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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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차갑고 비인간적인 눈… 저 앤 뭘 볼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을 저 애도 본다고, 저 애도 인간 세상을 본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아마 그의 감각은 아주 다른 사실들과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저 애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저 애는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148)

알다시피 이런 학교에는 교육시킬 수도 없고 동화되지도 않는 희망 없는 학생들이 앙금처럼 고여 있어서, 학교를 떠날 행복한 순간만 고대하면서 학년이 올라갈 때 반만 옮겨다닌다. 그런데 선생님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런 애들은 대개 무단 결석자들이다. (163)

사려깊은 눈? 사람들은 그가 생각하고 있다고, 그가 보는 것으로부터 데이타를 취해서 정리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도 또는 어느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어떤 내적인 양식에 따라서였다. 미숙하고 덜 떨어진 청년들에 비하면 그는 원숙한 존재였다. 완성된, 완전한. 그녀는 그를 통하여 인간성(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이 무대를 차지하기 수천만 년 전에 정점에 도달했던 종족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17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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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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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돌은 외부로부터 찾아온 물체가 아닐 것이다–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동안 준페이는 그것을 알게 된다. 요는 그녀 자신의 내부에 있는 무엇인가이다. 그녀 내부의 그 무엇인가가 신장처럼 생긴 검은 돌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무엇인가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을 위한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밤마다 이동하는 형태를 취해서. (181)

"높은 장소에 올라가면, 거기에 있는 것은 오로지 저와 바람뿐입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람이 저를 감싸고, 저를 흔들어댑니다. 바람은 저라는 존재를 이해합니다. 동시에 저는 바람을 이해하지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겁니다. 저와 바람뿐–다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아뇨. 공포는 느끼지 않습니다. 일단 높은 장소에 발을 내딛고, 거기에 집중해서 푹 빠져버리면, 공포는 사라집니다. 우리는 친밀한 공백 속에 있습니다. 저는 그런 순간을 무엇보다도 좋아합니다." (190)

"질투의 감정이라는 것은 현실적인, 객관적인 조건 같은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다시 말해 혜택 받은 입장이니까 다른 누군가를 질투하지 않는다든가, 혜택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질투를 한다든가, 그런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건 몸에 생기는 종양처럼,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제멋대로 생겨나서, 이유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자꾸만 넓게 퍼져나가요. 알고 있어도 막을 수 없는 거죠. 행복한 사람에게는 종양이 생기지 않는다든가, 불행한 사람에게는 종양이 생기기 쉽다든가, 그런 일은 없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예요."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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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모든 바에서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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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신도 들은 게 있겠지만 간이라는 녀석은 침묵의 장기라고 불릴 정도로 좀처럼 비명을 지르지 않는 내장이다. 당신같이 자각 증상이 있어서 입원했다면 굉장한 사태에 이르렀다는 소리야." (18)

그 무렵 나는 가난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존심 같은 게 있었다. 자신은 특별한 인간이라는 의식, 세상에 녹아들지 못한 채 힘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더 미친 듯이 심해지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과신과 불안, 그 양쪽이 가슴 깊은 곳에서 검게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아무것도 아닌 하나하나가 당시에는 신경에 거슬렸다. 누르면 녹즙이 나올 것 같은 새파란 청년이었다. (34)

이 남자는 생억지를 쓰는 악동인 동시에 천재 시인이기도 했다. 본인은 아무것도 써서 남기지 않았지만 행동거지, 싸움하는 법, 마시고 쓰러져서 하는 잠꼬대까지 존재 자체가 시처럼 깎아 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이것을 한마다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덴도지는 삶 자체가 일체의 감상이나 수사법을 제거한, 단단하고 건조한 시 같은 남자였다. 나는 언제나 덴도지의 깊은 목소리와 야윈 가슴의 갈비뼈를 떠올린다. (36)

현역 알코올 중독자인 내가 보건대 알코올 중독이 되고 안 되고는 다음과 같은 대전제가 있다. 알코올이 필요한가, 불필요한가. 술 좋아하는 사람이 알코올 중독이 된다는 견해를 보이는 사람이 제법 있지만,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 알코올 중독의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술의 맛을 식사와 함께 즐기고 정신이 적당하게 풀어지는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알코올 중독은 적다. 그런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좀처럼 알코올 중독은 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이 되는 것은 술을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말로 나도 그랬다. 이 세상에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위한 도구, 약리 효과를 바라고 술을 택한 인간이 알코올 중독이 된다.
육체와 정신의 진통, 마비, 만취를 갈망하는 이, 그리고 그들의 귀결로서 ‘사후의 불감무각’을 꿈꾸는 이, 그들이 알코올 중독이 된다. 이것은 모든 어딕트(중독, 의존증)에 공통적이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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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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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은 잔인하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시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잔인함은 혼자 서는 과정에서 터지는 고름 같은 것이다. 다들 더는 어른들에게 울면서 매달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들끼리 생존 게임을 시작한다. (1-70)

검찰이 한 명에게 임무를 전부 맡기는 독임제 관청임을 새삼 실감하며 그 무거움에 전율했다. 자기 같은 신임 검사에게도 독립된 직권 행사가 승인된다. 이런 직업은 달리 없다. (1-237)

"혼자라는 선택지가 없어. 중학생이란 생물은 연못 속의 물고기 같은 존재라, 모두 같은 물을 마실 수밖에 없어." (1-260)
중학생은 새떼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모두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몸이 반응해 생각없이 따라가는. (2-289)

"하지만 그게 인지상정인데 어쩌겠어요.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이성과 감정이 항상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단 말입니다. 근본이 그런 생물이라고….감정에 이성을 들이대면, 그때는 상대의 입을 막을 수 있겠지. 하지만 화근이 남아요…."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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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빔 벤더스 지음, 이동준 옮김 / 이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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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뉴욕에 사는 친구 페터 한트케를 방문한 적이 있다.
페터는 소설 <느린 귀향>을 집필 중이었다.
그 무렵 그는 센트럴 파크 동쪽에 있는 한 호텔에서
수도승처럼 세상을 등지고 지냈다.
나의 짧은 방문조차도 그는 혼란스러운 듯했다.
난 그가 작업을 하는 책상 사진을 한 번 찍고,
함께 산책을 하면서 엉덩이 높이에 카메라를 두고 스냅 샷 한 번,
그리고 헤어지면서 저만치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한 장 찍었다.
나중에 그의 소설 <느린 귀향>을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꼈던
그를 짓누르던 부담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136)

한번은
콜로라도 주 덴버 시에서
미국에 대해 아주 색다르고 강렬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자기 관조, 일종의 자아도취에 사로잡힌 나라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겐 거리에 있는 미국 사람들이
고향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178)

사진에 있어서 한 번이란,
정말로 오직 단 한 번을 의미한다.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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