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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냄새
이충걸 지음 / 시공사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책의 내용을 말하기에 앞서서. 나는 내 삶에서 이충걸 같은 사람을 결코 만날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토록이나 잘난척을하고, 그렇게나 쿨한척하고, 도대체 하려는 말이 뭔지 모를 문장을 쓰는게 취미인 사람은 정말이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들 중 하나이다. 과거 페이퍼 시절의 이충걸을.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잡지 GQ의 편집장이기에 가졌던 조그마한 관심도 나는 이 책으로 인해 깡그리 거둬들여야 할때가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은 고마운 책이다. 그가 쓴 책 두 권 (어느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해를 등지고 놀다.) 을 읽고도 긴가민가 하면서 깨닳지 못했던 나에게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한대 확 두들겨 맞은듯한 명확함을 제공해주었으니 말이다.
그의 책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 한가지. 그는 대체 이 많은 글을 쓰면서 한번이라도 이 글에 등장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대충 어떤 엿같은 기분이 들지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나는 이충걸이 이 책을 모두 뻥으로 썼기를 바란다. 아니면 이 책에 등장했던. 그의 주변사람들이 너무도 심하게 상처를 받지 않을까 싶다. 뭐 물론 나는 '아아 진정코 세상은 사랑의 온기로 가득 차야만 하지요' 같은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나도 성질이 어지간히 더러워서 주변 사람중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칼날같이 날카로운 표현들을 들이대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유가 있다. 이충걸이라는 인간처럼 상대가 왜 싫은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우습고 가소롭고 하찮고 따라서 심드렁 따위는 아니다. 차라리 대단한 적의를 드러내고 갈기갈기 물어뜯는 성의라도 보이면 좋겠구만 이충걸은 그저 이렇게 표현할 따름이다. 저렇게 하찮고 의미없는 존재에 대해 난 그저 어깨를 으쓱 할 뿐이지... 진짜 할말은 아니지만 옆에 있다면 뒷통수를 후려 갈기고 싶은 인간이다. 내가 보기에 그야말로 그의 책에서 썼던것처럼 쿨에 목숨을 걸다못해 광대보다 한등급 위로 우스꽝스러운 인간이다. 어떻게 저렇게 세상에서 저 혼자 너무너무 잘날수 있는지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책을 읽고나서 글을 쓴 사람에게 이렇게나 분노를 느끼기도 참 힘드는데. 이충걸은 정말이지 드문 경험을 아주 골고루 시켜주고 있다.
나는 그토록이나 멋지구리한 잡지 GQ의 편집장이 고작 이런 인간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인간에대한 조금의 애정도 없으며, 아니 어쩌면 있되 쿨해보이려고 악을쓰며 없는척 하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인간이 옷에대해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나불거리는 잡지의 편집장이라는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없는데 아르마니 정장이 다 무슨 소용이고 페레가모 신발은 또 무슨 소용이며 라이프 스타일은 또 뭣에 쓰이겠는가. 영화 살인의 추억에 보면 설경구가 그런말을 한다. 그렇게 잘났거든 저 저 미국에 가서 FBI를 하라고. 내가 지금 딱 그 심정이다. 니미럴 그렇게 잘났으면 저 하늘 꼭대기에 살지 뭣하러 니가 그렇게 경멸해마지 않는 인간들 따위가 득시글거리는 지구에 사냐고. 정말이지 이 책을 슬픔의 냄새라고 이름을 붙인게 너무나 가증스러워서 화가 다 치밀어 오른다. 거기다 그 토할것 같은 뭔가 있어보이려는 문체는 나를 더더욱 짜증나게 한다. 그렇게 쓰면 멋져보인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냐고 코 앞에서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내가 무식쟁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려운척 하는 문장들. 있어보이는척 하는 글귀들은 경기가 날 만큼 싫다. 정말 어렵다거나 정말 있어버리면 문제가 되질 않는다. 그건 그냥 늘 그래왔듯이 무식한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세계도 있고 그런게 있으니 컴퓨터도 만들어지고 달에다가 로켓도 쏘고 그런거 아니겠냐고 이해하면 된다. (안되면 난 외우기라도 한다.) 그런데 이 척 하는 꼴들은 정말 봐 줄래야 봐 줄수가 없다. 어디서 허접한게 디굴디굴 굴러와서는 사람 주눅들이려고 같잖은 소리를 주억거리나 싶다. 책을 쓴 작가에게 이렇게나 악담을 퍼부어도 무사할까 싶기는 하지만 정말 이 책은 근래 보기드문 쓰레기 중에서도 상 쓰레기다. 아니 책이 쓰레기라기 보다는 나는 이걸 쓴 인간이 정말 재활용도 불가능한 쓰레기 같다. 대체 이런책을 내면서 누구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누구에게 쿨하시군요 라는 되먹잖은 칭송을 듣고 싶은건지 궁금할 뿐이다. 이왕 이렇게 된거 심한말 좀 더해도 된다면 이충걸. 그는 이제 책은 고만 써야한다. 적어도 인간에 대해 아주 기본적인 애정조차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에게 책을 팔아먹으려고 들면 안된다. GQ판매부수 떨어지고 싶지 않으면 잡지나 열심히 만들라고 하고 싶다. (물론 거기서도 에디터로써 글이야 쓰겠지만 지도 인간인데 이렇게야 쓰겠는가. 이건 무가지 페이퍼에서나 가능했겠지 돈받고 파는 잡지에서는 못그런다.) 좋아했던 잡지 GQ가 다 정나미 떨어질 정도의 이 책. 정말 생각같아서는 확 내다 버리고 싶다. (별 하나를 주는건 별을 아예 안줄수는 없게 되어있기 때문에 준거다. 허나 난 그 별 도로 가져갔다.)
끝으로 한마디만 더 하자면. 이 책의 가장 지랄같은 점은 결정적으로 남의 슬픔과 외로움을 한껏 비웃었다는 점에 있다. 자기가 슬프지 않다고 자기가 외롭지 않다고 그걸 비웃을 필요까지 있을까? 위로는 못할망정. 더구나 위로받고 싶어 손을 내민 사람에게 '슬프다거나 외롭다고 하는 것들은 정말이지 진심으로 한심하고도 지겹군' 이라고 생각하는게 쿨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