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뉴욕에 사는 친구 페터 한트케를 방문한 적이 있다.
페터는 소설 <느린 귀향>을 집필 중이었다.
그 무렵 그는 센트럴 파크 동쪽에 있는 한 호텔에서
수도승처럼 세상을 등지고 지냈다.
나의 짧은 방문조차도 그는 혼란스러운 듯했다.
난 그가 작업을 하는 책상 사진을 한 번 찍고,
함께 산책을 하면서 엉덩이 높이에 카메라를 두고 스냅 샷 한 번,
그리고 헤어지면서 저만치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한 장 찍었다.
나중에 그의 소설 <느린 귀향>을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꼈던
그를 짓누르던 부담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