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변명 대학병원 건강교실 6
서민 지음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사실 기생충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초등학교의 대변검사가 사라진지 오래 되었고 빗자루로 회충 촌충 십이지장충 이라는 글짜를 쓸어내던 회충약 CF도 TV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생충이 창궐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생충을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이 책에 의하면 지금도 엄연히 기생충은 미비하나마 그 숫자가 존재하고 있고 세계 보건기구에서 유의해야 할 질병중 6개 항목은 기생충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거기다가 걸리면 목숨을 잃는 말라리아를 그냥 모기가 옮기는 줄 알았는데 이것 역시 기생충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충분하게 기생충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기생충 하면 무조건 대변을 통해 나오는 하얗고 길다란 것만을 생각했는데 육안으로 보이는 기생충 이외에도 전자현미경을 들이대야 할 정도로 작은 기생충도 있으며 모양도 가지가지이다. 예전에 못살던 시절에 비해서 위생상태가 양호하고 또 수많은 기생충학자들에 의해 거의 박멸되다시피 해서 지금은 기생충이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기생충의 위험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정력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는 뱀도 잡아먹고 동물의 생간이나 사슴피 따위를 곧잘 먹는데 그런 곳에 기생충이 많다고 하니 말이다.

교과서에서 본 기생충은 민촌충, 갈고리촌충, 십이지장충 정도가 전부였는데 생각보다 기생충의 종류는 매우 많다. 또 모기, 물벼룩, 파리, 애완동물을 비롯한 동물의 대변등 감염 경로도 매우 다양하다. 나는 기생충은 그저 대변을 보고 손을 잘 씻지 않으면 걸리는 병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 내게있어 기생충은 대장균이나 별반 다름 없었다. 이래서 사람은 무식하면 안된다고 하나보다.) 아직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은 만큼, 그리고 심각하면 목숨을 잃기도 하고 산모가 걸리면 태아에게 심각한 뇌손상등의 기형을 초래하는 기생충인지라 무엇보다도 예방이 필요한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생충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걸리는지. 또 치료법은 무엇인지 이 책은 비교적 쉽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 두었다.

내가 이 책에 많은 점수를 주는 이유는 전문적인 내용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학술용어나 어려운 의학용어 등으로 사람 기를 죽이지 않으며 무엇보다 저자가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책의 거의 대부분은 기생충에 관한 것인데 제일 마지막 챕터가 이채롭다.

내가 아직도 의사로 보이니라는 4장에서는 보조약 (여기서 말하는 보조약이란 예를 들면 결핵환자에게 결핵약과 함께 결핵약중 간에 손상을 주는 성분 때문에 간장약을 함께 처방하는 것)의 남용에 대해, 이주일씨와 폐암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냄비근성을 다루었고 의사들이 제왕절개를 선호하는 진짜 이유, 그리고 사후 피임약인 노레보에 대한것. 광우병에 관한것 등등 기생충 이외에도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었던 부분을 다루었다. 한쪽 입장에서만 다룬것이 아니라 그런지 '뭣뭣을 먹거나 뭣뭣을 하는것은 무조건 나쁘다'라는 식의 언론플레이에 열심히인 의사나 박사들과는 다소 다른 면면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서 기생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조금은 기생충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기쁘다. 늘 재밌고 쉬운 책이나 읽으며 세월을 조지는 나 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머릿속에 남아서 지식이라 부를만한 무언가가 있는 책도 읽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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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털이 2004-06-06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글 남깁니다. 이 서재의 재미난 글들 잘 읽고 있지요^^ 그나저나 마태우스님, 기분이 굉장히 좋으시겠는데요? (저는 학교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마태우스 2004-06-0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광이긴 하지만.... 아이 참. 이러시면 안되는데... 실제 상품의 가치보다 더 칭찬을 해놓으시면 혹시 님을 믿고 산 분에게 원망을 들을까 두렵사옵니다. 아, 어찌 이런 일이...

