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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 - 야생의 순례자 시턴이 기록한 북극의 자연과 사람들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지음, 김성훈 옮김 / 씨네21북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처음에 이 책을 받아들고는 참 궁금했다. 대체 왜 이 시점에 동물학자 시턴이 100년 전에 쓴 북극 이야기를 읽어야 한단 말인가?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자의로 읽을까? 솔직히 이런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만큼 뜬금없다고 생각했고, 극지방이라면 <남극의 셰프>라는 영화에서 보았던, 그 연구기지 문만 열면 미친 듯이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사방이 온통 눈 천지일 뿐 아무것도 없는 지역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역시 눈 속에 푹푹 파묻혀가며, 허허벌판을 한없이 헤매며, 동물의 발자국이나 하릴없이 추적해가며 실패를 거듭하는, 역경과 고난의 스토리를 기대했다. 그리고 저자가 그런 상황에서 6개월을 보낸 것도 대단하고, 이만한 분량의 에세이를 엮어낸 것도 참 대단하다고 내 멋대로 지레 감탄했다.
그런데 몇 장 읽다 보니 예상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1907년에 캐나다 북서부의 삼림지대와 초원지대를 6개월 동안 카누로 여행한 기록이라는데, 어딜 가나 원주민 인디언이나 에스키모족도 많았고, 먼저 탐험한 사람들이나 그들이 남긴 기록도 많았으며, 허드슨베이 사라는 무역회사의 모피생산량을 통해 역으로 동물들의 개체 수를 추적해낼 만큼 이미 상업과 백인문화가 침투한 공간이었다. 또 원주민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자연환경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지한가 하면 때론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예견하고 의관까지 갖춰 입고 죽음을 맞이할 정도로 천리안을 발휘하며, 가짜 의사 시턴이 대책 없이 처방하는 알약 한방에 전신의 모든 병이 낫는다고 믿을 정도로 어수룩한가 하면, 시턴에게 빌린 노를 부서뜨려가며 잡은 물고기를 거꾸로 시턴에게 돈받고 팔러 들 정도로 이재에 밝다. 아무튼 그곳도 동물 이전에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보니 이것저것 사건도 많고 재미있는 사람들도 많으며, 그러다 보니 시턴이 기록할 이야기도 넘쳐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은 바로 저자인 시턴의 인간적인 매력이다. 이번 탐사에서 본업인 동물학자와 삽화가는 물론 기획자, 지질학자, 장비담당자, 예술가 등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다양한 역할과, 본의 아니게 유능한 의사 역할까지 떠맡게 된 시턴은 탐험 내내 숱한 도전에 직면하지만, 그때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지침에 의거하여 나름 침착하게 성공적으로 위기를 돌파해나간다. 그러면서 실력이 들통날까 봐 식겁도 했다가, 현지인이나 동물들의 이해 못할 반응에 토라지기도 했다가, 중요한 사냥 장면이나 사진 찍을 기회를 놓쳐 안타까워도 했다가, 때론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을 의식하여 글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버팔로와 순록 탐사에 어린애 같은 열정을 보이기도 하고, 5초 동안 손등에서 피를 빠는 모기수를 세어 모기 활성도를 측정하는 등 좀 엉뚱한 실험을 시도하기도 한다. 또 독자들이 궁금할 만한 상황에 대해서는 직접 그린 꼼꼼한 스케치를 곁들여 센스있게 상상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표지와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보다 훨씬 덜 적막하고, 아기자기하며, 흥미진진한 에세이다. 어릴 때 느꼈던 아무 사심없는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하는 대목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