 놈들로 보이질 않아. 밖으로는 뻔한 사기를 뻔뻔하게 치고 밀실 안에서는 오방 주접들을 떨면서 난교 파티를 벌이고 있는 게 분명해. 으이그."-261쪽

직업이란 뭘까? 여러 면에서 부족해도 그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 하나 때문에 다른 모든 부족함을 용서받을 수 있는 것, 바꿔 말한다면, 다른 모든 것들을 잘해도 그것 하나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최악의 인간이 돼 버리는 것, 그게 직업 아닐까? 존경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말이다.-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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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여행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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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이란 작가의 이름은 숱하게 들어봤지만, 그의 글을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첫인상을 묻는다면, 기대보다 훨씬 덜 재미있고, 더 진지한 작가이자 여행기였다는 감상을 되돌려주고 싶다. 원제는 아니라지만, 책 제목처럼 그야말로 대단한 호주 여행기이긴 했다. 하나의 대륙이 곧 하나의 국가를 이룬다는 호주 자체도 참 대단한데, 저자는 그런 호주의 전역을 돌며 각 지역의 지리, 동식물, 정치, 역사, 경제, 국민성 등 온갖 분야에 대해 개인적인 소견을 뒤섞어 끝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중간중간 양념처럼 껴들어간 작가의 에피소드마저 없었다면, 무슨 호주에 대한 교과서 읽는 기분이 들 뻔 했다.

 

호주는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 등으로 우리에겐 워낙 친숙한 나라다 보니 읽으면서 이 나라에 대해 이토록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고, 그게 비단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우리나라뿐 아니라 같은 영어권인 미국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그만큼 호주란 나라가 엄청난 규모와 잠재력에 비해 국제적으로 여전히 영향력과 인지도가 낮다는 방증이리라. 그런 만큼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호주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며 당장 호주 여행이라도 떠날 듯 마음이 부풀었지만, 너무나도 생소한 내용이 엄청난 분량으로, 그것도 시공간이 뒤죽박죽 섞인 상태로 한꺼번에 쏟아지다 보니 나 같이 아둔한 독자는 단번에 전부 주워담기가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마음을 비우고 책장을 넘기면서, 나중에 호주를 직접 방문할 일이 생기거나 호주에 대해 뭔가 글을 써야할 때 해당 부분을 다시 읽어보겠노라 기약하며 마음대로 책의 용도를 변경해버렸다.

 

대신 이 책을 읽은 의외의 수확이라면 프로 여행가라도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구나하는 팁(?)을 얻은 것이다. 많은 여행기를 보면서 멋진 여행가가 되려면 교통/숙박/식사 정보에는 현지인 만큼이나 빠꼼해야 하고, 근사한 사진이나 그림은 예사로 잡아내며, 개인사가 물씬 풍기는 센치한 감상문 정도는 아무 때고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은연중에 생겼나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일단 어디든 가면 내키는 대로 숙소부터 잡아놓고, 어슬렁거리며 동네 분위기를 살피면서 현지인들과 교류할 거리를 찾거나, 문득 궁금증이 생기면 중간중간 도서관이나 헌책방, 기념관 등에 들러 해당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현지 정보를 찾아보거나 현지 안내자를 만나 하나씩 풀어가며, 그래도 할 일이 없으면 혼자 술을 홀짝홀짝 퍼마시다가 뻗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고스란히 에피소드가 되어 여행기에 담긴다. 뭔가 여행간 지역의 풍광이나 서비스를 완벽히 소비하다 오기보다는 무작정 몸으로 부딪혀가며 전후좌우 샅샅이 훑고 살피다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조금은 자유롭고도 충만한 여행법의 단초를 발견한 듯하여, 새삼스럽게 이 유명한 작가의 다른 여행기들도 꼭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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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 - 야생의 순례자 시턴이 기록한 북극의 자연과 사람들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지음, 김성훈 옮김 / 씨네21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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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에 이 책을 받아들고는 참 궁금했다. 대체 왜 이 시점에 동물학자 시턴이 100년 전에 쓴 북극 이야기를 읽어야 한단 말인가?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자의로 읽을까? 솔직히 이런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만큼 뜬금없다고 생각했고, 극지방이라면 <남극의 셰프>라는 영화에서 보았던, 그 연구기지 문만 열면 미친 듯이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사방이 온통 눈 천지일 뿐 아무것도 없는 지역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역시 눈 속에 푹푹 파묻혀가며, 허허벌판을 한없이 헤매며, 동물의 발자국이나 하릴없이 추적해가며 실패를 거듭하는, 역경과 고난의 스토리를 기대했다. 그리고 저자가 그런 상황에서 6개월을 보낸 것도 대단하고, 이만한 분량의 에세이를 엮어낸 것도 참 대단하다고 내 멋대로 지레 감탄했다.