플라시보 2004-06-08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털이님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하신다구요? 읽어보면 생각보다 재미있을겁니다. 즐거운 독서 되시길^^
마태우스님. 후훗 부끄러워 하시기는요. 저도 읽어보고 좋다고 생각이 되어서 칭찬을 한거지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 했을겁니다. 제 성격을 아직 잘 모르시나봐요^^

nugool 2004-06-08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태우스님께서 하필 왜 기생충쪽 전문이신지 그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아직도 기생충 쉽게 만날 수 있어요. 으악이긴 하지만.. 게다가 어린 애들을 키우다보면...
촌충맞나? 하여튼 그 애들에게 잘 옮는 기생충 있어요. 밤에 밖으로 기어나와서 알을 깐다는데 그 알이 다시 입에 들어가고 들어가고 해서 약을 한참 먹어야 되더라구요. 애는 간지럽다고 난리지.. 이불은 맨날 뜨거운 물에 빨아야지.. 하여튼 생쑈를 했더랍니다... 애들은 아직도 봄 가을에 기생충약을 먹어 줘야 한다네요. 참, 근데 의사들이 제왕절개 수술을 권하는 진짜 이유는 뭐래요??

플라시보 2004-06-08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은 모르지만 책에 나와있는 있는 대로라면 제왕절개로 수술을 해서 잘못되면 자연분만을 해서 잘못되는 것 보다 의사들의 책임부분이 훨씬 적다고 합니다.

마태우스 2004-06-0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굴님/말씀하신 기생충은 요충으로 사료됩니다. 글구 제왕절개에 관한 그 글을 여기다 다시 옮겨 볼께요.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저를 그들과 같은편이라고만 생각지 마시고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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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월 10일자 독자투고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xx산부인과 장원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장원장은 한번도 임신중절 수술을 해준 적이 없으며, 불가피하지 않으면 산모가 아무리 제왕절개 수술을 원해도 설득을 거듭해 자연분만으로 낳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 제왕절개의 문제는 좀 심각하다. 미국 LA타임즈의 보도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비율이 43%로 미국의 20%에 비해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이 신문에 의하면 '한국에서 제왕절개가 많은 배경으로 1) 수술이 더 안전하다는 믿음 2) 법적 책임을 면하려는 병.의원의 태도 3) '사주'가 좋은 날 아이를 낳으려는 태도 등을 꼽았다.

[특히 높은 제왕절개 시술 비율의 원인으로 의사들이 지목되고 있으며, 최근까지 한국의 병원들은 제왕절개 출산에 대해 자연분만보다 3배나 더 많은 치료비를 받아왔고, 이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도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 공단 관계자는 "제왕절개 시술이 많게 된 책임은 의사에게 있으며, 진료비를 더 받기 위해 여성들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어 수술을 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사들은 소위 '가진자'이며, 의사들의 행동은 대개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건 당연하며, 그것이 공익을 해치지 않는 한, 무조건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즉, 언제까지나 '의술은 인술'이라는 식으로 의사에게 도덕심만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노레보'라는 사후피임약을 의사들이 반대하는 것은, 연간 5천억원에 달하는 불법낙태 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사들의 이기주의가 작용하며, 이건 여성의 건강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공익과 충돌한다. 즉, 이런 이기주의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제왕절개 또한 마찬가지일까?

신문기사에서 '제왕절개가 자연분만보다 3배나 비싸다'며, 보험공단 관계자가 '진료비를 더 받기 위해 여성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어...'라는 대목에 주목하자. 우리 나라의 자연분만 수가가 원가에도 훨씬 못미친다는 건 사실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20대 여자가 단란주점에서 두시간 정도 술을 따르면, 십만원을 번다. 그런데 밤을 세워가며 애를 받아봤자 그 댓가가 10만원에 불과하다면, 별로 일할 의욕이 나지 않을 것이다.

