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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뇌는 착각에 빠질까 - 뇌과학이 들려주는 속임수의 원리
스티븐 매크닉 & 수사나 마르티네스 콘데 지음, 오혜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뇌과학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어려워 보였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꽤 재미있다. 지각, 인지, 의식 등 추상적인 심리학 용어들과 중심와, 주변시 등 눈과 시지각에 관련된 용어, 그리고 뉴런을 비롯해 각종 뇌신경 관련 용어들이 난무하지만, 번역이 워낙 깔끔하여 생각보다 쉽고 논리적으로 읽힌다.
마술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지금껏 마술이란 곧 우리 눈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손놀림을 이용한 트릭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마술에서는 우리 눈의 착시와 뇌의 착각을 최대한 이용하여 원하는 효과를 얻는다. 즉, 마술사들은 우리 눈이 어떻게 잘못 보는지, 또는 보고도 인식하지 못하는지를 직관적으로 꿰뚫어보고, 자신의 몸동작, 표정 연기, 조명, 등장 인물의 매력 등 여러 가지 방해 요인을 통해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켜 손놀림과 조작을 위한 시간을 번다. 그런 면에서 마술사들은 본의 아니게 뛰어난 심리학자이자 배우인 셈이다.
재미있는 건 신경 과학자인 이 책의 저자들이 뇌 과학, 정확히는 뇌의 허점을 연구하기 위해 역으로 마술 기법을 배우고 실험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뇌과학 연구가 본격화되기 이전에 시지각적 착시를 가장 열심히 연구했던 사람들은 평면 위에 붓놀림만으로 3차원적 입체감을 부여해야 했던 미술가들이었다. 그래서 신경 과학자들은 미술가들의 작업에서 많은 연구의 실마리와 수확을 얻었다고 한다. 그랬던 것을 이 책의 저자들은 마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켜, 뇌과학 연구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낸다. 마술은 역사가 오랜 만큼 트릭 종류도 다양하고, 마술사에 따라 각 트릭에서 이용하는 우리 뇌의 허점들도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저자들은 각 분야에 능통한 마술사들을 한 명씩 만나가며 각각의 트릭에 숨겨진 속임수와 거기에 관련된 뇌의 메커니즘을 밝혀나간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대표적인 마술의 트릭들은 각 장이 끝날 때마다 팁으로 제시된다.
비중으로 치자면 뇌과학보다 마술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아 보일 정도로, 이 저자들은 마술의 세계에 푹 빠져있다. 실제로 마술사협회의 회원으로 마술쇼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마술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했고, 뇌과학에 대해서는 그저 우리의 뇌, 눈, 마음, 기억 등이 얼마나 허접하며 믿기 힘든 존재들인지를 깨달은 정도였다. 특히 ‘도시형전설’이라는 멀티태스킹의 허상에 대해서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