 

그런데 몇 장 읽다 보니 예상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1907년에 캐나다 북서부의 삼림지대와 초원지대를 6개월 동안 카누로 여행한 기록이라는데, 어딜 가나 원주민 인디언이나 에스키모족도 많았고, 먼저 탐험한 사람들이나 그들이 남긴 기록도 많았으며, 허드슨베이 사라는 무역회사의 모피생산량을 통해 역으로 동물들의 개체 수를 추적해낼 만큼 이미 상업과 백인문화가 침투한 공간이었다. 또 원주민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자연환경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지한가 하면 때론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예견하고 의관까지 갖춰 입고 죽음을 맞이할 정도로 천리안을 발휘하며, 가짜 의사 시턴이 대책 없이 처방하는 알약 한방에 전신의 모든 병이 낫는다고 믿을 정도로 어수룩한가 하면, 시턴에게 빌린 노를 부서뜨려가며 잡은 물고기를 거꾸로 시턴에게 돈받고 팔러 들 정도로 이재에 밝다. 아무튼 그곳도 동물 이전에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보니 이것저것 사건도 많고 재미있는 사람들도 많으며, 그러다 보니 시턴이 기록할 이야기도 넘쳐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은 바로 저자인 시턴의 인간적인 매력이다. 이번 탐사에서 본업인 동물학자와 삽화가는 물론 기획자, 지질학자, 장비담당자, 예술가 등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다양한 역할과, 본의 아니게 유능한 의사 역할까지 떠맡게 된 시턴은 탐험 내내 숱한 도전에 직면하지만, 그때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지침에 의거하여 나름 침착하게 성공적으로 위기를 돌파해나간다. 그러면서 실력이 들통날까 봐 식겁도 했다가, 현지인이나 동물들의 이해 못할 반응에 토라지기도 했다가, 중요한 사냥 장면이나 사진 찍을 기회를 놓쳐 안타까워도 했다가, 때론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을 의식하여 글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버팔로와 순록 탐사에 어린애 같은 열정을 보이기도 하고, 5초 동안 손등에서 피를 빠는 모기수를 세어 모기 활성도를 측정하는 등 좀 엉뚱한 실험을 시도하기도 한다. 또 독자들이 궁금할 만한 상황에 대해서는 직접 그린 꼼꼼한 스케치를 곁들여 센스있게 상상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표지와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보다 훨씬 덜 적막하고, 아기자기하며, 흥미진진한 에세이다. 어릴 때 느꼈던 아무 사심없는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하는 대목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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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은 바에 있다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1
아즈마 나오미 지음, 현정수 옮김 / 포레 / 2011년 12월
절판


나는 코웃음 쳤다. 지적 특권계급의 무기는 전문용어와 비웃음이다. -221쪽

쇼코는 아주 대하기 편한 여자다. 보기 드문 여자다.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않고, 쓰게 하지도 않는다. 사실 그대로만 말하고, 싫은 것은 확실히 싫다고 한다. 고맙다는 인사도 한 번으로 족하고, 그녀도 딱 한 번만 말한다. -227쪽

이걸로 됐다. 정상적인 운전수에게는 미터대로 요금을 지불하고 존경한다. 저열한 운전수에게는 팁을 주고 경멸한다. 법석 떨 일은 아니다.-289쪽

그러니까 너희 같은 저능아들끼리 주제넘게 연애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나는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교양이 방해했다. -316쪽

"한달 만에 통장 잔액이 50만 엔을 넘기거나 체중이 단번에 5킬로그램 줄거나 하면, 그걸로 완전히 푹 빠져버려. 그런 타입의 인간이 있어."
"…돈은 모으면 늘어나고, 밥은 안 먹으면 체중이 줄지. 그리고 버린 욕망과 아껴둔 시간이 눈에 보이는 형태가 되어서 남는 거야. 그렇게 되면 그 뒤로는 돈이나 체중의 노예가 되지. 인생의 보람이 없으면, 예금통장이나 체중계의 숫자에 쉽게 점령당하는 거야."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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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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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고 공기가 끊어졌다는 표현이라도 써야 할까, 순간 주위에 그런 묘한 공백이 생겼다. 곧이어 누군가가 ‘풋’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125쪽

그러나 경찰들에게 난폭하게 저지당하면서도 무네히사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자기가 겨우 남자로 인정받은 것 같아서 좀 더 말려주기를 바라며 있는 힘껏 거칠게 날뛰었다. 난폭하게 입이 틀어막히고 등을 무릎으로 찍히고 두 손 두 발을 꺾이면서도 엉덩이를 주물렸을 때보다 머릿속이 맑았다. 적어도 지금 자신이 자기가 아는 세계에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127쪽

보람 있는 일을 하며 인정받고, 사랑하는 사람과 삶을 함께 한다. 예전에 어렴풋하게 떠올린 그 이상이 요즘 들어 조금씩 변해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바라던 이상에서 나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하나씩 하나씩 무언가를 지워왔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그 이상에서, 맨 처음에 무엇을 지웠는지 읽어낼 길이 없다.-16쪽

소설에 쓴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다만 이 소설에는 쓰지 않은 일이 더 많다. 포도 따기라도 하듯 나는 지금껏 흠집 없이 잘 익은 송이만 따왔다. 그렇다면 쓰인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완전하지 않다.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쓰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거짓인 셈이다. 내가 하는 일은 완전한 현실에서 몇 송이만을 따내어 거짓으로 내일에 남기는 작업일지도 모른다.-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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