배추값이 폭락하면 농촌에선 배추를 다 버린다. 돼지값이 폭락하면 돼지를 그냥 죽인다. 팔아봤자 손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인간은 배추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수가가 낮더라도 환자는 봐야 한다. 이 경우 예상되는 손실을 메꾸기 위해 많은 의사가 도둑이 되었다. 이것이 한국 의료의 구조적인 문제이며, 그 도둑질을 못하게 만든 의약분업에 의사들이 저항한 이유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의사들의 파업에 반대했으며, 그래서 한 친구와 거의 절교를 하긴 했지만.

다시 제왕절개 이야기를 해보자. 의사들이 제왕절개를 선호하는 건, 단순히 수가 때문이 아니다. 그 증거를 대보자. 서울대병원 의사들은 국가에서 월급을 준다. 제왕절개를 하든 자연분만을 하던 똑같은 월급이 나온다. 그런데도 그들은 제왕절개를 선호한다. 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서울대병원 의사들은 그럼 왜 제왕절개를 선호할까? 돈 때문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건 바로 '책임' 문제다. 자연분만의 경우, 1% 이하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흔히 하는 말로 탯줄이 목에 감긴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통로가 좁아서 분만이 지연되는 건 산모나 태아나 모두에게 해롭다. 분만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고 해도, 애가 조금만 이상하면 그 책임을 의사가 뒤집어 써야 한다. 제왕절개는 자연분만에 비해 산모가 회복이 더디긴 하지만 태아에게 어떤 위협도 없다. 의사들이 제왕절개를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 위험이 1%의 가능성일지라도 말이다.

아까 그 독자의 글이다. [그곳 부원장은 "아줌마, 자연분만 성공률이 99%라고 해도 1%의 가능성 때문에 실패한다면 누가 책임집니까?"라고 했다.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최선책을 택해야 할 의사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 같아 섭섭했다....]

이 사람은 뭘 착각하고 있다. 엄마들은 자신은 좀 안좋더라도 아이만 무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즉, 태아의 건강을 더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99% 안전한 것과 100% 안전한 것 중 어느 것이 태아의 건강을 위한 최선책인가?

다시 문제는 '책임'이다. 1%를 책임지지 않으려고 제왕절개를 권하는 의사들이 얄밉게 보일 수도 있다. 돈은 돈대로 받으면서 책임은 안지려고 하다니?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의사가 완벽하게 분만을 한 경우라도 태아가 좀 잘못될 경우 의사가 그 책임을 뒤집어 쓴다. 뭐, 책임을 지라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의사가 돈을 많이 번다는 믿음 때문인지 몇억원을 요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병원이 통째로 날라간다. 이런 상황에서 제왕절개를 선호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의사의 과실 여부를 가려줄 기관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의사의 책임 한도가 법으로 규정되지 않는 한 제왕절개는 줄어들 수 없다. A라는 행위를 할 때 자신의 사업체가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도 A라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의사라는 이유로 그런 위험을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는 건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이 무조건 '치료비를 많이 받으려고..'라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만일 자연분만의 수가가 올라 제왕절개와 비슷하게 되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될까? 난 그래도 의사들이 제왕절개를 선호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심지어 자연분만의 수가가 제왕절개보다 더 높을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별 이상없이 사는 이유는 의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안할까. 그럼에도, 평소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도 돌아서서 의사들을 매도하는 건 별로 좋은 태도가 아니다. 의사는 같이 공존해야 할 대상이지, 결코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호랑녀 2004-06-14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덧붙여 마태우스님의 코멘트두요. ^^

부리 2004-06-1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책을 가지고 이주의 마이리뷰에 되셨다니, 너무너무 축하드립니다. 더불어 이달의 마이리뷰도 차지하시길 빌겠습니다. 화이팅, 화이팅!
-부리 드림-

조선인 2004-06-1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아아 부리님, 플라시보님 축하드려요.

진/우맘 2004-06-1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플라시보 2004-06-1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님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주아주 간만에 알라딘에서 마이리뷰가 당첨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당첨금으로 방금 책들을 주문했고 열심히 읽겠습니다. 뽑아주신 알라딘 관계자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꾸뻑.