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 사실 무진장 기대했었다. 내가 예전에 사귀던 남자가 영국 유학파에다 뮤지컬을 끔찍하게 좋아해서 맘마미아와 오페라의 유령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을만큼 칭찬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는 내내 생각했다. '이게 뮤지컬이면 겁나게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영화로는 그저 그렇군' 하고 말이다. 어쩌면 나는 뮤지컬도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대략 대사를 치는데 노래로 치는게 적응이 안되기 때문이다. 멀쩡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우어어어 하며 노래를 부르는게 난 왜 이렇게 와닿지가 않는걸까?
내용은 다들 알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 그대로이다. 영화인지라 약간의 각색 작업은 거쳤겠지만 기본 골격은 뮤지컬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 테마곡도 원없이 나온다. 의상도 화려하고 캐스팅도 괜찮다. 뮤지컬이라면 시도하지 못했을, 영화라서 가능한 액자식 구성이랄지 과거와 현재를 절묘하게 오가는 장면들도 괜찮았다. 하지만 나는 뭔가 더 거한것을 원했나보다. 예전에 물랑루즈를 봤을때처럼 엄청난 스케일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 대해 굳이 평을 하자면 크게 재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은 봐 주셔야 할 영화라는 느낌이랄까? 조엘 슈마허 감독 답게 화려한 볼거리도 많고 무엇보다 너무도 유명한 뮤지컬을 영화로 옮긴것 치고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뮤지컬을 안봤기 때문에 내가 이런소릴 하는건 말이 안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 친구는 그런 말을 했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 백번 옳은 소리이다. 육체가 건강하지 못하면 정신도 병들게 되고 정신이 병들면 마찬가지로 육체도 시들게 된다. 이 둘은 땔레야 땔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하나가 정상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하나가 정상이 되려면 불가능까진 아니더라도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내심이나 힘이 필요한것 같다.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주인공인 오페라의 유령이 그런 삐뚤어진 사랑을 하게 된 것은 자신의 얼굴탓이 아닌가 싶었다. 모든 사람들이 보면 얼굴을 찌푸릴 정도의 흉물스런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으면서 마음만은 비단결이길, 그리고 아주 정상적이고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면 욕심이다.
영화의 러닝 타임이 무려 140분이기 때문에 다소 지루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툭툭 튀는것 없이 매끄럽게 흘러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오프닝 장면이다. 옛 오페라 극장에서 경매가 시작되고 마지막 물건인 샹들리에가 나올때. 지저분한 폐허였던 오페라 극장은 마치 마법사의 입김이라도 받은양 마술처럼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데 그 장면이 아주 볼만하다.
그래도 결국 나는 심각한 대사를 노래로 친다는 그 기본적인 룰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이 영화가 좀 재미없었다. 물론 그것을 다 알고 갔기 때문에 재미없었다는 정도의 표현은 너무한건지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재미에 목숨걸고 사는 내가 재미가 없었으면 그건 아무리 위대한 예술 작품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그냥 재미없는 것일 뿐인것을 말이다. 보다가 중간 중간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아마도 영화가 너무 길었거나 아니면 나처럼 노래로 대사를 대신 하는걸 견디지 못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