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구애 - 2011년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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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테바가 '아브젝트abject'라고 부른 것의 혐오스러움, '대상object'이라고 하기엔 경계가 모호해 실체의 식별도 불가능하고, 게다가 직전까지 '주체subject'의 내부에 있었으나 배설되고 버려졌으므로 이제 주체의 일부라고도 할 수 없는 물질이 불러 일으키는 불쾌한 매혹... 주객의 구분을 무화시키는 아브젝트들의 범람 앞에서 그것에 매혹당한 주체의 불안과 공포... 한때 자신의 태반이기도 했던 무정형의 자연에 구획과 질서를 부여하는 노동, 인간의 주거와 야만의 주거, 코스모스와 카오스를 기필코 구분해내려는 사내의 공사... (김형중, 동일성의 지옥에서)-239-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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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살고 죽고 - 20년차 번역가의 솔직발랄한 이야기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4월
구판절판


역자는 원문의 분위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단어 하나, 조사 하나가 모두 필요한 부품처럼 느껴져서 선뜻 버리질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품이 알고 보면 부품이 담긴 비닐봉지일 때가 있다. 판매할 때는 부품을 담을 비닐봉지가 필요하지만, 조립할 때는 봉지가 필요없다. 부품인지 비닐봉지인지 구분하는 안목은 아무래도 경험에서 나오겠지만, 되도록 깔끔한 번역을 위해서 군더더기가 될 것 같은 단어나 조사는 미련없이 버리자.-164쪽

탈고한 책을 다시 읽어보지 않는 이유?
그건 마치 벗어놓은 양말 냄새를 맡는 것과 같아서. (하루키)-157쪽

정말로 번역하기 싫은 책은 원문이 후진 책이다. 책의 재미나 교훈을 떠나서 아무리 잘 번역해도 '발 번역'으로 보이게 하는 재주 좋은 원문을 말한다. 이럴 때는 문장이 어설픈 건 작가 탓인데 역자가 욕먹는다. "작가가 그렇게 쓴 걸 어떡해요."하고 일일이 변명할 수도 없고 말이다. 욕 안 먹으려면 역자가 리라이팅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하는 회의에 빠지게 만든다.-131쪽

번역료 인세율은 3~6%인데, 6%를 주는 곳은 양반이다. 대체로 4~5%다. 어느 출판사에서는 신인에게 2%를 주기도 한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번역 인세가 8%다. 요즘 들어 출판 불황으로 6~7%를 주는 곳이 많아졌고, 생초보인 경우 어쩌다 4%를 주기도 한단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중견 번역가는 일본의 생초보(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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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행복하게 하는 친밀함 - 좋은 관계를 만드는 비밀
이무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7년 10월
구판절판


안개에 싸여있던 비의식을 현실에서 경험하면서 비로소 체험을 통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비의식을 경험적으로 이해하면 정신적 변화가 일어난다.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고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경험수준의 이해이기 때문이다...이런 이해가 정신적 변화를 일으킨다. 정신분석의 강력한 치료효과가 여기서 나온다...글랜 게버드 같은 정신분석학자는 분석 중 뇌 신경회로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얘기했다.-87쪽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마음의 은밀한 영역을 같이 탐험하는 관계이다. 자기 자신조차도 두려워서 접근해보지 못했던 마음의 특별한 영역을 분석가와 같이 항해한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수년간을 항해한다. 분석시간에 나눈 이야기는 아주 특별하기 때문에 그 얘기를 남편이나 친구에게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말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특별하고 개인적인 만남은 세상에 그리 흔치 않다. 갈등의 치료를 위해서 이런 특별한 관계가 필요한 것이다.-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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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보통의 연애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절판


