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신공 - 손자병법에도 없는 대한민국 직장인 생존비책
김용전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직장 다닐 때는 상사가 한심했다. 무능한 작자가 부하직원들 덕에 거저 먹고 산다고 생각했다. 그 꼴이 보기 싫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제 직원들이 한심했다. 자기가 무슨 일을, 왜 하는지도 모르는 채 다들 출근해서 시간만 때우면 장땡이었다. 내 분신처럼 움직일 사람 한둘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그걸 못 찾아 애석해하며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중견 관리자였다. 옆은 물론이고 위아래로 돌아가는 판세와 각 플레이어들의 수가 쉽게 읽혔다. 현장에 있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졌고, 또 앞으로 어떻게 굴러갈지를 얼추 맞추곤 했다. 그런 나를 동료들은 천리안이라며 신기해했지만, 나는 그런 뻔한 상황을 보고도 모르는 그들이 더 신기했다. 더 이상 직장 생활에 거칠 것이 없을 듯했다. 그런데 그러한 교만이 화를 불렀다. 다 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상사나 동료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한 것이다. 딴에는 도와준다고 한 일에서 사고가 터지자 더럭 겁이 났다. 아직도 직장생활에서 모르는 게 많다는 자각에, 그간의 내 오만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대략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정말 대오각성했다. 저자는 진정 초절정 고수였다. 제목의 신공이란 말도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수준에서는 그랬다. 게다가 글마저 잘 벼린 칼처럼 예사롭지 않았다. 그제서야 저자의 이력을 찾아보니 시인이라고 했다. 즐겨 쓰는 검법에 대한 비유도 직장생활의 비정하고 냉혹한 측면과 잘 어울려, 글에 깊이와 울림을 더했다.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아래위 할 것 없이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는 절묘한 균형감각이다. 덕분에 실리와 명분, 업무능력과 인간성, 상사와 부하, 회사와 직원, 원칙과 현실 등 주로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보던 내 편협한 시각이 많이 교정되었다. 큰 틀에서 회사 전반에 미칠 파장과 문제 해결또는 목표 달성이라는 업무의 근본적 목적을 염두에 두면서도, 이해 당사자들이 마음상하지 않고 업무 의욕과 회사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사태를 절충하여 마무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도 신입사원, 2-3년차, 5-6년차 식으로 세분화하며 구체적으로 파고들었고, 각 케이스별로 제시되는 해결책들도 가차없고 합리적이면서도 위악적이거나 비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여러 번 인용되는 파스칼의 인간은 금수도 아니요, 천사도 아니다라는 경구에 정확히 들어맞는 답들이었다. 마치 자를 건 칼같이 자르면서도 슬쩍 지나치는 한마디로 마음을 다독여줄 줄 아는, 폭을 헤아릴 수 없고 쉽게 범접하기 힘든 상사의 마음 속을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직장생활이라는 닳고 닳은 주제로 이 이상 잘 쓰기는 힘들 것 같다. 동료들에게, 특히 여자후배들에게 무조건 읽히고 싶은 책이다. 또 엉뚱하게도 정치인들이 조직과 사람에 대한 이 정도 공력만 갖춰도 대단히 위력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대단히 잘 쓴, 요긴한 책이다. 김방희 씨의 추천사대로 자신 있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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