영수증 안엔 대대적인 자기반성의 시간들이 밀봉되어 있다. 그러니까 ‘영수증 따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술먹은 다음날, 화장실 변기에 쏟아부은 끈적한 토사물처럼 영수증은 우리가 토해낸 일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 몇 개의 숫자, 몇 개의 단어로, 인생이 쓸데없이 길어지는 걸 비웃는/ 기이한 미니멀리즘의 세계.-11쪽

핵심적인 일을 제외한 잡다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삶. 세금은 세무사가, 양육은 아내가, 고소사건은 자문변호사가 맡아 처리한다. 합리적이고 능률적이며 탁월하다!
하지만 그런 삶에도 공백은 남는다. 핸드폰의 단축번호가 번호를 암기하는 인간의 좌뇌를 갉아먹고,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방향 감각을 퇴화시키는 것처럼 그는 업무 이외의 일에 점점 무뎌졌다. 그의 아내는 때때로 그를 저능아라고 놀렸다. 물론 그는 자신의 심각한 상태를 감지하지 못할 만큼 바빴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삶’보다 훨씬 더 처참하게 망가져버렸다. -52쪽

H가 말했었다. 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내가 사랑하는 건 자신이 아닌, 책이었다고 말이다. 넌 활자 속에서만 날 독점하려고 했잖아. 예의 편집자 같은 말투로 괴테나 도스토옙스키를 인용하면서 아니라고 부인하겠지. 하지만 네가 내 원고를 고칠 때마다, 상기된 얼굴로 내 삶에 박힌 못들을 전부 뜯어내려고 했단 걸 난 알아. 넌 그냥 형용사야. 독립된 명사가 될 수 없지. 당연히 동사도 될 수 없다. 넌 섹스나 키스도 책으로 배워야 하는 사람이니까. 살아서 뜨거운 피가 도는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애정이 있긴 한 거야? 사랑과 질투를 구별하는 건, 편집자로서 중요한 자질이야. 넌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질투하는 거야. 네가 쓰지 못한 내 책을 질투하는 거지. -171쪽

내가 얼마나 뜨거운 사람인지, 어디까지 뜨거워질 수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게 차갑단 말은, 더구나 너는 스스로 존재하는 명사가 아니라 누군가를 치장해주는 형용사일 뿐이란 말 따윈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 보여주지 못한 건 내 잘못이며 전부 보길 원치 않은 건 그의 잘못이므로 이것은 우리 모두의 실패일 것이다. -172쪽

늘 그럭저럭, 겨우겨우라고 말해왔지만 한번도 희망 비슷한 것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잘될 거야, 괜찮아지겠지, 사실 꼭 괜찮지 않아도 상관없어, 라고 중얼거렸지만 거기엔 늘 비릿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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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전철
아리카와 히로 지음, 윤성원 옮김 / 이레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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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여자아이는 앞으로도 손해 볼 일이 많을 거야. 하지만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반드시 있단다. 네가 멋지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을 거고. 나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힘내렴." -223쪽

겉모습은 아이지만 속은 이미 저마다 여자다. 봐줄 필요는 없다. 소녀들은 쇼코가 보내는 시선이 경멸의 눈초리라는 걸 직감으로 알아차리고 있다.…
저런 나이에도 여자는 상대와 자신과의 우위를 비교하고 그에 따라 대응한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우습게 여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쇼코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상대를 주눅 들게 할 수 있는 여자다. 이빨을 감추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일단 이빨을 드러내면 확실하게 상대의 목을 물어뜯는다.
낯선 노부인이 그것을 염려한 나머지 충고를 할 정도로.
이런 여자는 행복해지기 힘들지만-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225쪽

아들의 여자친구 – 특히 결혼할 가능성이 있는 여자친구로 어머니들이 바라는 이상형이 꼭 미인은 아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아들 체면을 구길 정도로 못생기면 안되고, 얌전한 주름치마에 블라우스가 잘 어울리는, 청초하고 수수하면서도 ‘조금’ 귀여운 아가씨다. 물론 자기 주장은 결코 강하지 않은 타입.-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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